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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Dec 24. 2021

시공사 선정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10


로비하우스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근대건축의 또 다른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대표작 중 하나. 미국의 초원을 상징하는 ‘프레리 양식’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다. 수평으로 쭉 뻗은 메스, 완만한 지붕, 테라스 상부의 긴 처마들이 건물의 수평성을 나타낸다. 이것들이 굴뚝 등의 수직적인 요소들과 조화를 이룬다.



보통 건물을 지으려면 관공서에 건축 인허가를 받고, 그 자료를 기반으로 착공신고를 해야 한다. 인허가는 계획이 적법한지를 심사받는 것이고, 착공신고는 ‘이제 공사를 합니다’라는 허락을 받는 것이다. 이외에 심의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경우도 있지만 수경과 민영의 건물은 간단한 단독주택이기 때문에 인허가와 착공신고를 거치면 바로 공사에 들어갈 수 있다. 


이제 인허가가 났으니 착공신고를 받으면 공사에 들어갈 수 있다. 그에 앞서 건물을 지어줄 시공사를 찾아야 한다. 


수경이 운영하는 회사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 수경의 오빠와 동생이 같이 운영하고 있다. 수경이 대표이사를, 오빠가 상무이사, 동생이 대외 이사의 자리를 맡고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3명이 같이 아버지를 도와 회사를 운영했지만, 돌아가실 즈음 해서 아버지는 수경에게 회사를 맡겼다. 판단력이 흐리고 과시와 허세를 좋아하는 첫째보다는 둘째인 수경이 강단이 있고 침착하게 회사를 운영하리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장남으로서 회사를 물려받지 못하고 동생 밑에서 일하게 된 오빠는 체면이 구겨져도 이만저만 구겨진 게 아니었다. 열등감과 불만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홧김에 회사를 나갈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만한 사업 수완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대로 눌러 앉아 오늘까지 오게 되었다. 


수경이 집을 지어 교외로 이사 간다는 소문은 이미 가족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수경의 오빠인 양석훈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대외적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다만 그 중에 실속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 중에 건설업계 사람들도 꽤 있었다.


“어, 민수야. 잘 지내냐? 웬일이야?”


“어, 석훈이 형. 잘 지내지? 요새 뭐 일 좀 없나 해서. 건설 경기도 안 좋고. 일이 안들어와 죽겠네. 거기 요새 장사 잘 된대매. 사람들 보석 산다고 난리던데. 어때, 건물 지을 일 좀 없어?”


“글세.. 요새 좀 물건이 팔리긴 하지만.. 건물 올릴 수준은 아니고.. 아 맞다. 너 주택 지을 수 있어? 한 오십 평 된다고 하던데. 내 동생이 집짓는다고 해서.”


“아, 거기 대표님? 대표가 집 지어? 그럼 꽤 크게 짓겠네. 50평 밖에 안 돼?”


“어. 수경이 걔가 뭐 크게 하는 걸 싫어해서. 사람이 돈을 벌었으면 어느 정도 품위 유지를 하고 살아야 하는데 걔가 그런 게 없어. 아무튼 어때, 그 정도 가능해?”


“그럼. 오십 평 정도는 껌이지. 나 예전에 고급주택도 많이 해봤어. 맨날 수천 평 짓던 사람인데 오십 평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어. 형 나 좀 소개시켜줘. 형이 밀어주면 그냥 할 수 있는 거 아냐?”


“수경이야 내 말 잘 듣지. 걔가 대표 이사긴 하지만 사실 중요한 결정은 내가 다 하니까.. 아무튼 말 해볼게. 나중에 잘 되면 한 턱 쏴라, 알았지?”


“그럼. 되기만 하면 뭐.. 50평이면.. 그래도 고급주택인데 칠팔억 쓰려나.. 아무튼 알았어. 잘 부탁해 형.”


건설업자 동생의 전화를 끊은 석훈은 작게 한숨을 쉬고 수경에게 전화를 건다.


“어, 오빠. 웬일이야.”


“그래, 수경아. 너 시공사 찾는다고 했지? 내가 아는 동생이 건설업체를 하고 있어서. 소개 좀 해주려고.”


“아, 그래? 어때, 잘 해?”


“원래 수천 평 되는 큰 상가 주로 하던 앤데.. 요새 경기가 안 좋아서 일이 좀 없나봐. 할 일 없냐고 전화가 와서. 주택도 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예전에 많이 해봤다고 하더라고. 규모도 작아서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던데.”


“음.. 뭐 홈페이지 같은 거 없어? 그래도 좀 알아보고 해야지.”


“주택 쪼그만 거 하는데 뭐 별 거 있겠어. 수천 평 하던 친군데 쉽게 하겠지. 수경아, 나도 대외적인 입장이 있고 하니까 웬만하면 이 친구한테 해 줘. 그거 오십 평 집 짓는데 몇 억이나 쓰겠어. 솔직히 너한테 그거 큰 돈 아니잖아. 내 체면도 있으니까 생각 잘 해줘.”


“...알았어 오빠. 그 분 연락처 좀 줘봐. 나도 좀 물어볼게.”


