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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Jul 28. 2021

민영의 살아온 이야기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02


빌라 라 로쉬: 꼬르뷔제 주택의 또 다른 대표작. 은행가였던 라울 라 로쉬와 형을 위해서 지은 주택이다. 두 개의 집이 등을 맞대고 있어 오늘날의 땅콩집과 비슷한 형상이다. 미술품 수집가였던 라 로쉬의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과 옥상까지 이어지는 건축적 산책로가 인상적이다.




민영의 아버지도 건축설계를 하신 건축가였다. 어렸을 때 민영은 매일 야근에, 철야까지 하면서 가족을 등한시하는 아버지가 싫었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라 정말 예뻐해 주시고, 잘 대해주시긴 했지만 건축가로서의 바쁜 삶은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의 직업이었건만, 어렸을 때부터 모형이나 도면, 건축 잡지들을 보다 보니 민영은 자신도 모르게 건축에 관심이 생겼다. 아버지를 따라 유명한 건물도 다녀보고, 아버지가 지은 건물도 다니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관심이었을 것이다. 민영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도 곧잘 그리고, 장난감이나 공작 과제들도 잘 만들어서 아버지의 피가 나한테 오긴 왔나 보다라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렇게 대학교에 진학할 때가 됐고, 민영은 서울에 있는 제법 유명한 대학 건축과에 진학했다. 어머니는 왜 또 건축과냐며 극구 말리셨지만, 결국 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대학에 간 민영은 학창 시절 못했던 연애도 하고, 술 마시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신나게 대학생활을 즐겼다. 물론 생각보다 훨씬 힘든 건축과 생활을 하며 밤도 무수히 새웠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개업 파티에 왔던 절친인 지혜와 지민을 만났다.


민영의 아버지는 유명 건축가 밑에서 도제식으로 건축을 배운, 정말 예전 스타일로 설계를 하는 건축가였다. 사무실 인원도 많아야 5명, 적을 때는 2~3명이 일할 때도 많았다. 일이 안정적으로 들어오지 않아 항상 들쑥날쑥 했고, 집에 생활비를 들고 오지 못할 때도 많았다. 한마디로 예술가적인 삶을 살았다. 이러하니, 어떻게든 가정을 꾸려가야 하는 어머니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아버지와 싸우기도 하고, 제대로 된 일을 하라고 소리도 질러 보았지만 민영의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는 민영이 겨우 말을 알아들을 무렵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식당일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시장 어귀에 있는 순댓국집이 민영의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가게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어 민영은 취업을 걱정하게 되었다. 부지 불식 간에 아버지처럼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던 민영은 대형 설계사무소에 취직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을 배울 만한 적당한 사무실이 딱 눈에 띄지도 않았다. 어떡하지 하고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아버지가 민영을 불렀다.


“민영아, 가고 싶은 사무실은 정했니?”


“글쎄요.. 그다지 맘에 쏙 드는 데가 없네요. 제가 고를 능력이 되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래.. 그맘때쯤엔 누구나 고민을 하지. 그렇다고 내가 널 우리 사무실에 데려 오는 건 좀 아닌 거 같고..”


“저도 아버지랑 일하는 건 싫어요. 그리고 사람 쓸 여유 없으시잖아요..”


“하하.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다니.. 그래서 말인데. 예전에 같이 일하던 내 친구가 하는 사무실이 있는데 거기 어떠니. 최강식이라고.. 너도 들어 봤을 거야.”


최강식 건축가. 대기업 회장님들이나 유명 연예인들을 상대하는 최상급 건축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아버지가 이런 사람이랑 잘 아는 사이였다구? 전혀 모르던 일이다.


“그럼요. 엄청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최고급 건물만 주로 하는.. 아버지가 그분을 잘 아세요?”


“음.. 조금 아는 정도? 예전에 일 배울 때 같이 했었어. 그때 좀 친했지. 독립한 뒤로 그 친구는 엄청 잘 나가게 된 거고..”


대충 듣긴 했지만 아버지가 다니셨던 이정희 건축가의 사무실에는 나중에 유명 건축가가 되신 분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고 했다. 몇 년 전에 사고로 돌아가신 홍준성 건축가부터 해서.. 아버지가 거기서 일하셨던 건 알고 있었지만 최강식 건축가랑 친하셨구나..


“네, 저야 좋죠. 제일 잘 나가는 사무실이고.. 고급 건물을 많이 해볼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아빠 찬스까진 아니지만.. 하하. 내가 연락을 좀 해 볼게. 가서 이야기하면 될 거야.”


그렇게 민영은 최강식 건축가의 사무실에 면접을 보게 되었고 일하게 되었다. 거기서 몇 년 동안 일하다가 준수를 만난 것이고, 앞서 이야기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사무실을 개업하고 일주일쯤 흘렀을까. 아직도 제대로 된 일은 없다. 오늘은 나가서 뭘 해야 하나.. 생각하며 민영은 출근 준비를 한다.


“어머니, 저 다녀올게요.”


“그래, 민영아. 뭐 어떻게 일은 좀 생겼니?”


“아직은.. 찾고 있으니까 금방 뭐라도 생길 거예요...”


민영의 대답에 영 힘이 없다.


“에휴.. 그러니까. 내가 어디 교대라도 가서 선생님 하라고 그렇게 얘길 했잖니. 왜 엄마 말을 안 듣고 건축과 같은 델 가서.. 니 아버지 고생하는 거 그렇게 보고도.. 아이구. 내가 말을 말아야지.”


어머니의 잔소리가 또 시작되려고 한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듣는 말이라 민영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민영은 서둘러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선다. 이럴 땐 얼른 탈출하는 게 상책이다.


그렇게 고생하시던 아버지는 몇 년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생전에 그렇게 즐겨 피시던 담배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러게, 그렇게 담배 끊으라고 노래를 불렀건만.. 건축가는 담배를 펴야 설계가 된다며 끝까지 끊지를 못하셨다. 아버지는 병상에 누우신 후에야 지난날을 후회하셨다.


“일이 뭐고 건축이 뭐라고.. 가족을 잘 돌봤어야 했는데.. 한 번이라도 더 놀아주고 한 번이라도 더 신경 써줄걸.. 내 몸도 더 챙기고..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없지만...”


“아빠.. 힘내세요. 아직 모르잖아요..”


“민영아, 넌 건축을 하더라도 건강 챙기면서, 가족 챙기면서 해라.. 결혼도 얼른 하구..  내가 너 결혼하는 건 보고 가야 되는데..”


하지만 민영의 아버지는 결국 딸이 결혼하는 걸 못 보셨다. 가시는 그날까지 딸 결혼식장에 누가 데리고 들어가나를 걱정하시던 아버지였다.


문득 아버지를 생각하니 민영은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오늘 같은 날은 왠지 더 아버지가 보고 싶다. 날씨가 더워지려고 하고 있다. 가방을 고쳐 메고 사무실로 발걸음을 재촉해본다. 오늘은 뭔가 나를 찾는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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