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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May 18. 2022

스승의 날 즈음하여


아직도 스승 하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생각나는 걸 보니 나도 옛날사람이 맞긴 맞는 것 같다. 근데 웃긴 건 난 아직 이 영화를 못봤다.

이미지 출처: http://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935






스승의 날이 지나갔다. 나도 어느 새 스승(?)이라는 입장에 서고 보니.. 정말 내가 잘 가르치고 있는건가? 아이들 설계에 도움을 주고 있는건가? 에 대한 의문이 많이 든다. 특히 이번 학기는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지난 두 학기는 처음 설계수업을 한다는 설레임 내지는 즐거움?으로 그냥 내 맘대로 진행했다면 이번 학기에는 정말 내 방식이 맞는건지? 에 대한 의문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예전 교수님들은 나를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다른 교수님들은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는지 자주 생각해보게 된다.




학생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나는 이제 설계를 하면 습관적으로 스케치를 한다. 현장과의 소통에서도 그렇고, 예전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안을 건넬 때도 그냥 말로 하지 않았다. 뭐라도 대충 그려서 줘야 내 마음이 편한 느낌이다. 말로만 전달하면 모호해지고 어렵다. 그게 학생들과의 수업에서도 반영되서 초반부터 이것 저것 참 많이도 그려준다. 그게 학생들의 방향을 제약할 수도 있고, 학생들도 거기에 끌려오는 느낌도 많이 들어서 좀 자제해보려고 하는데, 하다 보면 잘 안된다. 그냥 학생들이 해온 것들을 보면 '나라면 이렇게 할텐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손이 가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수업을 받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교수님들은 거의 아무것도 그려주지 않았다. 정말 안풀려서 답답하면 그제사 뭔가 그려주긴 했다 (내가 그려주는 것들도 학생들에게 이렇게 비춰지려나? 그럼 안되는데..ㅠ).  거의 말로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난 그 당시에 교수님들의 지도가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지도를 받으면서도 '어떻게 하라는 거지?'란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교수님들의 입장은 2가지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얘가 뭔가 아직 모자라긴 한데, 구체적으로 딱 꼬집어 어떤 걸 이야기하기 힘드니까 일단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것, 아니면 '어찌 해야 할지 생각나긴 하지만 내가 너무 많은 걸 제시해버리면 이 학생의 방향이 그리로 고착화되어 버리니 일단 전반적으로만 이야기해주자'는 방식이었을 듯 싶다. 왜냐하면 웬만하면 그려주는 나도 어떤 학생이 해온 것을 보면 '얘는 도대체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하거나 비슷한 사례 같은걸 보여주면서 넘어가버릴 때가 있다.





나의 고민은 내가 많이 관여하면 할 수록 그 학생의 작품이 아닌 '내가 한' 작품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최소한 그 학생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할 수준이면 좋은데, 어거지로 끌려와서 '학생 것도 아니고 교수의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게 최악인 것 같다. 예전에 내 친구도 그런 경험을 했었다. 학기 말 발표자(그 땐 클래스당 2명 정도만 뽑아서 대표 크리틱을 받았다)에 뽑혀서 좋아했는데, 발표하러 갈 시간이 되자 갑자기 교수님이 그 친구의 작품에 칼질을 하더니 몇 군데 수정을 해버렸다.  그 교수님 입장에서야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팔리는 격이기 때문에 생각다못해서 그랬을 테지만, 친구 입장에서 굉장히 기분 나빠했던 기억이 난다. 자기 작품이 아닌 교수님의 작품처럼 다루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태도, 방식이 학생들에게 그렇게 비춰지거나 작용될까봐 걱정이다. 앞으로는 최소한 '이것은 내 생각이고 제안이니 받아들이는 것은 너희가 판단해서 해라'는 조건을 확실히 말해줘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아직 미숙하고 그만큼의 판단능력이 없기 때문에  교수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그저 사례 몇 개 보여주면서 '알아서 해라'라고 하는 것도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건축도 정답이 없듯이 지도하는 방식도 정답이 없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말로 학생들을 잘 끌고 가는 타입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스케치나 그림으로 잘 끌고 가는 타입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학생들의 생각과 의지 등을 '공감'해주는 것이다. 사실 실무 경력이 웬만큼 쌓인 건축인이라면 학부생 정도 지도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생각나는 레퍼런스를 보여주며 설계안을 이끌어주는 건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다. 나도 학생들을 지도하지 않을 때는 그저 '계속 푸쉬하고 닭달(?)하면 되는거지, 어려울 게 뭐 있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하고 보니 정말 어렵다. 학생마다 생각이 다르고, 경향이 다르고,  맞는 지도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난 A방식으로 가르치는데 학생은 B방식이 어울릴 수도 있다. 난 심플한 구성을 원하는데 학생은 복잡한 구성을 추구할 수도 있다. 나는 직관적인 설계를 원하는데 학생은 철학적인 설계를 원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조율하고 맞추는 것이 어렵다. 난 이제 예전과는 학교도 달라져서 교육자 역시 '서비스'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도제식 교육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학생이 만족할 때까지, 학생을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생들도 그만큼 교수에게 예의있게 대해야 한다.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것보다 '공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난 거기엔 약간이나마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아마 내가 그다지 잘한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앞서 선발된 내 친구를 옆에서 부러워하던 학생이었으니까. 





내가 스스로 경계하는 것은 학생을 너무 친구처럼 대하는 것, 너무 편하게 대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그냥 '나이 많은 선배' 정도의 입장에서 말하다 보니 그런 경향이 생긴다. 내가 너무 권위를 내세우지 않아서 생기는 경향이기도 하고..  또 최신 트렌드의 요새 건물이 어떻게 지어지는지에 대한 흐름도 잘 파악해야 한다. 아무래도 현실에 치이는 설계, 소규모의 설계만 하다 보니 학교에서 다루는 다소 이상적이고 큰 규모의 설계에는 감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여러 고민들이 쌓이다 보면 다음학기엔 조금이나마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내 지도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답정너'이긴 하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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