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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Dec 08. 2021

인허가 접수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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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에셔릭 하우스_루이스 칸


칸이 50대 후반에 설계한 또 다른 대표적인 주택 작품. 필라델피아 근방에 위치하고 있다. 평면을 4개의 켜로 구분하여 특유의 served - servant space를 구현했다. 그것이 입면 디자인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험실에 적용했던 공간 개념과 기초 pit까지 적극적으로 주택 설계에 도입했다.






새해가 밝았다. 민영은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해서 구청에 인허가를 접수했다.


‘이렇게 쬐그만 주택인데 허가에서 시비를 걸만한 게 있으려나.. 무사히 넘어가면 좋겠는데..’


접수한 후 며칠이 흘렀다. 구청에서 별다른 연락은 없고, 민영은 일단 실시설계 작업을 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수경도 허가가 접수되었다고 하니 궁금하여 민영에게 전화를 헸다.


“소장님, 허가 접수하셨죠? 며칠 내로 되겠죠? 별다른 거 없잖아요?”


“예, 대표님. 일단 기다리고는 있는데.. 처리 중이라니까요. 우선 주무관(담당 공무원을 뜻함)에게 접수했다고 전화는 넣었거든요. 좀 더 기다려보죠.”



띠리링.. 며칠 뒤, 지역번호로 전화가 왔다. 담당 주무관인가. 민영은 바짝 긴장하고 전화를 받았다.


“네, 스노우 건축사사무소입니다. ”


“네. 양수경 씨 단독주택 허가 넣으신 설계사무소죠. 담당 자신 가요?”


며칠 전 접수할 때 통화했던 여자 주무관이다. 민영은 긴장을 놓지 못하고 대화를 이어간다.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거기 설계사무소 맞죠? 여기 허가 처음 넣으세요?”


“네? 아.. 다른 지역에서는 자주 해봤는데 여긴 처음이죠..”


주무관의 목소리에 짜증이 잔뜩 배어있다. 이것도 몰라요? 하는 느낌?


“여기 이 서류 있잖아요. 당연히 넣으셔야 되는 건데.. 작년에 새로 나온 법규 모르세요?”


“아, 몰랐습니다. 최근에 나온 건가 보네요.”


“보완(인허가 서류가 부족할 경우 처리하는 절차) 열어 놓을 테니까요. 얼른 넣어주세요. 보완사항 적어놨으니까 확인 하시구요.”


“예.. 알겠습니다.”


“도면은 아직 못 봤는데요. 보고 연락드릴게요. 필요하면 들어오셔야 될 수도 있어요.”


“예? 전 사무실이 서울인데요?”


“에휴.. 그러니까 건축주 분도 지방 일은 지방에 맡기시지.. 참. 여기 분들도 먹고 사셔야 되는데. 아무튼 인터넷으로 제가 알아보기 힘드니까 오시는 게 처리하기가 나을 수 있어요. 아무튼 보완 빨리 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건축 인허가의 행정처리 절차는 내야 할 서류도 많고 거쳐야 할 부서도 많다. 거기다 매해 법규가 개정되고 지역마다 보는 기준이 다르니 설계사무소는 그때그때 공무원에게 읍소해가며 행정절차를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민영은 아는 선배 건축사무소에 물어 물어가며 서류를 접수하고 이틀이 흘렀다. 또다시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건축사님.. 이거 도면이 좀..”


“도면이.. 왜 그러시죠?”


“이렇게 복잡하게 그리시면 알아보기가 힘들잖아요. 인허가 도면은 간단하게 그려 주셔야죠. 와서 설명 좀 해주셔야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언제가 편하시죠?”


“내일 오전 중으로 와주세요. 오후엔 제가 출장이 있어서요.”


민영은 하는 수 없이 도면을 출력하고 구청으로 나설 채비를 한다.



지훈은 그 후로 민영에게 연락할 일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허가 접수할 때쯤 되면 도면이 거의 완성되어 회의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그래도 저번에 모형을 같이 만들고 제법 친해진 느낌이라, 지훈은 용기를 내서 민영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소장님, 저희 집 잘 되가죠?  궁금해서 전화 한번 드려 봤어요.”


“예.. 인허가 진행하고 있는데요. 구청에서 들어와 보라네요..”


“네? 왜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


“특별한 문제는 없는데.. 그냥 와서 설명 좀 해달라고 하네요.”


“거기 지방인데.. 차 타고 가도 한두 시간은 걸리지 않아요? 뭐 그렇게 대단할 게 있다고..”


“저희 입장에선 일단 가봐야죠. 허가 내주는 곳이 갑인데요.”


“아이고.. 참. 고달프네요.”


다음날, 민영은 도면과 서류를 챙겨서 구청에 도착했다. 예전 설계사무소를 다닐 때도 그랬지만, 구청 출입은 언제나 긴장된다. 허가를 내주는 사람에게 판결을 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잘못한 게 없어도 괜히 주눅 들게 된다.


