어쨌거나, 맨유
흔히 ‘광고 맛집’이라 불리는 기업이 있다. 네덜란드의 맥주 브랜드인 ‘하이네켄’은 언제나 광고에 특별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다. 재미와 감동, 공감과 혁신이 담긴 이 광고에 관해 말하자면 아마 한두 페이지로는 어림도 없을 테니, 축구에 관한 이야기만 해보려 한다.
하이네켄 회사가 챔피언스리그 공식 후원사이다 보니 광고에도 관련된 내용이 종종 담기곤 하는데, 정말 재미있었던 장면 중 하나는 한 여성이 자기 반려견을 ‘토티!’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 토티, 이탈리아와 AS로마의 축구 레전드 이름. 그리고 마지막엔 이런 자막이 붙었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의 33%는 반려 동물의 이름을 최애 선수의 이름으로 짓는답니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나도? 그렇지만 난 반려동물이 없으니 곧장 휴대폰을 켜고 동생의 이름을 ‘루니’로 바꾸었다. ‘베컴’으로 하려다 그건 동생에게 너무 호사스러운 일인 것 같아서 관두었고, 나중에 자녀를 낳았을 때 붙여줄 이름 후보로 ‘기베’와 ‘기컴’을 올려두긴 하였다. 여하튼, 데이비드 베컴과 더불어 나의 최애 선수 중 하나인 맨유의 전설, 웨인 루니를 소개해보려 한다.
루니의 선수 경력은 에버튼 FC에서 시작되었다. 2002년, 무려 만 16세의 나이로 1군 무대에 데뷔했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루니의 재능은 남달랐고 불과 9경기 만에 데뷔골을, 그것도 디펜딩 챔피언 아스널 FC를 상대로 환상적인 중거리포를 터뜨렸다. 에버튼 FC의 공식 유튜브에 이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당시 해설자는 루니가 골을 넣자 이렇게 외쳤다.
“Remember the name. Wayne Rooney!”
그리고 정말 그는 프리미어리그의 전설적인 공격수가 된다. 에버튼에서의 활약으로 2004년 8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웨인 루니. 이적 후 출전한 첫 번째 경기는 9월 24일에 펼쳐진 페네르바체 SK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데뷔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다. 골키퍼와 1대1 상황에서 왼발로 강하게 차 넣은 첫 번째 골, 보디 페인팅으로 수비수를 살짝 제친 후 페널티 아크 바로 앞에서 성공시킨 두 번째 중거리골, 상대 반칙으로 얻은 프리킥으로 완성한 세 번째 골 모두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이를 시작으로 루니는 13년간 맨유에서만 559경기에 출전, 통산 253골 139도움을 기록했다. 맨유 역대 최다 득점자 타이틀을 보유한 그는 잉글랜드 대표팀 역대 득점 및 최다 출전에서 각각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프리미어리그 역대 도움 3위의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그야말로 기록 제조기이자 꾸준함의 대명사.
물론 루니는 사생활 문제나 멘탈 관리 부분에서 많은 비판을 받기는 했다. 중요한 경기에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퇴장당한다거나, SNS상에서 팬들과 언쟁을 벌이며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이야 많이 성숙하여 프로 구단의 감독 역할도 수행하고 있지만, 한 땐 ‘악동’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을 정도로 늘 사건․사고의 중심에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루니를 좋아한다. 그의 선수로서의 역량, 열정, 재능을 아는 맨유 팬들은 루니를 절대 싫어할 수 없을 것이다.
루니뿐 아니라 많은 스포츠 스타들은 역사에 나름의 기록을 남기곤 한다. 대회 신기록이나 세계 신기록과 같은. 문득 궁금해졌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인 난,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화려하고 찬란하게 펼쳐나갈 수 있을까?
아뿔싸, 결론은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내 안의 작은 아이는 내게 ‘불가능’이라고 외쳤다. 도무지 그럴 수 있는 무대가 없고 무엇보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
*내 안의 작은 아이 : 네덜란드 국적의 선수 로빈 반 페르시가 아스널 FC에서 라이벌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의 이적 발표 기자회견에서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맨유라고 외쳤다’라는 발언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왜 없냐고? 왜 불가능이냐고? 그건 이미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굳이 주인공이 되기 위해 발악할 필요가, 없다는 것. 내가 주인공인 한 편의 영화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주 마음이 편해졌다. 이 영화에서는 맨유의 전설 웨인 루니도 한낱 조연에 불과하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당신도 내겐 조연이다.
물론 반대로 당신의 삶에서 나 역시 미천한 역할에 불과하겠으나 60억 지구인 중에서 역할이라도 하나 부여될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 얼마나 큰 영광이고 기쁨인가. 시기와 질투에 점철된 삶보단 감사와 만족으로 채우는 삶이 좀 더 영양가가 있을 듯하다.
어쨌거나, 맨유도 내 삶에선 한낱 조연이지만 적어도 <춘향전>의 방자와 향단이급은 되는 것 같다. 지루하고 지치기만 하는 이 영화에서 가끔은 ‘씬스틸러’ 역할을 해주곤 하니까. 누구에게나 그런 존재가 있지 않을까? 나도 당신의 그런 웃음 유발자가 되고 싶다. 별것 아닌 이 공상의 끝에서, 조금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