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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May 12. 2022

공사 진행2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16

 


벤츄리 하우스 - 로버트 벤츄리

포스트 모더니즘의 상징 같은 집이다. 로버트 벤츄리가 고향에 사시는 어머니를 위해 지은 집으로, 가로로 긴 사선형 박공 형태, 원형 및 직선 몰딩, 복잡한 내부 공간 등으로 그가 이론적으로 주장했던 포스트 모던의 철학을 건축으로 구현했다. 실제로 구현된 건축물보다 건축이론으로 유명한 로버트 벤츄리의 몇 안 되는 건물 중 가장 유명하다.




엉겁결에 현장 소장을 맡은 지훈은 아침마다 현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공사장 작업자들의 일상은 엄청나게 빠르다. 보통은 7시, 빠르면 6시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에 맞추려면 최소한 그즈음엔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 원래 아침잠이 많은 지훈은 알람을 몇 개를 맞추고서 겨우 일어났다. 새벽부터 씻고 나서려니 몸이 고되다.


‘야.. 이거 정말 보통 일이 아닌데. 노가다 하는 사람들 엄청 부지런해야겠어..’


오늘은 2층 타설을 하는 날이다. 오랫동안 멈춰있던 현장에 활기가 돈다.


“지훈아, 잘 돼가? 얼추 폼이 좀 나는데. 잘 어울린다 야.”


수경이 오랜만에 현장에 와서 아들을 챙겼다.


“엄마도 참. 겨우 겨우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네요.. 그냥 지켜만 봐서 되는 일도 아니고. 도면도 계속 다시 보면서 익히고 있어요.”


수경은 그래도 이렇게 일을 해나가는 아들을 보니 대견스럽다.


“다들 와 계셨네. 안녕하세요?”


민영이 도착해서 인사를 건넨다.


“네, 저희 아들이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설 소장님이 보시기에 어떠세요?”


“네. 그래도 열심히 하고 계세요. 아침마다 일찍 나오시고.. 무엇보다 전화를 너무 잘 받아주시니까 좋네요. 하하.”


전화야 당연히 잘 받아야지. 누구보다 민영의 전화를 기다리는 지훈이었다.


“오늘 타설은 별일 없죠? 어때요?”


“강 대표님.. 이랑 반장님이랑 워낙 꼼꼼하게 잘 챙겨주셔서.. 크게 제가 챙길 게 없어요. 하하”


“이제 현장 소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잘 부탁드립니다 강 소장님. 하하. 오늘 비용 얼마나 들 것 같아? 하루하루 청구해야 돼. 이게 밀리기 시작하면 엄청 복잡해질 거야.”


“그러니까요. 하루 일과 끝나면 그날 비용 정리하는 게 또 한참 걸려요.. 레미콘마다 얼마인지 다 받아놔야 해서..”


“요새 레미콘 비용 엄청 올랐다며.”


“말도 마세요. 돈도 돈인데.. 구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이 동네 레미콘 회사 전부 전화 돌려서 겨우 구한 거예요.”


그렇게 새 현장소장을 맞은 현장은 에너지가 넘쳤다. 지훈은 모르는 일이 생기면 목수 반장에게도 물어보고, 민영에게도 물어보면서 어떻게든 공사를 진행시켜나갔다.


어느 날, 민영은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개업식에 왔던 친구, 이지혜다.


“어머, 지혜야. 웬일이야.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일은 잘 되고?”


“나야 뭐. 항상 똑같지. 대형사 하는 일 다 거기서 거기지.”


“왜. 그래도 건축사도 땄는데. 소장 안 달아주나?”


“그놈의 소장 달면 뭐하나. 일만 왕창 시킬 텐데. 애 볼 시간만 더 없어. 나야 뭐 항상 다니던 회사고. 넌 어때? 사업 잘 돼가?”


“어찌 저찌 운영은 하고 있어. 예전에 설계했던 주택 하나 올라가고 있고.. 그 뒤론 수주가 쉽지 않네. 지은 언니.. 지은 언니 알지? 응. 그 언니랑 같이 현상설계 2개 했어. 당선은 안됐지만..”


“그래.. 역시 쉽지 않네. 나도 돈 때문에 여기 있긴 하지만.. 가끔 치사하고 더러워서 그냥 다 때려치우고 내 거 하고 싶을 때가 많아. 진짜 니 용기가 부러울 때가 있어. 대단하다 민영아.”


“에이. 뭐. 사무실 차리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지. 일 따오고 운영하는 게 힘든 거지..”


“아, 맞다. 너 그 소식 들었어? 김준수 얘기.. 혹시 아나?”


예전 남자 친구 김준수 얘기가 나오자 민영은 퍼뜩 놀란다. 오랜 시간 잊고 있던 그 이름..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아파오는 느낌이 든다.


“응? 왜? 준수오빠.. 아니 그 사람이 무슨 일 있어?”


“에이그.. 얘는 그런 일을 당하고도 오빠래.. 아무튼. 내가 그 00 공사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들었는데. 김준수가 파혼을 당했대. 결혼한다고 회사에 소문 다 퍼졌었는데.. ”


“파혼?”


