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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Jun 21. 2022

파국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21


 

프랭크 게리 - 게리 하우스

비정형 건축의 대가, 프랭크 게리가 직접 지은 자신의 집이다. 초기에 루이스 칸 등 모더니스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프랭크 게리는 50대에 이르러 포스트 모던, 해체주의 양식으로 생각을 바꾼다. 이 때 자신의 철학을 반영한 집을 직접 지어서 살게 되는데, 그 집이 게리 하우스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미국 양식의 집에다 골판재, 합판, 철망 등 상당히 어설픈 싸구려 재료들을 덕지 덕지(?) 덧붙이면서 집을 완성했다. 완성했다기 보다, 계속 고치고 바꾸면서 자신의 언어를 실험하고 적용하는 장으로 활용했다. 게리의 자유분방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건축물이라고 볼 수 있다. 







“수영아, 그러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이제부터 착실히 모으면 되잖아.”

“그걸 말이라고 해? 나 좀 그만 붙잡아. 갈 테니까 이거 놔!”


주차장에서 차에 타려는 수영과 말리려는 준수가 옥신각신 하고 있는데, 멀리서 민영이 다가왔다. 


‘응? 웬 남자랑 여자랑 싸우고 있네.. 무슨 일이지? 근데 이 목소리는 어디선가..’

준수의 목소리임을 느낀 민영이 가까이 다가선다.


“오빠, 이러지마. 나 이제 오빠랑 더 얘기할 거 없어. 그만 두자고 했잖아!”

“수영아.. 한번만. 한번만 내 얘기 좀 들어줘. 진정하고 내 말좀 들어봐..”

옷차람이 편해서 잘 못 알아 보겠는데.. 아무리 들어도 준수 목소리다. 다시 한번 가까이 다가서 본다. 


“오빠. 마지막 경고야. 나 말리지 마. 이런다고 달라질 건 없어.”

“수영아, 그동안에 나눠온 정이 있잖아. 나 돈 없다고 니가 이렇게 매몰차게 굴 수 있어? 너무한 거 아냐?”

“너무한 게 누군데? 그렇게 많은 기회를 줬는데, 거짓말만 한 게 누구냐고!”


저 남자의 얼굴, 준수가 틀림없다. 민영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지만, 아무리 봐도 준수가 맞다. 민영은 배신감과 민망함,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에 몸이 굳어 버렸다. 준수를 부르려고 하다가 몇 번을 망설였다. 차마 부르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준수가 한참을 수영과 옥신각신 하고 있는데, 화단 너머에 웬 여자가 서 있는 게 보인다. 왜 지나가지도 않고 가만히 서있지? 뭘 구경났다고 처다 보고 있어?


도대체 누구야.. 하는데, 이게 누군가. 민영이 아닌가! 이따가 보기로 한 민영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민영아.. 니가 여기에 왜?”


준수와 싸우던 수영은 갑자기 준수가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르자 황당했다.


“오빠? 갑자기 왜 다른 사람을 찾아? 그런 식으로 상황 모면해보겠다 이거야?”


민영은 준수가 자신을 부르자 겨우 말을 꺼냈다. 명품으로 뒤덮인 수영의 몸치장과 고급차.. 여자의 직감으로 대충 상황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저 여자 누군지 설명 안해도 돼. 하는 꼴을 보니까 대충 알겠네. 오빠가 나를 아무리 둔한 여자, 답답한 여자라고 했지만.. 나도 이 정도면 어떤 상황인지 알거 같아. 00공사 대표 따님이 저 분이구나. 저 분이랑 아직 정리가 다 안된 거였고.. 나한텐 그냥 간을 본 거였구나.. 그랬던 거구나..”


준수가 아무리 말을 잘하는 남자지만 이 순간만은 말문이 막혔다.

“...”


“그래. 알았어. 오빠가 날 어떤 생각으로, 감정으로 대했는지 충분히 알겠어. 이렇게 안 와봤으면 또 오빠한테 속았겠지. 사실 거의 오빠를 받아들일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게 속고 또 희희낙락하다가 또 배신당했겠지..”

“...민영아..그게 아니고..”

“그래도 하늘이 날 버리진 않는 모양이네. 이렇게 오빠의 본 모습을 볼 기회를 주다니.. 아무튼 잘 있어 오빠. 더 이상 변명은 듣고 싶지 않아..”


배신감으로 치가 떨리는 민영은 뒤돌아 걸어갔다. 울음이 펑펑 쏟아지려는 걸 꾹 참고 있었다.

“민영아.. 민영아!”


준수는 민영을 쫓아가려다 수영이 눈에 밟혀 차마 가지 못했다.


그 꼴을 보는 수영은 기가 찼다.

“오빠.. 저 여자는 또 누구야.. 하, 참. 이제 하다 하다 옛날 여자까지 출연하는 거야? 참 가지 가지 하네. 바닥까지 보자 이건가.. 하하.. ”


“수영아.. 내가 다 설명할게. 예전에 잠깐 봤던 여자야. 다 정리했었는데, 나 좋다고 자기 멋대로 쫓아온거야.. 진짜야, 수영아!”

“됐어. 완전히 확인사살 시켜줬으니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겠어. 오빠한텐 완전 정나미가 다 떨어졌어. 쫓아 오지마. 스토킹 한다고 경찰 부를 거야. 그럼 이만.”


수영은 차에 시동을 걸고 거칠게 사라져갔다. 혼자 남은 준수는 그야말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어떻게 일이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있냐구? 그 타이밍에 왜! 도대체 왜 민영이가 온 거야? 젠장! 아.. 아까 주소를 가르쳐줬지.. 그게 실수였구나. 아.. 이 바보 멍청이.. 나 이제 어떡하지? 아..’


