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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Mar 24. 2022

불안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14

  

스미스 하우스_리차드 마이어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ywpark5293/221400147770

백색의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의 초기 주택. 모더니즘의 정통 후계자로서 그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전면에 시원하게 뚫린 통창이 외부를 조망하게 되어 있고, 계단과 굴뚝 등이 디자인 요소로 활용되었다. 기둥을 벽에서 물려 입면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르 꼬르뷔제의 영향이 느껴지고, 기둥과 창호 프레임을 섬세하게 다룬 것은 미스가 연상된다. 뉴욕 파이브의 일원으로 다음 세대를 이끌 건축가의 등장을 알린 수작이다.





수경의 집이 착공한 지 3개월 정도가 흘렀다. 민영은 1~2주에 한번 정도 현장에 들르고, 수시로 전화를 하면서 현장 상황을 체크했다.


“뚜.. 뚜....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하.. 이 소장님 오늘도 전화를 안 받으시네. 다른 현장은 마무리됐다고 하셨는데 계속 이러시면 어떡하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가.. 나 참.’


민영은 답답한 마음에 시공사 대표에게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한 소장님 전화를 안 받으셔서요. 저희 현장 잘 되고 있는 거죠?”


“아 그 친구 전화 안 받아요? 나 참 왜 그러지. 주변 민원이 좀 나온 것 같던데, 그거 때문에 그러나 봐요. 제가 확인해볼게요. 걱정 마세요.”


“저희 가을 입주 예정인 거 아시죠? 골조 이제 1층 끝났는데, 2층 언제 들어가는 건가요?”


“뭐, 다음 주나 다다음주.. 금방 할 겁니다. 쬐끄만 건물 금방 올라가요. 우리 소장님 너무 걱정이 많으시네.”


민영은 답답한 마음에 다음날 일찍부터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현장소장은 없고 작업자들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나마 몇 명 보이지도 않는다. 중국말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말도 안 통하고 물어보기도 힘드니 민영은 정말 답답했다. 마침 멀리 목수 반장님이 보인다.


“반장님, 안녕하세요. 작업 잘 되시죠?”


“아, 소장님 또 오셨네. 멀리까지 자주도 오시네요. 뭐 그럭저럭이요.”


“이제 2층 형틀 짜시는 것 같은데.. 타설은 언제 되실 것 같으세요?”


“빠르면 다음 주면 되지 않을까요. 전체 일정은 현장 소장이 보는 거라.”


“그러니까요.. 현장소장님 어디 계세요? 도통 연락도 잘 안되고.. 오늘도 얘기 못하고 온 거예요.”


“그러세요.. 사실 저도 통화하기가 힘들어요. 어디 민원 처리한다고 간다고 했는데..”


그때 마침 트럭 한 대가 현장으로 들어선다. 현장 소장의 차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다.


“소장님, 왜 이렇게 얼굴 뵙기가 힘들어요. 전화도 안 되시고.”


“아.. 말도 마십쇼. 옆집 아저씨가 소리 난다고 하도 난리를 쳐서.. 토요일날 작업 좀 했다고 구청에 민원 넣고 공사 중지시키겠다고.. 구청에서 불러서 들어갔다 오는 길입니다. 주말에 조용히 작업하겠다고 사정사정하고 오는 길입니다.”


“아.. 그런가요. 그래서 잘 해결된 거죠?”


“뭐 어찌 저찌.. 계속 조심 하긴 해야죠. 소장님 잘 지내시죠?”


“예.. 소장님. 근데 전화 왜 이렇게 안 되세요. 거의 통화를 못하잖아요.”


“그게 참.. 최근엔 민원 땜에 그랬고.. 이래 저래 바빠서..”


현장 소장 말끝이 기어들어간다. 뭔가 대답에 자신이 없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며칠 동안 계속 통화가 안 되는 게 말이 돼?


“뭔가 다른 일 하시는 거 아니죠? 여기 현장에 집중해주셔야 돼요.”


“그럼요. 제가 무슨 일을 하겠어요. 저희 대표님이 하도 도와 달라 하셔 가지고 다른 현장도 가끔 가긴 하는데..”


“네? 다른 현장 가신다구요?”


“잠깐잠깐 가는 거예요. 자재 사러  갈 때 들르고 하는 거니 별 거 아닙니다.”


뭐야. 여기 말고 다른 데도 보고 있다는 건가. 민영은 불안이 밀려왔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바로 시공사 대표에게 전화를 건다.


“대표님. 설민영입니다. 여기 한 소장님이 다른 현장도 같이 보신다는데. 이거 맞는 건가요? 저번 현장 끝나셨다면서요. 저희 현장만 집중해주셔도 시원치 않은데.. 안 그래도 공사 진도가 안 나가는 느낌인데. 이래도 돼요?”