건축과 층수를 확인하고 담당 주무관의 위치를 확인한다. 김미영 주무관. 어제 구청 홈페이지를 뒤지며 확인한 이름이다.


미영은 이제 10년 차가 되어가는 건축과 공무원이다. 20대 중반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이 부서에 배정받은 후 벌써 10여 년이 흘렀다. 다른 지역을 거쳐 지금의 구청으로 온 지는 3년 정도 되었다. 어디나 그렇지만 건축과 공무원들은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 업무시간 내내 각종 민원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다 보면 녹초가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거기다 다들 사연은 왜 그리 많고 말도 안 되는 걸로 공무원은 왜 그렇게 찾는 건지.. 하나하나 상대하다 보면 진이 빠진다. 거기다 처리해야 하는 인허가와 각종 업무 서류는 계속해서 밀려든다. 다른 공무원은 칼퇴라고 하는데, 야근을 밥 먹듯 하다 보니 누가 보면 이게 무슨 공무원이냐고 할 지경이다.


이번 구청은 유난히 민원이 많아서 짜증이 절로 난다. 거기다 30대 중반이 다 되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으니 집에서 잔소리는 계속 늘어가고, 회사에서도 ‘미영 씨, 시집 언제 가?’는 식으로 속을 긁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마음속에 화가 쌓여가니, 일을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기가 힘들다. 전화 한 통을 해도 짜증을 내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


‘오늘도 처리해야 할 일이 왜 이리 많아.. 어제 그 설계사무소에서 오기로 했지? 뭐 도면을 이따구로 그려서 알아보지도 못하게.. 들어오면 한바탕 뭐라고 해야겠어. 요새 설계사무실은 어린애들이 해가지고 개념이 없어.’


“안녕하세요.. 어제 전화드린 설계사무소인데요..”


그때, 어느새 민영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아, 오셨어요. 이리 앉으세요.”


민영이 자리에 앉자 미영이 한바탕 잔소리를 시작했다.


“도면을 이렇게 복잡하게 그리시면 어떻게 해요. 주기(도면에 다는 부연 설명) 다 빼고 치수가 보이도록 해주셔야죠. 필요하면 재료만 한 두 개 넣으시구요.”


“네, 알겠습니다...”


“법규는 다 체크하신 거죠? 전반적으로 설명 좀 해주세요.”


민영은 건축주에게 피티 하는 것처럼 건물 전체를 설명했다. 사실 2층짜리 조그만 단독주택이라 설명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이 정도입니다.. 별다를 게 없어요. 조그만 단독주택이라서요.”


“다른 부서에서 온 의견도 있으니 전달드릴게요. 도면에 이거랑 이거 좀 고쳐주시구요..”


미영은 언뜻 눈에 보이는 표현 몇 개를 지적했다. 사실 별달리 큰 사항도 아니라서 전화로 해도 충분한 사항이다.


‘뭐야, 이 정도 가지고 들어와 보라고 한 거야? 그냥 전화하고 세움터(인허가 처리를 하는 인터넷 시스템)로 접수하면 되는 수준이잖아?’


“이거 다 되시는 대로 출력해서 다시 들어와 주세요. 금방 되시죠?”


“네? 다시요?”


“왜요, 오시기 힘드세요? 여기선 다들 들어와서 처리하시는데.”


“아.. 아닙니다. 빨리 해서 들어오겠습니다..”


민영은 ‘뭐 이런 걸로 계속 들어오라고 하세요?’라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고 일단 서류를 챙겨서 나왔다.


민영이 몇 번씩 버스를 갈아타고 사무실까지 겨우 돌아오니 진이 빠진다. 몸에 힘이 없어서 주무관이 지적한 사항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민영이 걱정된 지훈은 고민하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오늘 잘 다녀오셨어요? 구청에서 잘 처리해 주던가요?”


“아니요.. 다녀왔는데. 조금 보완해서 들어오라네요. 내일 다시 들어가보려구요.”


“네? 또 들어오라고 했다구요? 보완사항이 많나요?”


“아니요.. 조금 고치는 정도인데... 저도 이해가 안 되네요.”


“와.. 거기 좀 심하네요. 일을 뭐 그렇게 하지? 안 되겠네요. 저도 같이 가요. 제가 건축주니까. 같이 가면 좀 압박이 될 거 아녜요.”


“아.. 아니에요. 훈 씨 바쁘실 텐데.. 굳이 오실 필요 없어요.”


“아닙니다. 저 내일 그렇게 할 일 없어요. 같이 가요 소장님.”


그렇게 다음날 두 사람은 구청 앞에서 만났다.


“오실 필요 없는데.. 죄송해요 지훈 씨.”


“아니에요, 소장님. 얼른 들어가 보죠.”


