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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Feb 05. 2022

착공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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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하우스 - 렘 쿨하스, OMA

렘 쿨하스의 초기 주택 작업. 프랑스 언론 재벌의 주택이다. 초기작인 만큼 상당히 과감한 시도들이 많이 엿보인다. 3층의 거대한 콘크리트 메스 덩어리가 완전히 부유하는 느낌을 주려고 했고, 그를 위해 거대한 H빔 철골 보가 외부로 돌출되어 건물을 지지한다. ARUP의 세실 발몬드가 파트너로서 디자인 컨셉을 구현하기 위해 상당히 어려운 구조 문제를 해결해냈다. 휠체어를 타는 건축주를 위해 리프트, 수평 도어 등 평범한 주택에서 자주 보기 힘든 시설들도 보인다. 




계약을 하고 며칠이 지났다. 민영은 착공신고를 접수했다. 착공신고는 기존에 인허가 자료를 기반으로 해서 거의 동일한 내용을 접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야 될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부쩍 호의적으로 바뀐 주무관 덕분에 착공신고는 일사천리로 처리되었다.


“ 대표님, 안녕하세요. 어떻게, 야리가다(규준틀을 뜻하는 일본어. 건물이 앉혀질 자리를 표시한다)는 매셨어요? 내일쯤 가보려고 하는데요.”


“아, 건축사님. 일일이 안 와보셔도 되는데.. 그 정도는 저희가 알아서 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두요. 측량한지도 오래돼서 경계점(대지의 경계를 나타내는 꼭짓점. 원형 플라스틱, 말뚝 등으로 표시한다)도 잘 남아있나 모르겠네요.”


“그래요, 그럼 오세요. 내일쯤 목수 반장 데리고 작업 시작 하려구요. 석훈이 형도 한번 와보고 싶다고 했는데, 내일 오면 되겠네요. 현장소장님이랑 인사도 다들 나누시구요.”


다음날 아침 일찍 민영은 현장을 찾았다. 대지 답사 이후 굉장히 오랜만에 찾은 현장이다. 봄이 되니 또 다른 느낌이 난다. 몇 명의 작업자들이 부지런히 대지를 왔다 갔다 하면서 건물 자리를 잡고 있다. 비로소 공사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난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아침부터 바쁘시네요.”


“아이고, 안녕하세요, 소장님. 현장 사람들이야 이 시간에 나오는 게 기본이죠. 이 분이 현장소장입니다. 인사하세요.”


“안녕하세요. 한철수라고 합니다. 대표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대표 옆에 있던 한 남자가 인사를 건넨다. 체구가 작고 뭔가 몸에 힘이 없어 보이는 인상이다. 자신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 전화가.. 잠시만요.. 여보세요. 예, 예..”


“바쁘신가 보네요.”


“주변에 아직 마무리 못한 현장이 있어서.. 저 친구는 거기랑 같이 하고 있습니다.”


다른 현장이랑 걸쳐서 같이 하고 있다고.. 민영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조그만 현장일수록 현장소장의 능력과 장악력이 중요하다. 하나의 현장에만 집중해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 게 건축 현장이다.


“다른 현장이랑 같이 하신다구요? 아.. 그거 별로 안 좋은데.. 저희 현장에 제대로 신경 써주셔야죠. 걸쳐서 하면 저희 현장 제대로 못 봐주시잖아요.”


“아, 뭐 이런 조그만 현장 가지고 그러세요. 아직 초반이라 자주 안 나와봐도 됩니다. 안되면 제가 직접 커버할 거예요. 저 현장 가까워서 금방 왔다 갔다 합니다.”


“ 그래도..”


민영이 재차 말을 꺼내려는 순간 양석훈 상무(수경의 오빠)가 인사를 건네는 게 느껴진다.


“어이, 민수야. 잘 돼가? 어때? 아, 설 소장님이라고 하셨죠? 안녕하세요.”


석훈이 수경과 함께 현장을 방문한 것 같다. 저 멀리서 수경이 다가온다.


“이제 시작인데 뭘. 잘 돼가고 할 게 있나. 아이고, 대표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대표님. 오늘 시작한다고 하셔서 나와봤어요. 설 소장님 계셨네. 오신다고 전화 주시지 그러셨어요.”


“네, 대표님. 현장소장님 소개받고 있었습니다.”


“이쪽이 건축주.. 건물주인이시지. 양수경 대표님이셔. 인사드려.”


“안녕하세요. 현장 소장을 맡게 된 한철수라고 합니다.”


중요한 사람들이 모여 인사를 나눈다. 민영은 현장 소장이 다른 현장을 나가고 있다고 하는 게 영 찜찜하다.


“대표님, 현장 소장님이 다른 현장도 본다고 하셔서요. 그게 좀 마음이..”


“아.. 대표님. 현장소장님이 다른 현장도 같이 보세요?”


“아, 별거 아닙니다. 마무리 공정이 조금 남아서.. 준공 때까지 한 이삼주? 만 신경 쓰면 됩니다. 저희도 사람을 바로바로 뺄 수가 없어서.. 안되면 제가 직접 나와볼 테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우리 설 소장님이 예민하시네. 하하.”


시공사 대표는 천연덕스럽게 웃어넘겼다. 아무래도 여러 개의 현장을 한꺼번에 돌리는 시공사인 것 같다. 


“현장 많이 돌리시나 봐요? 어떠세요?”

“회사를 유지하려고 하니.. 최근엔 큰 게 없어서 작은 것 위주로 좀 많이 돌리고 있긴 합니다. 겨울 껴서 공사가 좀 늦어지고 있긴 한데.. 빨리 다 마무리 지으려고요. 요 근방에 몇 개 있습니다.”