“아.. 주변 현장이 하도 급해서. 어쩔 수 없이 좀 같이 봐달라고 했어요. 며칠만 하는 거라. 좀 봐주세요 소장님.”


이 날은 할 수 없이 이렇게 끝났지만, 그 뒤로 현장소장과 통화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졌다. 현장은 작업자들끼리만 일을 해서 붕 뜬 느낌이었다. 어쩌다 통화가 되면 민원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장소장이 또다시 전화를 받지 않자 민영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쩌자는 거지? 공사를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도저히 안 되겠다. 목수 반장 아저씨한테라도 전화해봐야겠어.’


현장과 하도 연락이 안 돼서 민영은 목수 반장 번호를 받아두었던 터였다.


“여보세요, 반장님. 저 설민영입니다. 감리요. 어떻게, 작업 잘 되세요? 현장소장님 통화가 너무 안돼서.. 2층 형틀 짜고 배근하는 것까지 봤는데요.”


“그게.. 참. 저희도 공사 대금이 너무 입금이 안 돼서 작업 더 안 나가고 있어요. 신용으로 해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더 이상은 못 해주겠더라고. 작업자들 다 뺐어요.”


“네? 돈이 안 들어와서 작업 안 하신다구요?”


“예. 지난달에 좀 넣어주고 계속 안 주니까.. 우리도 밑지고 할 순 없잖아요.”


민영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급한 마음에 시공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저희 현장에 작업자 다 빠졌다는데.. 대금이 안 들어온다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아 그게.. 한 소장이 사정이 생겨서, 회사를 퇴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업무 처리가 좀 늦어진 것 같네요.”


“아, 그래요? 이렇게 갑자기 무슨 일이신지..”


“그게 개인 사정이라.. 저희도 걱정입니다.”


“그럼 저희 현장 누가 보시는 건가요?”


“당분간은 제가 직접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사람 구하려고 합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민영은 이제 이 대표의 말도 전부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를 일이었다. 뭔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할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수경에게 가끔 보고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좀 강하게 이야기해야 할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표님, 저 설민영입니다. 방금 현장이랑 시공사 대표랑 전화를 해봤는데..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거 같아요. 돈이 안 들어와서 작업자들이 다 빠졌다고 하고.. 시공사 대표는 현장소장이 퇴사하는 바람에 처리가 늦어졌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다 못 믿겠습니다.”


“그래요? 뭔가 이상한데.. 돈이 제때 안 나가고 있다는 거 아니에요? 그럼 분명히 회사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제 경험상 그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차하면 시공사가 잘못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이고.. 처음부터 불안 불안하더라니만. 오빠 얼굴 봐서 계약했더니 결국 이런 상황이 되어 버렸네..”


“아직 확실한 건 아니긴 합니다. 일단 대표님이 시공사 대표에게 확인을 해보셔야 할 것 같네요.”


수경은 한숨을 내쉬고 시공사 대표에게 전화를 건다.


“강 대표님, 저희 현장 돈 안 나가서 멈췄다면서요. 어떻게 된 건가요?”


“그게.. 설계사무소 소장님께 설명은 드렸습니다만, 현장소장이 퇴사를 하는 바람에 일처리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듣고 있자니 수경은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 건 필요 없구요. 제가 기성 늦게 드린 적 있나요? 계약서대로 따박 따박 넣어 드렸잖아요. 오빠 얼굴 봐서 믿고 계약해드렸더니 이렇게 하실 건가요? 그 회사 지금 제대로 돌아가는 거 맞나요? 제가 사업 오래 해봐서 아는데, 돈 안 돌아가는 회사는 위험한 겁니다. 제 돈 어디 갖다 쓰신 거예요?”


수경이 날카롭게 따지고 들어오니 시공사 대표는 진땀이 흐른다.


“아.. 아닙니다. 대표님. 대표님 돈 저희 현장에만 쓰고 있습니다..”


“됐고, 다 필요 없구요. 통장 내역 정리해서 내일 당장 들어오세요. 제 돈 쓰신 내역 전부 정리해서요. 안 들어오시면 저희 현장 포기하신 걸로 알고 변호사 시켜서 법적 조치하겠습니다. 저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닙니다. 그렇게 아시고, 그만 끊겠습니다.”


강 대표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의 시공사는 지금 상당히 위험했다. 무리하게 여러 현장을 돌리다가 한 군데서 펑크가 났고, 대금을 못 받게 생겨 다른 현장이 모두 연쇄적으로 물렸다. 현장 소장도 여러 군데를 한꺼번에 커버하다 더 이상 못 버티고 퇴사한 것이었다. 그나마 인건비라도 절약하려고 한 것도 있고..

강 대표가 믿을 건 석훈 밖에 없었다. 생각다 못해 전화를 걸었다.


