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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Feb 18. 2022

공사 진행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13

 


빌라 달 아바(Villa Dall'Ava)- 렘 쿨하스, OMA

렘 쿨하스의 또 다른 주택 작업. 초기작이니만큼 명확한 지향성과 실험성이 돋보인다. 지형 차를 극복한 메스 배치와 필로티로 띄운 구성, 상부에 수영장을 올린 과감성이 보인다. 건축주는 각종 요구사항을 50여 차례의 편지로 전달했고, 그것을 면밀하게 구현한 주택이다. 필로티 형식과(기둥은 특이하지만) 부유하는 메스 형상, 가로로 긴 창 등이 르 꼬르뷔제 빌라 사보아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관점에서 보면 철판 등을 덧댄 외관 느낌이 다소 성의 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해체주의가 현실로 나오면서 생긴 상흔이라고 해야 할까.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설 소장님.”


“네, 지훈 씨. 잘 지내시죠?”


오랜만에 지훈의 전화다. 민영은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네, 저야 잘 지내죠. 하하. 소장님, 현장 언제쯤 오세요? 저도 맞춰서 한번 가보려구요.”


“아.. 이번 주는 좀 바빠서요. 다음 주 초에 가보려고 해요.”


“와, 소장님 일 좀 생기셨어요? 바빠지셨다니 다행이네요.”


“아는 선배가 현상설계 같이 해보자고 해서.. 마냥 놀 수 없어서 같이 하기로 했는데 금요일에 마감이라서요. 이번 주는 정신이 좀 없네요..”


“현상설계라면 공모전 말씀하시는 거죠? 바쁘시겠네요. 잘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먹을 거라도 들고 한번 찾아갈까요?”


“아.. 아니에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마감이라 정신없기도 하고..”


민영은 내심 지훈이 한번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선배 눈치도 보이고 이상한 오해를 받을 것 같아서 말리기로 했다.


“아.. 그래요? 아쉽네요. 아무튼 마감 잘 하시구요. 다음 주에 현장 오실 때 봬요.”


민영은 선배와 함께 정신없이 현상설계를 마감하고 주말에 몸을 좀 추스른 뒤 현장을 방문했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네, 지훈 씨 잘 지내셨죠?”


“현상 마감은 잘하셨어요?”


“뭐 그럭저럭.. 두 사람이 다 하려니까 힘들더라고요. 겨우 맞춰서 냈어요.”


“고생하셨네요. 제가 이따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일단 현장 한번 봐요. 뭣 좀 진행이 됐나?”


두 사람은 현장에 들어섰다. 현장 소장은 어디 갔는지 안 보이고, 목수 반장만 부지런히 작업자들과 함께 거푸집 형틀을 짜고 있다.


“현장소장님 어디 가셨지.. 전화 일단 먼저 해봐야겠어요.”


뚜, 뚜.... 통화 중이다. 일단 목수 반장에게라도 물어보기로 했다.


“반장님, 안녕하세요. 현장소장님 어디 가셨어요?”


“그 양반, 저쪽 일 바쁘다고 도통 보이질 않는데. 이번 주에도 두 번인가 왔을걸. 그것도 잠깐 있다 가던데. 뭐 많이 바쁜가 봐요.”


민영의 머릿속에 불안감이 싹튼다. 아무리 작은 현장이라지만 현장 소장이 계속 붙어있어야 되는데... 지훈이 말했다.


“소장님. 저번부터 그 현장소장 불안하긴 했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요?”


“이러면 안 되죠.. 계속 붙어서 현장을 챙겨야 되는데.. 일단 대표한테라도 전화 좀 해봐야겠어요.”


다행히 시공사 대표는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대표님. 안녕하세요. 용인 주택 설민영 소장인데요.”


“아, 안녕하세요. 그 주택 건축사님이시죠. 어쩐 일이세요?”


“지금 현장 나와 봤는데.. 현장 소장님은 안 계시고 작업자들만 일하고 있는데요. 많이 바쁘신가 봐요?”


“아 그 친구 저쪽 현장 갔나 보네. 미리 전화 좀 주고 오시지. 그냥 오시니까 기다리고 있질 않았나 보네요. 걱정 마세요. 저쪽 일 바빠서 잠깐 간 거니까.”


“전화드리고 온 건데... 이 시간쯤에 계실 거라고 해서 온 거거든요.”


“그쪽 일이 워낙 급해서 말씀 못 드리고 갔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아직 기초 형틀 작업 정도 하고 있죠? 그 정도면 그 친구 없어도 목수들이 알아서 잘할 거니까 걱정 마세요.”


“아무리 그래도.. 현장 소장님이 계속 봐주셔야죠. 이러면 비싼 시공사를 쓰는 의미가 없잖아요. 저희가 직접 하고 말지.”


“하하. 역시 소장님 까다로우시네. 제가 내일부터 계속 붙어있으라고 단단히 말해놓겠습니다. 그쪽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빨리 전화드리라고 할게요.”


