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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Jun 01. 2022

 재회 2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17

안도 다다오 - 스미요시 주택

노출 콘크리트로 건축계를 평정했던 안도 다다오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 몇 개의 작은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격적으로 그를 알리게 된 것이 이 주택 작업이다. 전매특허 격인 노출 콘크리트가 적용되어 있고, 아주 작은 집이지만 중정과 브릿지를 이용해서 외부공간을 적극적으로 집안으로 끌어들인 공간 구성이 특징이다. 방에서 방을 이동할 때도 외부를 통해서 가야 해서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했는데, 이런 불친절한(?) 구성도 ‘내 건축을 소유하려면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는 배짱으로 밀고 나가는 안도 특유의 근성 내지는 투지를 느낄 수 있다.





다음날 지훈과 민영이 약속한 날이 왔다. 지훈은 최대한 일찍 현장을 마무리 짓고 나설 준비를 했다.


“강 사장님, 오늘 표정 좋은데. 뭐 좋은 일 있어?”

“아, 반장님. 오늘 설 소장님 만나서 밥 먹기로 해서요. 사무실에 찾아가기로 했어요.”

“아, 그래? 혹시 강 사장 설계 사무소 소장님 좋아하는 거 아냐? 그래서 표정이 그렇게 좋은 거 같은데.”


정곡을 찌르는 반장님의 말에 지훈의 얼굴이 빨개진다.


“아.. 하하. 제가 거짓말을 잘 못해서. 맞아요. 아직은 저 혼자 좋아하고 있긴 하지만.. 언제 고백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언젠간 고백하려구요. 반장님만 알고 계세요.”

“음.. 그렇구만. 좋을 때네. 젊을 때 좋은 사람 만나야지. 그 설계사무소 소장님 예쁘고 사람 좋아 보이던데. 잘해봐요.”


지훈은 반장님의 응원을 받으니 정말 민영과 사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 시간 민영은 사무실에 혼자 앉아서 고민에 빠져 있다. 그 뒤로 준수는 더 이상 연락을 해오진 않았지만, 민영의 머릿속은 온통 준수 생각뿐이다.


‘ 이 오빠가 그 뒤로 연락이 없네.. 정말 떨어져 나간 건가.. 아님. 잠깐 숨을 돌리는 건가. 나도 참, 왜 자꾸 그 오빠 생각이 나지.. 나도 정말 그 오빨 못 잊은 건가.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 그런가, 아님 남자로서 잊지 못하는 건가.. 하. 나도 참 미련하고 한심한 여자야..’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지훈의 전화다.


‘아 맞다. 지훈 씨가 오기로 했지.. 완전 깜빡하고 있었네. 어디 가서 밥을 먹지. 갈 데도 전혀 생각 안 했는데. 아마 지훈 씨는 여기 뭐가 있는지 잘 모를 텐데.. 어쩌지.’


“여보세요, 지훈 씨 오셨어요?”

“아뇨, 이제 출발하려구요. 안 막히면 한두 시간 걸릴 것 같아서 미리 알려 드리려구요. 소장님 맛있는 거 사주셔야 돼요. 점심도 제대로 안 먹었어요. 하하.”

“아.. 네. 알았어요. 운전 조심해서 오세요. 여기 차 댈 데가 그렇게 마땅치가 않아서.. 와서 전화 한번 주세요.”


지훈은 어렵사리 민영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예전에 설계 회의할 때 몇 번인가 와봐서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주변 이면도로에 주차하고 민영의 사무실로 향한다.


‘다행히 차 댈 데가 있었네. 바쁠 텐데 굳이 전화할 필요는 없겠지. 그냥 가기 뭐하니까 어디 가서 케잌이라도 하나 사갈까..’


지훈은 근처 빵집에서 롤케잌을 하나 사서 민영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건물 앞에서 서성거리는 웬 남자가 눈에 띈다.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얼굴이다. 그런데 얼굴이 꽤나 초조해 보인다. 왜 저러고 있지.. 싶으면서도 상관할 바는 아니다 보니 지훈은 그냥 지나쳐서 들어갔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사무실은 여전하네요.”


지훈이 민영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아, 지훈 씨 전화도 안 주시고.. 차는 잘 대셨어요?”

“다행히 주변에 바로 자리가 나더라구요. 잘 대고 왔어요. 이면도로에 계속 대도 되는 거죠?”

“전화 안 오면 괜찮아요. 번호 남기고 오셨죠?”

“네. 사무실 운영하시려면 주차장이 잘 되어 있음 좋을 텐데. 아, 이거 그냥 오기 뭐해서 하나 사 왔어요. 나중에 배고프실 때 드세요.”

“네, 감사해요 지훈 씨. 일단 여기 앉으세요. 어디 마실 게 좀 없나..”

지훈은 민영의 표정이 좋지 않다고 느꼈다. 며칠 전 통화에서도 말투에서 뭔가 고민이 느껴졌었다.

“소장님, 표정이 좀 안 좋으시네요. 요새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뇨.. 별일 없어요. 괜찮아요. 지훈 씨 현장은 잘 돌아가죠?”

“예, 매일 통화드리고 있으니까 현장 상황은 잘 아시잖아요. 외부 벽돌 올라가고 있고.. 쌓기 방식을 몇 가지 쓰셨던데. 영롱 쌓기? 그게 쉽지가 않은가 봐요.”

“네.. 그게 다들 쓰는 거긴 한데. 원래 제대로 하려면 벽돌도 큰 걸 써야 하고 벽돌 중간 구멍에 철물도 심어줘야 하거든요. 그래야 잘 버티는데. 그걸 안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지훈 씨가 그런 거 잘하는지 챙겨주셔야 돼요.”