“석훈이 형, 나야 민수.”


“어 그래. 잘 지내지? 수경이 집 잘 돼가고?”


“그게.. 참. 어떡하지. 형 나 지금 되게 힘들어. 회사가 망하게 생겼어.”


“어? 왜? 갑자기? 잘 돼가는 거 아니었어?”


“사실 양 대표님 집도 돈 별로 안 되는 일인데 일이 너무 없어서 할 수 없이 맡은 거야. 남는 것도 별로 없어. 사실 그 뒤로 좀 큰 시행사 일을 맡아서 시작하고 있었거든. 타운하우스 여러 동 올라가는 건데.. 한창 하고 있었는데 그 시행사가 부도가 나버렸어. 대금 거의 못 받았는데. 거기 메꾸려다 보니 다른 현장이 다 빵꾸가 났어...”


“그래? 어쩌냐.. 그럼 수경이 돈은? 다 쓴 거야?”


“그거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인데 어느 코에 갖다 붙여. 큰 거 막느라 벌써 다 써 버렸지. 솔직히 당장 공사 돌릴 돈이 하나도 없어. 형 혹시 돈 좀 빌려줄 거 없어?”


“뭔 소리야. 나 돈 없어. 이 회사에도 겨우 붙어있는 건데.. 너 어쩌려구 그래. 내가 너 그렇게 밀어줬으면 책임을 져야 될 거 아냐. 나 수경이 얼굴 어떻게 보라는 거야.”


“아.. 몰라. 당장 내 목숨이 왔다 갔다 하게 생겼는데 어쩌란 말야. 당장 업자들이 잔금 내놓으라고 사무실이 들이닥칠 판이란 말야. 그거 몇 억이 문제가 아니라구.”


“뭐라구? 그걸 말이라고 해? 몇 억은 돈도 아냐?”


“됐고. 끊을게 형. 나 잠적해야 될 거 같아. 앞으로 나 찾지 마. 통화 안 될 거야. 미안해 형.”


뚜뚜.. 전화가 끊겼다. 석훈은 황급히 다시 전화를 걸어보지만, 받지 않는다. 몇 번을 다시 걸자, 아예 착신 제한이 되었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잠적하겠다는 강 대표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 이제 어쩌지. 수경이한테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는데 이렇게 돼버리다니.. 수경이가 당장 손해 본 거 물어내라고 할 텐데.. 정말 돈이 하나도 없는데.. 나 참. 난감하네..’


사실 수경은 이런 정도의 사태는 다소간 각오하고 있던 차였다. 시공사 꼴을 보니 제대로 돌아갈 것 같지가 않았다. 잘 되면 좋고, 안되면 그걸 핑계로 오빠를 회사 경영에서 몰아낼 생각이었다.


“오빠, 얘기 들었어? 오빠가 소개해준 시공사에서 돈 안 나온대. 방금 대표한테 전화해보니 아예 착신 제한 걸어버렸던데. 아예 도망친 것 같아. 이제 어쩔 거야? 오빠가 책임 진대매.”


“그래.. 참 그 친구가 왜 그랬지.. 믿을 만한 친군데..”


“됐고. 공사비 물어준대매. 지금까지 나간 공사비 청구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한 이억 좀 안 될 거야. 그 정돈 줄 수 있지?”


“수경아.. 나 돈 없어.. 재작년에 이혼 소송해서 위자료로 다 나간 거 알잖아..”


수경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오빠가 착실하게 돈을 모으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오빠를 도와줘도 그 돈은 봄눈 녹듯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애시당초 오빠가 공사비를 책임진다는 말 자체를 믿지 않았던 수경이었다.


“하.. 근데 뭔 배짱으로 책임진다고 했어. 이억 정도 못 내는 거야? 오빠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미안하다 수경아.. 너 돈 많잖아. 그냥 다른 시공사 구해서 마무리하면 되지. 좀 봐줘..”


“오빠. 지금까지 오빠가 회사 경영에 이렇게 저렇게 간섭하는 거, 아버지 생각해서 꾹 참아왔는데.. 이제 도저히 안 되겠어. 알아서 사직서 내고 나가줘. 퇴직금 잘 챙겨 줄 테니까. 이게 오빠한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야.”


“수경아.. 이 회사 나가면 나 어떻게 먹고살라고. 나 좀 살려줘.”


“그러니까 퇴직금 준다잖아. 그 돈으로 사업을 하든지 어쩌든지 알아서 해. 나가기 싫으면 은행 융자를 내서라도 공사비 내놓던지. 둘 중 하나만 하라구.”


지금도 빚이 잔뜩 있는 석훈에게 그럴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수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이게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네.. 그건 그렇고, 집은 어떻게 마무리 하지.. 그걸 생각해야겠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blog.naver.com/ratm8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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