전화를 끊은 수경은 생각에 잠긴다. 쉽게 말해 큰 돈 안 들어가니 자기 체면 봐서 이 사람에게 해달라는 소리다. 예전부터 수경의 오빠는 실용적인 것보다 체면과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성향 때문에 무리한 결정을 몇 번 했고, 그것이 회사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 적도 있었다. 그런 실책들이 쌓여 아버지가 수경을 후계자로 결정하게 만든 것이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오빠와의 갈등이 꽤 있었다. 오빠가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독단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오빠를 회사에서 쫓아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혈연지간이라 그러기도 힘들다. 이 집짓기도 사실 수경의 입장에서는 큰 돈이 들어가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괜히 이상한 시공사를 골랐다가는 공사만 늘어지고 안 좋은 트러블에 휘말릴 수 있다. 수경은 신중하게 좋은 시공사를 골라볼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되면 오빠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다. 오빠는 안 그래도 수경이 회사 운영에서 자신을 무시한다는 불만이 쌓여 있는데, 이런 일에서도 자신의 제안을 뿌리친다면 불만이 폭발할 게 뻔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수경은 고민에 빠졌다.


민영도 시공사를 찾느라 분주해졌다. 예전에 왕래했던 시공사 몇 군데에 전화를 넣고 하실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설계사에 시공사에 도면 등의 도서를 보내고 공사가 가능한지, 공사비는 얼마에 가능한지 견적을 부탁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예, 대표님. 00시 쪽에 작은 주택이고.. 예. 한 오십 평 되요. 건축주가 꽤 부자라서 고급 주택으로 가야되구요. 예. 알겠습니다. 도면 보내드릴게요. 견적 좀 부탁드립니다. 어때요, 하실 수 있는 거에요? .... 예. 좀 바쁘지만 하실 수는 있는 걸로. 감사합니다.”


바쁘게 전화를 돌리고 메일을 보내는 와중에 수경에게 전화가 온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어때요 시공사 좀 찾아 보셨어요?”


“예, 대표님. 아는 분들께 연락 돌리고 있어요. 일단 다들 견적 내주신다고.. 금액은 어떠세요? 몇 억 정도 생각하시는지.. 대략 감은 잡고 말씀드려야 해서요.”


“하하. 소장님, 저 돈 많아요. 공사비 걱정 하지 마시고 일단 받아 보세요.”


민영은 수경이 진짜 부자는 부자인가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예전 사무실에서도 공사비 걱정 말라는 건축주는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말씀 드리기가 좀 그런데. 저희 오빠가 아는 시공사를 소개해줘서요. 여기도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예 아는 분이 계시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어요. 주택을 많이 하던 곳인가요?”


“큰 상가 같은 걸 많이 하던 분이라는데.. 저도 전화는 해봤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오빠 입장도 있고 해서 알아는 봐야 할 것 같아요.”


“주택이 좀 특수한 게 있어서.. 인테리어 같이 디테일한 걸 신경쓸 게 많거든요. 많이 해보신 분이 좋긴 합니다만.. 그래도 회사가 규모가 있으면 안정성이 있어서 좋기도 해요. 아무튼 연락처 보내주시면 거기도 자료 보내 놓겠습니다.”


수경에게 연락처를 받은 민영은 도면 등의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고 확인 전화를 해본다.


“예, 강민수 대표님 이시죠. 스노우 건축사사무소 설민영 소장이라고 합니다. 자료 보내드리고 연락드립니다.”


“예~ 안녕하세요. 대표님께 연락 받았습니다. 주택 하신다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잘 해드릴테니 걱정 마세요. 하하.”


이게 무슨 소리지? 아직 결정난 거 아닌데.. 뭔가 이미 다 정해진 것 처럼 말하는 시공사 사장의 말투다.


“대표님, 아직 결정난 건 아니고.. 아직 알아보는 단계 라서요. 다른 시공사에도 물어보는 줄입니다.”


“에이. 대표님 오빠분이랑 제가 잘 아는데.. 형 동생 하는 사이에요. 맨날 골프도 치고. 쪼끄만 주택 하는 건데 시공사가 뭐 큰 차이가 있겠어요. 저 맨날 수천 평 되는 건물 하던 사람이에요. 이런 꼬딱지만한 주택 같은 건 눈 감고도 합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하하.”


“예.. 제가 아는 내용이랑은 좀 다른데요.. 아무튼 자료 보내드릴게요. 견적 부탁드려요. 살펴보시고 궁금한 것 있으면 연락주세요.”


“네, 금액도 최대한 잘 써서 드릴게요. 뭐, 대표님 돈 워낙 많으시니까.. 그래도 챙겨드려야지. 아무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민영은 찜찜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었다. 수경을 직접 아는 것도 아니고 건너서 아는 건데 저렇게 자신만만해도 되는 건가?


며칠 뒤 민영은 시공사에서 보내 온 견적 자료들을 들고 수경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시공사 선정을 위한 회의를 위해서다.


“소장님은 어떠세요. 어느 시공사가 좋은 것 같아요?”


