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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Jun 13. 2022

다툼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18 -

 

안도 다다오 - 고시노 주택

패션 디자이너 고시노를 위한 주택. 건축주가 살 공간과 파티를 위한 공간을 하나의 메스로, 나머지 하나의 메스를 6명이나 되는 자녀들과 게스트룸으로 분리해서 크게 2개의 메스로 집을 구성했다. 길게 찢은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과 안도 특유의 노출콘크리트가 만나 드라마틱한 내부 공간을 연출한다. 직사각형, 호 등의 기하학적 모양을 적용한 전형적인 안도 스타일의 주택이다. 최근에 미술작품 전시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사진출처 - https://blog.naver.com/jinsub0707/140040665204





준수와 헤어진 지훈과 민영은 말없이 걸었다. 10분 정도 아무 말도 없이 민영이 가는 대로 따라 걷고 있었다. 지훈도 아까 전 일이 화가 나서 그 생각만 하고 걷고 있다. 민영은 민영대로 생각이 많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지훈이 입을 열었다.

“소장님, 저희 어디 가는 거에요? 아까 고기 먹자고 하지 않으셨어요?”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죄송해요 지훈씨... 거의 다 온거 같아요.”


두 사람은 고기집에 앉아서 주문을 했다. 고기가 나오고 민영이 굽기 시작했지만 두 사람은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화가 나는 상황이지만.. 이대로 밥만 먹고 헤어질 순 없어.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알아야겠어.’

지훈이 큰 마음 먹고 입을 열었다.


“소장님, 사생활인건 알겠지만.. 아까 전 그 분이 누군지 알아야 되겠어요. 도대체 누구신가요?”

“아..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에요. 한 2년 전에.. 그러니까 지금 사무소 오픈하기 전에 만났던 사람이에요.”

“그래요.. 이런 질문 하면 실례일 수 있겠지만.. 왜 헤어지신 거죠? 그리고 지금 이렇게 불쑥 나타난 이유가 뭐에요?”


“그게..”

민영은 마지 못해 옛날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예전 사무실에서 만나서 사귀었고, 같이 건축사 공부를 했고, 같이 개업을 하기로 했는데 준수가 갑자기 배신하고 공기업에 취업을 했던 이야기.. 그리고 다른 여자를 만나서 헤어지게 된 이야기 등등..


“..이렇게 된 거에요.”

“아..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죠? 그래서 그 대표이사 딸이랑 헤어지게 되니까 갑자기 소장님한테 연락하고 찾아온 거네요?”

“그렇죠.. 아마 마음 기댈 데가 없는 거 같아요..”


지훈은 마음 한구석에서 마음 약한 민영이 불쌍하기도 하면서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렇게 잘해주고, 챙겨주고, 연락하는 걸 보면 내 마음을 대강이라도 알 거 아닌가? 그런데도 옛날 남자가 나타났다고 저렇게 흔들린다는 건가? 그리고 나랑 같이 있으면서도 저렇게 티를 내야 하나?


지훈은 마음을 가다듬고 민영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하기로 했다.

“소장님,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저런 남자는 그만 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냥 신세가 궁해지니까 급한 마음에 찾아온 거잖아요. 소장님을 진짜로 생각해서 저러는 게 아니에요. 또 이용해먹다가 배신할 수 있다구요.”

“저도 알아요.. 제 친구들도 다들 절대 만나지 말라고 하고.. 하지만 옛 정이 있어서 그런지.. 불쌍하단 생각이 들긴 해요..”


지훈은 자기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만다.

“저런 자식이 뭐가 불쌍해요? 소장님이 당하신 건 생각 안 해 보셨어요? 그러니까 맨날 다른 사람한테 이용만 당하고 사시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됐어요. 소장님 그냥 그렇게 답답하게 사세요. 참 나 원. 소장님 같은 여자들이 있으니까 세상에 바람둥이들이 그렇게 잘 살고 있는 거라구요.”

“예? 뭐라구요? 말씀이 너무 심하시네요.”

“제가 뭐 틀린 말 했나요? 그네들 수작이 너무 눈에 빤히 보이는데 거기에 넘어가는 게 한심해서 그렇죠. 그런 여자들 많이 봤어요. 바람둥이한테 목 메고 사는 여자들..”


지훈의 심한 말에 민영은 울컥하고 만다.

“제가 남자한테 목 메는 여자라구요? 그렇게 한심한 여자로 보이세요?”

“소장님 정신 차리게 하려면 좀 쎄게 말해야 겠어요. 맞죠 뭐. 틀린 말 했나요?”

“지훈씨. 좀 너무하시네요. 사과하세요.”

“싫습니다. 사실을 말하는데 제가 왜 사과해야 하나요?”


지훈의 말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민영이 벌떡 일어났다.

