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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Aug 18. 2021

건축주의 연락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03


빌라 슈타인(Villa Stein): 프랑스 가르슈 지방에 지어져 빌라 가르슈라고도 불린다. 르 꼬르뷔제의 주택의 4가지 구성 중 ‘순수한 입면체’에 해당하는 건물로, 정교하게 계산된 비례로 이루어진 파사드로 유명하다. 기둥으로 하중을 지지하는 ‘자유로운 평면’이 구현된 공간 역시 느낄 수 있다.





벌써 오후 3시다. 오늘도 하릴없이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민영은 ‘오늘도 일 없이 공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정말 이렇게 아무 연락도 없는 건가.. 하기야 내가 뭘 홍보라는 걸 했어야지..’


띠리링 띠리링~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드디어 연락이라는 것이 온건가. 아님 그냥 카드 만들라는 식의 광고 전화인가.. 기대감을 안고 수화기 버튼을 눌러본다.


“예, 설민영입니다.”


“안녕하세요. 설민영 소장님.. 이신가요?”


“예, 맞습니다. 제가 설민영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 제가 주택 하나를 짓고 싶어서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설계를 하신다고 들어서요.”


중년 여성의 제법 기품 있는 목소리. 정말 집을 지으려고 알아보는 사람이다. 정말 나에게도 연락이라는 게 오다니.. 기쁘면서도 당황스럽다.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할지 허둥지둥하면서도, 예전 사무실에서 소장님이 건축주를 만나면 하셨던 말들을 떠올리면서 재빨리 머리를 굴려본다. 


“예 맞습니다. 건축설계 사무실 맞구요. 땅은 구입하신 상태인가요?”


“아직.. 이제 알아보고 있는 중이에요. 서울 생활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서.. 수도권 근방에 여기저기 다녀보고 있는 중인데.. ”


“아.. 그러시군요. 그럼 후보지가 몇 군데 있으신 건가요?”


“이번 주에 00시에 한 군데 보고 왔고.. 부동산에서 추천해줘서 00시에도 한 군데 다녀와 볼 생각이에요.”


00시라면 부자들만 사는 동네인데.. 돈이 좀 있는 사람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러시군요.. 음.. 아직 땅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시라면.. 제가 어떤 방식으로 도와드리면 될까요?”


“음.. 민영 씨. 아니 설 소장님이라고 불러야겠죠? 고객이 찾는 전화를 했으면 능동적으로 도와줄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걸 고객보고 알려달라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갑자기 상대방이 훈계조로 나오니 당황스럽다. 안 그래도 건축주의 전화는 처음이라 정신이 없는데, 훈계까지 들으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된다.


“....”


당황한 민영은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몇 초가 흘러갔다. 침묵을 깨고 건축주가 말을 이어간다.


“하하. 내가 초면인데 좀 말을 세게 하긴 했네요. 그럼 이렇게 하죠. 00시에 알아보고 있는 땅 주소를 알려줄게요. 이번 주 토요일날 같이 보기로 해요. 땅 조건이나 법규 이런 거 좀 알아보고 그날 저한테 브리핑해주세요. 그런 건 가능하시죠?”


“네.. 네. 그럼요. 가능합니다. 토요일날 몇 시 정도에 방문 예정이신가요?”


“오후 2시쯤이 좋겠네요. 그럼 그날 봬요. 주소는 문자로 남겨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떻게 아시고 연락을 주신 걸까요?”


민영은 이 점이 내심 가장 궁금했다. 홈페이지라고 그럴싸하게 만든 것도 없고 기사가 나간 것도 아니다. 친척이나 지인도 아닌 사람이 나를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한 걸까?


“음.. 그냥 인터넷에서 찾다 보니 알게 됐어요. 사무실 이름이 좋더라고요. 스노우 건축사사무소. 성 따라서 지은 거죠? 하하.”


“아.. 예.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


“제 이름은 양수경이예요.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날 뵙겠습니다.”


사무실 이름은 내가 봐도 잘 짓긴 했지만.. 이름만 보고 연락을 했다구? 민영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무런 실적이나 경력도 모른 채로 이름만 보고 연락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의심은 제쳐둔 채로 문자로 온 주소를 찾아본다. 인터넷에서 토지이용계획 확인원을 찾아보면 법규와 관련된 그 땅의 정보 대부분을 찾을 수 있다.  


‘아.. 1종 전용 주거지역이구나.. 그럼 일조 적용을 해야 하고.. 지구단위 계획 구역이니까 그것부터 찾아봐야겠구나..’


민영은 얼른 법규 사항부터 체크해본다. 예전에 사무실에서 자주 했던 것들이지만 워낙 오래되어서 기억이 흐릿해지는 느낌이다. 설계의 시작은 법규 체크이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작업이다. 민영은 생각나는 법규들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 하나하나 적어본다.


약속했던 날이 왔다. 민영은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려 현장에 도착했다. 


‘여긴가.. 주변에 빈 땅은 여기밖에 없으니 여기가 맞겠지..’


주변 건물을 기웃거리며 사진을 몇 장 찍어본다. 역시 00시라 고급 주택이 많다. 약속시간 15분 전이라 아직 건축주는 오지 않은 모양이다.


잠시 후 멀리서 번쩍거리는 벤츠 한 대가 다가온다. 딱 봐도 고급 차량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지 주변에 차가 멈추고 안에서 뒷좌석에서 고급스럽게 차려입은 중년 여성 한 명이 내린다. 기사까지 대동한 것을 보니 정말 돈이 많긴 한 것 같다. 


“설민영 소장님이시죠? 안녕하세요. 전화드렸던 양수경이예요.”


“예.. 반갑습니다. 설민영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런데.. 차는 어디 있죠?”


“아.. 오늘은 버스 타고 왔습니다. 아직 차가 없어서..”


“사업하는 사람이 차도 없으면 어떻게 해요. 여기저기 다닐 일이 많을 텐데. 중고차라도 얼른 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물론 민영도 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경제 사정이 그렇지 못한 걸 어찌하랴. 민영은 그래도 초면인데 참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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