“지훈이가 온다고 했는데.. 설 소장님, 지훈이 본 지 오래됐죠? 한 번 와보겠다고 해서요.”


“지훈 씨.. 아니 강지훈 대표님도 오신다구요?”


민영은 화급히 말을 바꾼다. 몇 번 만났다고 익숙해져서일까. 자기도 모르게 지훈 씨라고 부르고 말았다. 속으로는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하하. 지훈이랑 자주 봤나 보네. 괜찮아요. 나이대도 비슷한데, 서로 친하게 지내면 좋지 뭐.”


“어 다들 계셨네. 삼촌도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때마침 지훈이 도착했다. 집을 짓기 시작한다고 해서 궁금하던 차였다. 


“어.. 설 소장님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민영을 만났다. 지훈은 속으로 굉장히 들떴다.


“네 대표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어머니랑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가, 갑자기 대표라고 불리니 지훈은 어색했다.


“이 작업은 뭘 하는 거죠? 집 짓는 걸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라서..”


지훈은 현장소장에게 물었다.


“이게 규준틀이라고.. 건물 들어설 자리를 잡는 겁니다.”


“이게 이렇게 허술하게 해도 되나? 너무 대충 하시는 거 아니에요?”


“저 사람들 노가다 몇십 년 한 사람들입니다. 경력이 있으니까요. 괜찮을 겁니다.”


뭐야, 자기가 책임진다는 게 아니고 작업자들 믿는다는 건가? 말투가 영.. 지훈은 처음 보는 현장소장이지만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여기 담당 목수님이신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목수 반장은 인사를 들은 체 만 체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사실 현장에서 작업자들은 건축주를 포함해서 외부인과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는다. 한꺼번에 여러 사람 말을 듣다 보면 방향에 혼선만 오기 때문이다. 현장 소장하고만 대화를 하는 편이다.  


“제가 이 집에 살 사람이라 관심이 많습니다. 저도 나무를 다루는 사람이라.. 목수 반장님이라고 하시던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오전 작업이 끝나고 일행은 근처 중국집에서 식사 자리를 가졌다.


“아무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잘 부탁드립니다. 현장소장님.”


“네, 대표님. 이렇게 높으신 분들 집을 짓게 되니까 부담이 꽤 크네요..”


“에이, 이 사람이 뭘 그런 소릴 해. 잘할 겁니다.”


민영은 현장소장이 시공사 대표에게 상당히 주눅 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하는 것도 자신이 없고.. 과연 현장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맞는 걸까. 경험도 별로 없어 보이고.. 민영은 현장 소장이 계속 걱정이 되었다.


지훈이 물었다.


“그런데 아까 작업하시던 분들은 어디 가셨어요? 따로 드시나요?”


“네, 현장에서 작업자들은 주로 밥을 따로 먹습니다. 공사비에서 식대도 따로 책정되어 있고..”


“그래요. 같이 드시면 좋을 텐데. 결국 그분들이 집 만드시는 거잖아요.”


“하하.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 사람들 몸에 먼지도 많이 묻어있고, 대표님들 불편하실 겁니다.”


뭐야, 작업자들 무시하는 건가. 지훈은 시공사 대표의 말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음.. 목수 반장님은 어떠세요. 잘하시는 분인가요?”


“제가 가끔 쓰던 사람인데, 워낙 다른 현장이 많이 돌아가서 급하게 불러왔습니다. 저랑 아주 자주 해본 사람은 아닌데, 평판은 꽤 좋더라구요. 아마 잘할 겁니다.”


작은 현장이라 잘 모르는 사람 데려와도 된다는 소린가..  민영은 예민해져서 그런지 시공사 대표의 한마디 한마디가 곱게 들리지 않는다.


“아무튼 이렇게 공사가 시작되니까 뭔가 추진이 되는 것 같아서 좋네요. 저는 공사 기간을 최대한 좀 당겨서 겨울엔 들어왔으면 하는데, 어때요. 가능하시겠어요?”


“그럼요, 대표님. 이런 현장 몇 달이면 다 하고도 남습니다. 겨울이 아니라 가을에 들어오실 수 있을 겁니다. 늦어도 한 10월 정도? 4~5 달이면 다 하죠. 골조 한 두 달이면 다 되고, 마감 두세 달 하면 되니까요.”


시공사들은 일단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개월 수로 따지면 저렇게 볼 수도 있지만 여러 변수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여름에 혹서기나 장마철에 빠지는 날수가 꽤 된다. 땅을 팠을 때 암반 등이 나오거나 주변 이웃들이 민원이 생겨도 공사가 늦어진다. 장마가 아니더라도 비가 오면 공사는 못한다. 이런 것들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을 때 저 정도 시간에 가능한 것이다. 민영은 이러한 사실을 따지려다가 분위기를 보고 그만두기로 했다. 


석훈이 말을 꺼냈다.


“그래, 민수가 잘 챙겨서 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식사 나왔는데 드시죠.”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지훈이 민영에게 말을 건넸다.


“소장님, 잘 지내셨죠? 오랜만이에요.”


“네 지훈 씨.. 제가 다른 분들 계셔서 지훈 씨라고 부르기가 민망하네요.”


“에이 괜찮아요. 소장님 얼굴 좋아지셨네요.”


지훈은 예뻐진 것 같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돌려 말했다.


“현장 소장님이 영 비리비리한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제가 봐도 영.. 믿음이 안 가요.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최대한 자주 나와보려고요.”


“소장님이 고생이 많으시네요. 저도 최대한 자주 와볼게요. 오실 때 연락 주세요. 저도 그때 같이 나올게요.”


지훈은 이런 핑계로 민영을 만나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공사 현장의 첫날은 마무리되었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blog.naver.com/ratm8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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