“됐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밥값은 제가 낼 테니까 오늘은 그만 들어가시죠.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알겠습니다. 저도 오늘은 소장님이랑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보겠습니다.”


지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밤거리 속으로 뚜벅 뚜벅 사라져갔다. 혼자 남은 민영은 밥값을 계산하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왔다.


씻고 나서 침대에 걸터 앉은 민영은 서러움에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내가 그렇게 못나고 한심한 여자인가? 바람둥이한테 목 메고 사는 여자라고? 강지훈 그 사람이 나한테 그렇게 말할 자격이 되나? 아.. 속상해..’


집에 돌아온 지훈도 잠을 못 이루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말을 좀 심하게 했나.. 에휴. 하지만 그 여자도 정신 좀 차려야 돼. 뻔히 보이는 걸 속아 넘어가고 있으니. 마음이 그렇게 약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지? 그것도 그렇고 그 남자란 놈은 뭐하는 놈이야? 여자를 얼마나 등쳐먹으려고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 날부터 지훈은 민영에게 현장 상황을 이야기하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민영도 현장 상황이 궁금했지만 지훈에게 마음이 상해 전화를 하지 않았다.

“요새 설계사무실 소장님 잘 안나오시네.. 정말 부지런히 나오시더니 갑자기 왜 안나오실까? 혹시 강사장님 알아요? 관심 많다며.”

현장을 관리하고 있는 목수반장이 지훈에게 물었다.

“몰라요. 저도 연락 끊은지 꽤 됐어요”

“으잉? 강사장이 모르면 누가 알아? 전화 좀 해봐요, 잘해봐야지.”

“사장님, 설계사무소 소장님 얘기 그만하세요. 저도 좀 일이 있어서. 그만 가보겠습니다.”

목수반장은 지훈의 목소리가 쎄 한걸 보니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일이 생겼구나 싶었다.


집에 돌아온 지훈이 방에 틀어박혀 비용 지출, 자재 수급 등을 정리하고 있다. 현장 일과가 끝나도 집에 돌아와 해야 할 잔업들이 산더미다.

‘와.. 이건 뭐 24시간 현장 생각만 해야 하니. 전화도 계속 받아야 하고. 퇴근이란 게 없구나.. 이런 걸 노가다들은 정말 어떻게 하고 있는건지.. 설소장님한테 전화로 물어보고 싶어도 전화도 못하겠고.. 미치겠네.’


그 때 수경이 문을 두들기고 들어왔다.

“지훈아, 요새 고생 많지? 잘 되가?”

“뭐.. 그럭 저럭이요. 이게 정말 만만치가 않네요. 현장 사람들 말도 안듣고..”

“설소장님한테 자주 물어봐. 반장님하고도 친하게 지내고. 설소장님 요새 연락이 없네. 웬일이지, 항상 자주 보고했었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

“저도 몰라요. 연락 안하고 지낸지 꽤 돼서..”

“현장 소장이랑 감리랑 연락 안하고 공사 진행하는 게 말이 돼? 설소장이 안해도 니가 자꾸 해야지.”

“...”

민영과 지훈의 관계를 대충은 눈치 채고 있던 수경이었다.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너 설 소장님이랑 무슨 일 있지?”

“....”

거짓말을 못하는 지훈은 대답을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봐. 너 설소장님 좋아하는 거 대충은 알아. 엄마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우물쭈물하던 지훈이 할 수 없이 털어놓았다.


“역시.. 엄마는 알고 계셨군요.”

“너 하는 행동에서 다 티가 나는 걸 뭐. 니가 나 닮아서 감정 숨기는 걸 못하잖아. 그런 게 사업 하는 데 도움이 안되는 성격인데 말야.”

“맞아요. 그래도 뭔가 잘 되 가는 것 같았는데 일이 좀 생겼네요.”


이쯤 되니 지훈은 수경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대충 이렇게 된거에요.”

“그랬구나.. 참. 설 소장도 되게 답답한 성격이네. 그런 남자를 잘라내지 못하고 왜 자꾸 여지를 두고 있지? 확실하게 말해서 딱 끊어내야 하는데. 그런 남자들 뻔해. 처지가 궁색해지니까 착하던 옛날 여자 생각해서 빌붙는거지 뭐. 그러다 좀 나아지면 또 배신할텐데.. 에이그.”


“그러니까요. 잘 모르는 제가 봐도 뻔한데, 왜 그렇게 휘둘리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너도 한심한 건 마찬가지야. 말도 좀 심하게 한 것 같고.. 설 소장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당당히 얘기하고 그런 얘길 해야지, 지금 그런 어정쩡한 처지로 이런 저런 얘길 해봐야 사생활 침해일 뿐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너도 다 큰 마당에, 이런 얘기 하면 나도 사생활 침해이긴 하지만.. 아무튼 너도 소장님 좋아하면 당당히 고백하고 얘기해. 그렇게 꾸물떡 대는 거 너 답지 않아.”