“응. 원래 김준수가 거기서 사귀던 여자가 거기 대표이사 딸이었대. 아마 낙하산 비슷하게 꽂힌 거겠지 뭐. 김준수도 그런 여자랑 결혼하면 인생 역전이니까 접근했을 거고. 결혼 얘기까지 나오고 결혼식장도 알아보고.. 다 했었는데. 부모님 쪽에서 뭔가 안 맞았나 봐. 몇 번 만나보다가 우리 집안이랑 격이 안 맞다는 식으로 얘기가 나왔대. 원래 김준수 집안이 별로 안 좋았나 봐?”


“응.. 그 오빠 집이 좀 못살아.. 가난하지. 지방에서도 엄청 변두리에 살고.. 아버지도 막노동인가 하셨던 것 같고..”


“그랬구나. 암튼 그래서 부모님 쪽에서 이 집안은 아니다.. 는 식으로 나와서. 결국 파토 났나 봐. 김준수 입장에서도 개망신당한 거지 뭐. 회사 계속 다니기도 힘들 거고. 아직 붙어있긴 한다는데.. 대표이사 딸이랑 그렇게 해놓고 계속 다닐 수 있겠어? 조만간 나올 거 같다던데. 아무튼 00 공사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하다던데. 하기야 이 정도 사건이 잠잠하게 지나가기도 힘들겠지.”


준수 오빠한테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나 버리고 그렇게 갔으면 잘 살기라도 할 것이지, 어쩌다 그런 일까지..


“아무튼 너 모를 것 같아서. 진짜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 남자 전화 오면 받지도 마. 염치가 있으면 연락 안 하겠지만. 기댈 데가 없어서 너한테 연락할 수도 있으니까. 너 착한 거 아니까 계속 이용해먹으려고 했잖아, 그 자식.”


오빠가 그 정도 생각으로 그랬던 건 아닐 텐데.. 민영은 자기도 모르게 김준수를 생각하는 자신이 한심하다.


“암튼 그래. 널 그렇게 차 버리더니 천벌 받은 거지 뭐. 00 공사 나와도 이쪽 판에 소문 다 퍼져서 어디 갈데 있나 싶다. 아무튼 잘 지내 민영아. 그 주택도 잘 지어졌으면 좋겠다.”


“그래, 지혜야. 전화 줘서 고마워. 니 회사 근처 가면 전화할게. 한번 보자.”


전화를 끊자 민영의 마음이 심란하다. 준수 오빠가 그렇게 됐다구.. 안타깝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뭔가 복잡한 마음이다.


그날 저녁, 지훈의 전화가 왔다.


“설 소장님, 안녕하세요.”


“네, 지훈 씨. 무슨 일이세요.”


“아, 오늘 공사 잘 마쳤다구요. 오늘은 벽돌 물량 들어왔는데, 소장님이 지정하신 제품으로 잘 들어왔어요. 이거 자재받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네요.”


사실 별 일 있어서 전화하는 건 아니다. 그냥 하루 일과 끝나면 전화를 하는 것이다. 지훈은 이런저런 핑계로, 일로 매일 민영과 전화하는 게 낙이다.


“날씨가 더운데.. 지훈 씨가 고생이 많네요.”


“저야 뭐 여기서 잔소리만 하는데요. 실제 작업은 작업하시는 분들이 다 하시니까.. 진짜 여긴 서있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지경인데. 실제 일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사람이 없어서 다들 나이 든 분들이 하시는데.. 아무튼 다들 살아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지훈 씨도 물 자주 마시면서 하세요.”


“네, 저야 걱정 마세요. 하하. 건강한 건 타고난 편이니까..”


“지훈 씨 너무 고생 많으신데.. 제가 밥 한번 사드려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와, 이게 무슨 횡재냐. 안 그래도 언제 한번 따로 만날까요 라는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인데. 민영이 알아서 말을 해주다니..


“와, 정말요? 그럼 저야 감사하죠. 소장님 사주시는 밥이라면 언제라도 가서 먹어야죠.”


“그런가요? 하하. 지훈 씨가 저희 현장 맡으셔서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금요일에 여기 현장 일 좀 빨리 마치고 소장님 사무실 들릴게요. 대충 좀 협의드릴 일도 있고. 소장님 사무실도 가본 지 오래된 것 같아서.”


“아, 그러실래요? 그럼 내일 출발할 때 연락 주세요.”


그날 저녁. 민영은 혼자 이런저런 잔업들을 처리하고 있다. 사실 수경의 집 이후로 이렇다 할 수주건이 없어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던 차였다. 그래도 그런 작업들을 정리해서 홈페이지에라도 올리고 해야 일이 들어올 것 같아 미숙하지만 그런 것들을 공부하고 있다.


띠링~ 문자가 왔다. 누구지.


‘민영아.. 오랜만이네. 잘 지내?’


헉... 준수오빠다. 이 사람에게 정말로 연락이 오다니.. 사람이 급하고 곤경에 처하면 얼굴이 두꺼워진다더니. 무슨 낯짝으로 연락을 한 거지.


안 그래도 낮에 그의 소식을 듣고 심란했던 민영의 마음이 문자를 보고 더욱 복잡해진다. 답장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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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naver.com/ratm8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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