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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R건축 _ 압구정 초등학교 다목적 강당

by 글쓰는 건축가

http://www.idrarchitects.com/02_agj_n_01.html


여러분은 학교 건축이라면 어떤 기억이 있는가? 나도 당연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딱히 건물에 관한 뚜렷한 기억이 없다.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박스형 건물이 좌우로 나열된 형태, 복도를 옆에 두고 끝없이 늘어선 교실 정도가 기억날 뿐이다. 건축가이자 교수인 유현준은 획일적인 학교 공간이 아이들의 창의성을 제한한다고 비판하였다. 의미 있는 지적이긴 하지만 사실 건축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새로운 학교 건물을 만들어 내서 아이들과 학부모, 선생님들에게 보여주고, 사용하게 하고, 실제로 다른 교육공간이 가능함을 증명해보여야 한다.

하지만 학교 건축을 우리 생각만큼 제대로, 성의 있게 만들어내는 일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학교건축에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육청, 학교와 예전부터 학교 관련 건물을 도맡아 온 설계사무소, 시공사들이 형성해 온 강고한 영역은 열정 있는 건축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너무나 넘기 힘든 장벽과도 같은 존재다.

이런 환경에서 IDR건축사사무소에서 완성한 2개의 초등학교, 중학교 다목적 강당은 너무나도 소중한 성과라고 할 만이다. 이후 많은 설계사무소가 이들의 작업을 레퍼런스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 건물들만큼 주목받을 만한 학교 건물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 중에서 내가 살펴보고 싶은 것은 압구정 초등학교 다목적 강당이다. 젊은 건축가상 도록에서 비평을 맡은 김재관 소장은 학교 다목적 강당의 프로그램은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들통’에 비유할 만 하다고 하였다. 과연 그렇다고 할 만한 것이 체육관 공간과 무대, 후면의 진입공간과 약간의 창고, 화장실이 프로그램의 전부다. 1층의 필로티는 차후 급식 시설이 시공될 예정이라 우선은 비워져서 시공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시도가 무엇이 있을까. 일단은 분할이다. 체육관 메스가 너무 크기 때문에 하나의 면으로 가기엔 부담스럽다. 거기에다 최소한의 채광을 위한 창을 내줘야 한다. 여기서 건축가는 ‘종이 접기’라는 컨셉을 적용했다. 넓은 면을 여러 번 접어서 변화를 줌과 동시에 찢어진 틈으로 창을 낸다. 체육관은 실내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기 때문에 벽에 부딪힐 수 있어 많은 창을 내기가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창을 적게 내버리면 활동하기에 너무 어두워져 버린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건물 상부에 천창 또는 측창을 내는 것이 보통이다. 이 건물에 적용된 것은 폴리카보네이트 측창이다(IDR의 다른 건물인 언북중학교 다목적 강당에는 천창이 적용되었다). 실내에서 볼 때 상단의 넓은 부분에 폴리카보네이트가 적용되어 매우 밝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 상단부 폴리카보네이트는 입면에서도 상부를 적절하게 분할하고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실 입면의 면 꺾기는 IDR이 풍무도서관 현상설계, 호계문화체육센터 등에서 시도했던 것으로, 초등학교에 걸맞게 종이접기라는 컨셉으로 적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이 다른 학교시설과 달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퀄리티가 높은 것이 첫 번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결론내기엔 뭔가 허전하다. 나는 ‘절제’와 ‘정리’가 이 건물의 특징이라고 보았다.

주변의 학교 건물, 어린이집, 유치원 등을 한번 둘러보자.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미명 아래 오만가지 색상과 재료, 형태들이 난립하고 있다. 퀄리티를 떠나 너무나 많은 요소가 덕지덕지 붙다보니 전혀 정리되지 못한 상태다.

IDR은 건물에 강조할 요소를 몇 가지로 한정했다. 접힌 입면과 상부의 폴리카보네이트, 세로로 긴 창 정도가 눈에 띄는 요소의 전부다. 주재료인 시멘트 벽돌도 최대한 차분한 색상을 적용해서 두드러지지 않게 했다. 내부의 색상은 무채색 계열로 한정하고 하나의 포인트색(연두색)만 신중하게 골라 한정된 공간에 적용했다. 창호 주변의 금속 디테일과 난간 디테일 등도 일관된 요소를 정돈하여 적용함으로서 전체적인 건물이 차분하고 세련된 느낌이 난다.

사실 주변을 보면 많은 요소를 한꺼번에 담다보니 망쳐진 건물이 너무 많다. 동그랗고 세모난 창, 요란한 색의 칼라강판, 중구난방 돌출된 캐노피 등등.. 싸고 비싸고를 떠나서 이런 요소들만 절제하고 정리해서 사용하기만 해도 건물은 훨씬 세련되어 보일 것이다. 아이들이 사용할 건물이라서 많은 색상과 요소를 적용한다는 것은 너무 1차원적인 접근이다. 솔직히 우리가 학교 건물을 보고 상상력을 키운 건 아니지 않는가? 차라리 잘 디자인된 건물을 보고 미적 감각을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최근 많은 학교 건물들이 공공현상을 통해 발주되어 젊은 건축가들이 기회를 얻고 있다. 하지만 IDR이 그러했듯이 건축가들이 상상하는 새로운 학교 건축을 만드는 길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부디 학교 건축을 둘러싼 환경이 개선되어, 더욱 훌륭한 학교 건축을 자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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