두 사람이 건축과로 들어섰다. 미영은 오늘도 민원 전화를 받고 있다.


“그런 게 아니구요, 선생님.. 소리 지르지 마시구요. 그렇게 소리 지르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네. 저희가 그런 것까지 전부 해결해 드릴수가 없어요. 옆 집 공사는 옆집 땅 안에서 하는 건데 저희가 일일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가 없잖아요. 재산권인데요. 저희가 최대한 소음, 먼지 없이 공사해달라고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네, 네. 선생님, 고정하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만 끊겠습니다..”


미영은 간신히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쉰다. 불현듯 인기척이 느껴져 옆을 보니 어제 봤던 여자 건축사와.. 웬 남자가 있다. 훤칠하니 잘생긴 미남이다. 미영은 본능적으로 호감이 느껴졌다.


“어, 어제 오신 건축사님이시고.. 같이 오신 분은 어떻게 오셨을까요?”


“네, 저는 집 설계를 맡긴 건축주입니다. 인허가 처리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같이 와봤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나요? 어제도 보완 조치를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아.. 아닙니다.. 별 일 아닌데.. 굳이 오실 필요 없는데 오셨네요.. 이리 앉으세요..”


민영은 직감적으로 주무관의 태도가 어제와는 180도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훨씬 더 사근사근하고 호의적이라고 해야 하나? 예전 사무실에서도 인허가가 정 안 풀리면 건축주가 직접 나서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이건 그때와도 다른 느낌이다. 저 여자, 잘 생긴 남자가 와서 이렇게 잘해주는 거 아냐?


“네, 네. 건축사님이 잘해 주셨는데.. 조금 보완해야 할 게 있어서 좀 부탁드렸어요. 그렇게 큰 일은 아니에요. 허가 금방 날 것 같은데요. 건축주님 너무 걱정 마세요.”


“이런 자잘한 것 때문에 설계사무소가 계속 방문해서 처리해야 되는 겁니까? 너무 번거로운 거 아니에요?”


“물론 인터넷이랑 전화로 처리하셔도 되죠. 안 들어오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건축사님이 굳이 들어오신다고 하시니까.. 건축사님, 왜 일부러 건축주님까지 모시고 오셨어요, 번거로우시게..”


“아.. 네. 죄송합니다.”


 민영은 이 주무관 진짜 뻔뻔하구나라고 생각했다. 뭐, 어쨌든 허가만 잘 나면 다행이긴 하지.


“음, 제가 들은 내용이랑 좀 다르긴 한데.. 아무튼 빨리 처리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주무관님.”


그렇게 협의를 마치고 두 사람은 구청을 나왔다.


“와.. 저 주무관 너무하네요. 어젠 그렇게 고압적을 대하더니. 오늘은 태도가 엄청 바꿨어요. 다른 사람인 줄 알았네요. 너무 친절한데? 사람 너무 차별 대우하네요.”


“그래요? 전 처음 보니까 잘 모르겠는데.. 친절한 사람 같은데요.”


“어휴, 진짜 어제 하던 걸 보셨어야 돼요. 사람을 거의 하인 취급했어요. 주무관들 설계사무소 막 대하는 거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한데.. 심한 정도였어요. 그리고 지훈 씨한테 과도하게 친절한데요.. 혹시 지훈 씨한테 호감이 있나..?”


“에..? 설마요. 처음 보는 사람인데.. 참 나. 아무튼 저렇게까지 말했으니 잘해 주겠죠.”


아닌 게 아니라 오랜만에 남자다운 남자를 만난 미영은 한겨울에 봄바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저런 사람만 민원인으로 매일 왔으면 좋겠다.. 매일 지겨운 사람들만 만나니.. 저 여자 건축사는 어떻게 저런 건축주를 물었지? 부럽다..’


며칠 후에 무사히 인허가 처리가 완료됐다.


“대표님, 인허가 처리됐습니다. 다행이네요. 실시설계 도서 거의 다 완료됐으니까, 바로 시공사 찾으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어떻게 진행하면 될까요?”


“제가 예전에 했던 시공사 사장님 몇 군데 연락해볼게요. 대표님도 혹시 아시는 시공사 있으시면 연락해봐 주세요. 주변에 수소문해보셔도 좋고요.”


“그래요. 알았어요. 제가 아무래도 사업을 하니까 시공하는 사람도 소개받은 사람들이 꽤 있어요.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지훈 씨도 신경 쓰고 있겠지. 민영은 지훈에게도 전화를 해본다.


“지훈 씨, 덕분에 인허가 처리 잘 됐어요. 아무래도 건축주가 찾아가니까 효과가 있네요.”


“그래요? 거의 바로 됐네요. 다행이네. 그 주무관 생각보다 착하네요. 하하.”


“네? 뭐예요, 말도 안 돼요. 저한텐 완전 싸가지  없었다고요.”


지훈은 민영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blog.naver.com/ratm8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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