“전 아무래도 여기가.. 제가 예전 사무실에서 자주 하던 곳이기도 하고. 워낙 잘하세요. 고급 주택도 많이 해보셨고. 견적서 미리 보내드려서 보셨겠지만.. 항목별로 정말 꼼꼼하게 다 잡아놨잖아요. 이러면 금액 변동의 여지가 줄어서 시공할 때 분쟁 소지가 적어요. 물론 금액이 좀 많이 나오긴 하지만요.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신경써준 금액이긴 하거든요. 금액도 좀 협상은 해볼 여지는 있습니다.”


“제 생각에도 여기가 좋을 것 같아요. 실적 쭉 살펴봤는데 잘 하셨드라구요. 좋은 집 많이 하셨던데.. 금액도 아주 비싼 것도 아니고. 여기로 하죠.”


“예 그럼 이 회사 대표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근데, 대표님 오빠분이 소개해주신 시공사가.. 마치 다 결정된 것 처럼 말씀 하시더라구요. 걱정하지 마시라는 둥.. 그게 좀 걸리네요. 괜찮으시겠어요?”


“저희 오빠가 성격이 좀 그래요. 자기 친분 관계를 과시하려고.. 글쎄. 그 회사 좀 못 미덥던데. 주택도 거의 안해본 것 같기도 하고.”


“여기 저기 사업을 많이 벌리는 곳 같던데.. 이런 소규모 공사랑 좀 안 어울리는 곳이었어요. 견적서도 부실하구요. 전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그럼 제끼죠 뭐. 오빠는 제가 알아서 설득할게요. 걱정 말아요. 우리가 결정한 시공사로 추진합시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민영은 탈락한 시공사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어차피 알아야 할 사실이니까 어렵지만 알려드리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예, 예.. 대표님. 그렇게 됐습니다. 신경 많이 써주셨는데 죄송해요. 다음에 좋은 기회 있으면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이제 수경의 오빠가 소개해준 회사에 전화할 차례다. 거부반응이 심할 텐데.. 민영은 마음이 안내키지만, 심호흡을 하고 통화버튼을 누른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며칠 전에 연락드렸던 설민영 건축사입니다.”


“예, 예. 안녕하세요. 얘기 잘 되셨어요? 공사 언제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자재도 갖다 놓고 해야 하는데.”


“그게.. 죄송하지만 다른 시공사랑 하기로 했습니다. 대표님이랑 그렇게 결정해서 그거 말씀드리려고 전화 드린 거에요.”


“예? 뭐라구요? 뭐 잘못 아신거 아니에요? 석훈이 형이랑 얘기 다 됐는데.. 에이, 잘못 아셨겠지. 금액도 잘 써드렸는데. 대표님이랑 다시 얘기 해보세요.”


“아닙니다.. 양수경 대표님이랑 정확히 얘기 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하.. 이게 아닌데.. 석훈이 형이 얘기 다 됐다고 했는데.. 전화 해봐야 겠네. 일단 좀 계셔 보세요. 제가 전화 해볼게요.”


“네.. 알아보시고.. 알겠습니다.”


민영은 뭔가 일이 쉽게 정리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형, 어떻게 된거야. 건축사한테 전화 왔는데 딴 데랑 한다는데. 형 다 애기 됐다고 했잖아.”


“뭐라구? 수경이가 딴 데랑 하기로 했대? 하, 나 참.. 그렇게 얘기 해놓고 왜 딴소릴 해 걔는. 내가 전화 해볼게. 좀 기다려. 걱정하지 말고.”


석훈은 민영에게 전화를 건다.


“수경아, 그렇게 얘기 했는데 다른 시공사랑 한다고 하면 내가 입장이 뭐가 되냐. 내가 다 하는 것처럼 이야기 해놨단 말야.”


“그걸 오빠 맘대로 그렇게 말해버리면 어떡해.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시공사랑 지어야 집이 잘 나오지. 내 집 내가 짓는데 그것도 내 맘대로 못해?”


“야, 그 코딱지 만한 집 누가 짓는다고 무슨 차이가 난다고 그래. 그리고 내가 소개해준 걔는 그거보다 훨씬 큰 거 하던 애란 말야. 그런 주택은 눈 감고도 하는 애라고.”


“됐고. 난 내가 정한 시공사랑 할 거야.”


“하아.. 수경아. 이런 것도 날 안 챙겨주면 어쩌자는 거야. 회사도 니 맘대로 하면서 이런 것도 오빠 무시 하냐? 나도 사회 생활을 하려면 뭔가 친분관계를 잘 만들어 놔야 할 거 아냐. 너 이러면 나 진짜 섭섭하다. ”


“에휴.. 참.”


“그러지 말고. 내가 그 친구 사무실 한번 데려 올 테니까. 한번 만나 봐. 만나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언제 시간 괜찮아?”


수경은 차마 그것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약속시간을 잡았다. 일단 만나 보고 결정하자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더더욱 거절하기 힘들어질 것이 뻔하다. 수경은 오빠가 너무 강경하게 나오니 일단 저 시공사에 맡기는 것도 고려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blog.naver.com/ratm8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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