잠시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현장 소장의 전화가 온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소장님. 이 쪽에 갑자기 급한 일이 터져서... 워낙 난리를 치니 안 와볼 수가 없었네요. 급히 오느라 전화도 못 드렸습니다.”


“네.. 어떠세요. 저희 현장 별일 없죠?”


“네, 아직 초기 단계라. 사실 제가 크게 봐줄 것도 없습니다. 목수 분들 워낙 베테랑들이라 알아서 잘하실 겁니다.”


여전히 다른 사람 일처럼 말하는 현장소장이다. 민영은 그런 말투가 영 거슬렸다.


“저기요, 소장님. 다른 사람 일처럼 말씀하시지 마시고요. 소장님이 책임지고 현장을 끌고 가셔야죠. 그쪽 현장이 얼마나 바쁜지 모르겠지만, 저흰 이 현장이 제일 중요하다고요. 잘 좀 챙겨주세요. 오늘 오실 수 있으세요?”


“오늘은 좀... 여기 수습하고 가면 저녁이나 될 것 같아서..”


못 온다는 건가. 감리를 나와서 현장소장을 못 보면 사실 크게 올 이유가 없다. 민영은 오늘 허탕 쳤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 소장님. 저 오늘 나와서 소장님 얼굴도 못 뵈면 여기 나올 이유가 없잖아요. 지금 저 혼자 보다 가란 건가요?”


“아.. 참. 정말 죄송합니다.. 목수 반장한테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그분이 지금 현장 보고 계시니까. 뭐 지적사항 있으시면 그분한테 전달해 주세요.”


“일단 알겠구요. 저희 현장 매일 체크하시고 사진 찍어서 단체방에 올려주세요. 특이사항 없는지 보고해 주시구요. 매일 해주셔야 돼요. 아셨죠?”


“네. 알겠습니다. 내일부터 매일 올리겠습니다.”


민영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지만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공사 초반부터 이런데 앞으로 어떨지 정말 걱정이다. 수경에서 전화를 걸기로 한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설민영입니다.”


“네, 소장님.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세요.”


“제가 오늘 현장에 나왔는데.. 현장 소장님도 안 계시고..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기분이 안 들어서요. 대표님이 직접 시공사 대표한테 전화 좀 하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아, 그래요.. 참.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하지. 암튼 알았어요. 고마워요 소장님.”


수경도 시공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민영이 들은 말과 비슷한 대답을 할 뿐이었다. 수경은 불안한 마음이 생겼지만 지금으로선 딱히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수경은 비서를 시켜서 입찰에 들어왔던 다른 시공사들의 연락처를 챙겨 달라고 했다. 


민영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현장을 둘러보았다. 우려한 것보다 거푸집 상태는 상당히 좋아 보였다. 어려운 부분도 빈틈없이 꼼꼼하게 잘 시공되어 있다. 현장 소장보다 목수 반장이 훨씬 더 믿음이 갔다.


“반장님, 어떠세요. 잘 돼가세요?”


“잘 돼가고 할 게 있나. 그냥 하는 거지.”


“저희 건물이 좀 어려워서.. 바닥도 꺾이고 벽도 좀 복잡하고 한데.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뭐 이렇게 어렵게 하셨어요. 최근에 이렇게 복잡한 건물 처음이네. 도면 보고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어요. 1,2층에 뚫린 부분도 있고 바닥도 엄청 꺾이고. 계단도 엄청 어렵더라고.”


“네, 아무튼 앞으로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


민영은 목수 반장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원래 현장과의 소통은 어떻게든 현장소장을 거치는 게 원칙이지만, 이렇게 현장소장이 자주 없다고 하면 직접 작업자들과 소통하는 수밖에 없다. 


“작업 지시는 현장 소장님 통해서 하시는 게 좋은데.. 이 친구가 맨날 자리에 없으니 원. 아무튼 알았어요.”


“혹시 이 시공사랑 자주 해보셨어요?”


“몇 년 전에 한번. 그때도 하도 급하다 해서 해주긴 해줬는데. 아 맞다. 그때도 현장소장 거의 자리에 없었어. 일주일에 두세 번 왔나. 여기 스타일이 그런 건지 원..”


원래 그런 시공사라.. 민영은 점점 더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민영과 지훈은 그렇게 현장 감리를 마치고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여기 맛있네. 그쵸? 잘 찾은 것 같아요.”


“네, 저도 맛있네요. 근데 지훈 씨는 괜히 저 때문에 시간 빼신 거 아니에요? 오셔도 크게 할 일도 없는데..”


“에이, 아니에요. 제가 살 집인데 자주 와봐야죠. 같은 목수인데 하는 일이 너무 달라서 신기하네요. 저도 좀 배우면 바로 할 수 있을 것 같던데. 목수 반장님은 말씀은 별로 없으신데, 일은 잘하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봐도 꼼꼼하게 일하는 성격 같았어요. 현장 소장이 너무 걱정인데, 그나마 위안이 되네요.”


지훈은 이렇게 민영과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한다는 게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집도 집이지만, 이렇게 민영이 온다고 하면 무조건 따라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blog.naver.com/ratm8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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