주차장에 혼자 남은 준수는 계속 허공을 향해 한숨을 쉬고 욕을 퍼부어 댔다.


주변 거리를 정처 없이 떠돌던 민영은 주변 벤치에 털썩 주저 앉았다. 더 이상 걸을 힘도, 기운도 없었다. 그저 여기에서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왜 그런 남자에게 미련을 두고 있었을까.. 처지가 궁색해지까 그저 나를 이용해먹으려고 하는 남자를.. 친구들도 다 그렇게 말렸는데.. 그래도 못 알아보고.. 어떻게든 잘 달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그래도 나한테 감정이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난 정말 바보 천치야.. 이런 꼴 까지 보게 되다니.. 흑흑..’


벤치에 앉은 민영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웬 여자가 울고 있지..라는 시선을 던지고는 사라져갔다.  




“강사장(지훈)! 이거 도면 좀 봐줘. 이거 어떻게 하라는 거야? 너무 복잡하게 그려놔서 알아볼 수가 없어!”

현장은 여전히 눈코틀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외부 벽돌 마감이 끝나고 내부 목공, 수장 공사로 들어가자 챙겨야 할 것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아, 잠깐만요.. 이게 참.. 하..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아, 나 답답하네. 빨리 도면 그린 사람 오라 그래요. 이거 우리끼리 이런다고 될 게 아닌거 같은데..”

“...”


지훈은 일주일 넘게 민영과 연락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제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인간적인 관계로서나 일적인 관계로서나 이제는 민영과 뭔가 이야기를 해서 정리를 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설 소장님한테 전화해볼게요. 오시라고 하겠습니다.”


지훈은 큰 마음 먹고 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어, 왜 이러지. 아무리 그래도 책임감 없게 연락 안 받고 그런 성격은 아니었는데..’

몇 번을 전화해도 민영이 받지 않자 지훈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엄마, 저 지훈인데요.”

“그래, 웬일이야. 공사 잘 되고 있지?”

“다른 게 아니라, 설 소장님이 전화가 안되서.. 몇 번을 해도 안 받네요.”

“그래? 웬일이지. 그런 사람 아니었는데.”

“그래서 그런데, 어머니가 전화 한 번 해보세요. 엄마가 하면 받을 거 아니에요.”

“음.. 그래, 알았어.”


잠깐 생각하던 수경이 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혼자 방안에 처박혀 있는 민영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틀째 사무실도 나가지 않고 그냥 엄마가 주는 밥만 주워 먹고 있었다.

“민영아, 너 사무실 안 나가봐도 되니?”

“몸이 좀 안좋아서.. 며칠 쉬려구요. 급한 일 없으니까 괜찮아요.”

민영은 엄마에게 대충 둘러대고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지훈에게 몇 번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안 그래도 싸운 입장인데다, 지금 정신이 공황상태라 대답할 자신이 없다.


“띠리링~ 띠리링~”

아, 또 누구 전화지. 지훈씨인가, 아님 준수.. 그 인간인가.. 준수는 그날 이후 끈질기게 문자며 전화를 해오고 있다. 충분히 설명하겠다, 한번만 만나 달라.. 계속 그런 내용이었다. 며칠간은 무대응으로 참고는 있지만, 더 심해지면 차단해야 할 것 같았다.  


어, 양 대표님이다.. 아. 건축주의 전화는 도저히 안 받을 수가 없다. 정말 정말 받기 싫지만, 하는 수 없이 통화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설민영입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소장님, 저에요. 요새 연락이 안 되신다고 해서. 어디 몸이 안좋으세요?”

“아뇨.. 아. 네.. 사실 좀 몸살기가 있어서.. 그동안 좀 무리 했나봐요..”

“그래요. 건강 조심하면서 하셔야죠. 지훈이가 상의할 게 있다고 하더라구요. 연락 좀 부탁드릴게요.”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 챙기겠습니다.”

“그래요. 목소리가 많이 안 좋네요. 힘든 일이 많나봐요.”

수경은 민영의 개인사를 직접 물어볼 수가 없어 에둘러 말해본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몸이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럼 강대표님과 통화해보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민영이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네, 지훈씨. 잘 지내셨죠?”

목소리가 많이 안좋네.. 지훈은 뭔가 그 남자랑도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닌 모양이군.. 이란 생각을 한다. 

“네. 소장님. 목소리가 많이 안좋으시네요. 몸이 안좋으신가봐요?”

“네, 몸살 감기가 조금.. 많이 괜찮아지고 있어요. 전화 못 받아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소장님.”

잠깐 뜸을 들이던 지훈이 말했다. 먼저 그날 일을 사과해야 할 것 같았다.

“그날은 제 말이 좀 심했어요. 화가 나서 말을 막 했네요. 죄송해요, 소장님.”

“아.. 괜찮아요, 지훈씨. 사실인걸요 뭐.. 지훈씨 말이 다 맞아요. 맞았어요..”


설움이 복받친 민영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아, 왜그러세요, 소장님. 제가 뭘 잘못말했나요?”

“아니에요, 지훈씨. 지훈씨 잘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도 사과드릴게요.”

“소장님이 사과하실 게 뭐 있나요.. 아무튼 개인 사생활인테 제가 주제넘게 참견했던 것 같아요..”

“네.. 사생활이긴 하죠..”

“아무튼 일은 일이니까. 현장에서 도면 체크해달라고 난리인데.. 제가 도면 파악에 한계가 있어서. 아무래도 소장님이 직접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내일이라도 바로 좀 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현장에서 뵐게요..”



간신히 전화를 끊은 민영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바람둥이한테 목메고 휘둘린 여자..가 내가 맞구나.. 란 생각을 하니 슬픔이 밀려왔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 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www.openstudioarch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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