“...”

말 없는 지훈을 뒤로 하고 수경은 방을 나왔다.


“쟤도 나 닮아서 연애하는 게 힘드네. 지금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계속 후회할텐데.. 나처럼 말야. 후후. 옛날 생각나네..”


민영도 지훈에게 며칠간 연락하지 않았다. 속상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너무 모질게 말한 지훈에게 섭섭한 마음도 컸다.


그러던 어느날, 또 다시 준수의 연락이 왔다.

‘이 오빠, 역시 포기하지 않았구나..’

“민영아, 나 준수야. 니 사무실 근처 와 있어. 그래도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


민영은 마지못해 끌려나오듯 근처 카페로 향했다.

“오랜만이네. 지난번엔 제대로 못 봤지. 시간 많이 안뺐을게. 앉아.”

준수는 여러 이야기를 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니가 나에게 남자로서 많이 실망하고 상심한 거 알아. 충분히 이해해. 그래서 난 너한테 바로 남녀사이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않을게. 그저 내가 예전에 일로서, 업무적으로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어. 내가 니 사무실로 들어가서 도와주면 너한테도 훨씬 도움이 될 거 아냐. 내 능력 알잖아.”

“그건 그렇지만..”


확실히 그랬다. 준수는 설계 업무적으로는 정말 나무랄데가 없는, 말 그대로 에이스였다. 같이 일하던 설계사무소에서도 2~3개의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진행했던 그였다. 소장님도 그런 준수를 무척 아끼고 키워주려고 했었다. 그만큼 그들이 떠날 때 아쉬 워했었고..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반 년은 돈 얘기 전혀 안할게. 내가 모아 놓은 돈이 조금은 있으니까 그걸 공동투자금으로 같이 써도 되고.. 그냥 돈 안 받고 재능기부 하겠다는 거야. 그냥 그렇게 도와주고 싶어. 그렇게 우리 둘이 하면 현상설계라도 될 거고, 일도 들어 올거야. 그렇게 자리 잡아가면 훨씬 편할 거 아냐. 돈 얘기는 그 뒤에 해도 되고.”


반 년 동안 무료봉사 하겠다. 준수 정도의 인력이 그 정도로 해준다면 민영에게는 더 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준수의 제안은 민영에게도 정말 혹하는 이야기였다.


“남녀 사이로서의 이야기는 전혀 안할게. 그저 순수하게 일, 업무적으로만 하는 이야기야. 어때?”

“음.. 생각해볼게, 오빠. 나한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그래, 알았어. 충분히 생각해보고 연락 줘.”


그렇게 둘은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민영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솔직히 이 정도 조건이면 괜찮긴 하지. 나 혼자 하려니 잡무도 너무 많고 일할 시간이 너무 부족해.. 현상 하나라도 할려면 다른 사람이랑 같이 해야 되고. 준수 오빠 정도 되는 사람이 붙으면 바로 할만해질거야.. 그렇긴 해도..’


준수는 민영이 보이지 않게 될 때쯤 해서 핸드폰을 집어 든다. 문자 메시지 몇 개를 확인하고 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그래.. 그래. 수영아. 니 마음 충분히 알아. 그래. 니 마음 같지 않겠지. 그래도 부모님 조금만 더 설득해줘. 우리 미래를 위한 거잖아. 그래. 힘들겠지.. 또 연락하자. 힘내고. 사랑해.”


‘젠장, 그놈의 대표이사, 고집 진짜 세네. 우리 집이 그렇게 못나 보였나..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수영이가 계속 설득하면 언젠간 넘어올 수 있어. 이쪽도 결코 포기해선 안돼. 내 출세길이 달린 일이니까. 일단 결혼만 하고 나면 사회적 시선도 있고, 계속 아부하다보면 결국 대표이사도 내 편으로 돌아설 거야. 나도 그런 사회성으론 자신 있으니까. 민영이도.. 좀 미안하지만 이 쪽으로도 한 발 걸쳐놓을 필요는 있어. 수영이랑 안 되면 민영이랑 설계사무실을 하면 되니까. 내 능력이면 설계사무소 못할 것도 없지. 아무튼 양쪽 다 가능성을 열어둬야 해.’


준수의 속셈은 결국 이런 것이었다. 대표이사가 결혼을 거부하긴 했지만, 딸(수영)이 준수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낸 건 아니었다. 둘 사이에 좋아하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준수는 계속 수영에게 대표이사를 설득하도록 하고 있었다. 동시에, 00공사에서 쫓겨날 마당이라 기댈 곳이 없던 준수는 민영에게 연락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럴 듯한 말로 계속 설득하다보면, 마음 약한 민영이 결국 자신에게 넘어오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이런 준수의 속셈도 모른 채, 민영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었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 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www.openstudioarch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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