“안 그래도 소장님 말 듣고 인터넷으로도 찾아보고 했는데.. 작업자들 대번에 그렇게 다 안 한다고 하던데요. 자기네는 그렇게 해본 적 없다고..”

“그건 그 사람들이 편하게 하려고 하는 거고요. 표준 시방은 철물 심고 하는 게 맞아요. 원래 벽돌 시공이 제대로 하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작업자들도 챙겨야 할 게 많아서 많이 힘든 작업이거든요.”

“그렇군요.. 전 그냥 쌓으면 되는 건 줄 알았지, 이렇게 챙길 게 많은지 몰랐네요.”

그때부터 지훈은 민영에게 벽돌 시공에 필요한 지식과 챙겨야 할 것들에 대해서 강의(?)를 들었다.

“아무튼 이 정도 챙겨 주시면 될 것 같고.. 장마 오기 전까지 진도를 최대한 빼놔야 하니까요. 지훈 씨가 최대한 현장 푸쉬해서 진행해주셔야 되겠어요.”

“안 그래도 그 사람들 저 딴 일하다 왔다고 좀 인정 못하는 분위기긴 한데.. 아무튼 건물주인이기도 하니까 결국 돈으로 밀어붙이고 있어요. 일 제대로 못하면 돈 못준다, 그렇게 협박하는 수밖에 없더라구요.”

“맞아요. 건축현장이라는 건 결국 돈으로 돌아가는 거라 돈으로 컨트롤하는 수밖에 없어요. 지금 처음 하시는 것치곤 정말 잘하고 계시는 거예요. 처음엔 진짜 엄청 걱정했었어요.”

“소장님 보시기에 제가 그 정도밖에 안 됐나요? 좀 더 믿음을 드렸어야 됐는데.. 하하.”

“다음 주에 방통(바닥 통 미장. 기포 콘크리트 등을 타설하고 바닥을 평탄화하는 작업을 말한다)하신다고 했고.. 그거 하면 양생 해야 되니까 실내 작업은 못할 거예요.”

“방통은 뭐였더라? 봐도 봐도 까먹으니 원.. 다시 설명 좀 해주세요.”


한참을 업무적인 이야기를 하고 나자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났다. 벌써 시간이 7시가 되어간다.


“어머, 시간 좀 봐. 지훈 씨 배고프시겠어요. 얼른 나가요.”

“아, 그럴까요?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얼른 나가죠. 뭐 드시겠어요?”

“주변에 고깃집 맛있는 데 있는데, 소고기 괜찮으세요? 고생하시는데 좋은 거 드셔야죠.”

“소고기 좋죠. 저 많이 먹을 건데, 괜찮으시죠? 하하.”


두 사람은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아, 맞다. 아까 건물 앞에 웬 남자가 서성거리던데.. 누굴 찾는 것 같기도 하고. 행동이 이상해서 기억이 나네요. 설마 소장님 찾는 건 아니겠지?”

“남자 가요?”


순간 민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설마 준수오빠가 찾아온 건 아니겠지?


“왜요, 소장님 찾을 사람 있어요?”

“아.. 아니에요. 지훈 씨. 얼른 가요.”


두 사람이 계단을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서려는 순간. 지훈의 눈에 아까 그 남자가 보인다. 아직 안 간 건가. 민영을 보자 순간 그 남자의 표정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민영을 찾아온 건가?


“민영아.. 민영이 맞구나. 제대로 찾아왔네.”


헉...  준수오빠가 여기 있다니. 설마 했더니 찾아온 사람이 준수가 맞았다. 민영은 준수를 보자 순간 얼어붙어버렸다. 지훈은 저 남자의 말투와 민영의 표정을 보고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오빠.. 여긴 웬일이야. 직접 찾아올 거면 연락이라도 해야지. 그냥 찾아오면 어떡해.”

“어차피 연락해봐야 오지 말라고 할 게 뻔하고.. 이렇게라도 와야 니 얼굴이라도 볼 것 같아서.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네.”

“.. 난 괜찮아. 이렇게 오지 마. 일하는 데 방해되고.. 찾아오신 손님한테도 실례야.”

“이 분은 누구? 혹시 사귀는 분인가?”

“... 아니. 지금 공사 중인 건물 현장소장님이셔. 건축주이기도 하고.”


민영은 잠깐 고민하다 아니라고 대답하고 만다.


“현장소장님이자 건축주? 특별한 분이시네.... 아 죄송합니다. 초면에 실례했습니다. 민영이랑 아는 사람입니다.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곤란하게 돼버렸네요. 손님이 오셨는 줄 몰랐습니다.”


지훈은 순간적으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기분이었다.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민영의 말이 가슴에 꽂힌다. 그래, 사귀는 사이가 아니긴 하지. 하지만 확인 사살하듯 딱 잘라버리는 민영의 말이 못내 아쉽다. 그건 그렇고, 이 남자는 대체 뭐야? 옛날에 사귀었던 남잔가? 왜 갑자기 나타난 거지?


“저도 초면에 실례지만, 누구시죠? 설 소장님이랑 아는 사이신가요?”

“네.. 예전에 사귀던 사이입니다. 지금은 헤어졌지만요. 오랜만에 찾아온 거긴 한데, 예고 없이 와서 민영이가 당황했나 보네요. 오늘은 다른 손님도 계시니 일단 가보겠습니다. 오늘은 가볼게 민영아. 좋은 시간 보내고. 또 연락할게.”


그런 인사를 남기고 준수는 인파 사이로 사라져 갔다. 지훈은 찜찜하고 불쾌한 마음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소장님 저 사람 뭐예요? 예전에 사귀던 분이라고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지훈 씨, 말하자면 긴데.. 아무튼 일단 자리 잡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지훈은 아무래도 오늘 기분 좋게 데이트를 즐기기는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예전 연재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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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 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www.openstudioarch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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