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동 협소주택 _H2L 건축사사무소
여러분은 협소주택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새로운 건축 유형이라기보다 그야말로 ‘협소한’ 땅에 짓는 ‘협소한’ 집을 뜻하는 말이다. 집의 크기에서 새로운 용어가 생겨난 셈인데, 이러한 협소 주택이 태어난 데에는 아마도 예산 문제가 큰 몫을 했으리라고 본다. 누군들 돈이 많다면 ‘넓은’ 땅에 ‘넓은’ 집을 짓고 싶지 않을까. 돈이 없다보니 ‘협소한’ 땅에 ‘협소한’ 집을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설계비로 줄 돈이 넉넉할 리 없다. 여기서 이 땅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 ‘적은’ 설계비로 ‘협소한’ 땅에 ‘협소한’ 집을 짓되, 좁은 땅의 숨겨진 가치를 최대한 활용해서 가성비 높은 집을 만들자. 이것이 협소주택을 하게 되는 건축가들에게 주어지는 숙제이다. 그리고 이 숙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낸 건축사무소와 협소주택이 있다. H2L 건축사사무소의 마장동 협소주택이 그것이다.
이 건물이 앉혀진 대지의 크기는 74제곱미터, 22평 크기이다. 여기에 건폐율 등을 적용하면 10평 남짓한 크기의 땅에 건물을 앉혀야 한다. 사실 10평이라고 하면 웬만큼 큰 집의 거실 크기라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6M X 6M 보다 작은 크기의 땅에 집을 집어넣어야 하는 고난이도의 퍼즐이다. 이쯤 되면 단 1cm만 옮기거나 덧붙이려고 해도 쉽지 않다. 여기에 대지는 2~3m의 단차를 가지고 있다. 사실 서울 구도심의 많은 필지들이 열악한 상황이지만, 이 땅의 조건은 그 중에서도 정말 좋지 않다. 여기에 주인세대 주거와 사진 스튜디오를 겸하는 공간과 임대세대 2개를 쌓아올려야 하는 골치 아픈 문제가 건축가에게 주어진다.
건축가의 해법은 지하 공간의 활용을 극대화 하는 것과 지상층에서의 다락 공간 활용이다. 대지의 단차를 활용해 용적률에 구애받지 않는 지하층에 선큰 공간을 최대한 적용하여 언듯 보기에 지하로 보기 힘들 정도로 쾌적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주인세대를 넣고 그 위로 다른 세대들을 쌓아 올라간다. 상부 임대세대들도 어쩔 수 없이 좁다. 건축가는 평지붕의 다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공간을 확보했다. 법규상 1.5m 높이 이하의 공간(골조 기준)은 바닥넓이에 산정되지 않는다. 사실 다락 기준은 정확하지 않아 자치단체마다 별도의 규정을 정해서 적용하는데, 해당 건물이 다락으로 인정받아 용적률이나 주차대수에서 이득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단면에서 다락 높이가 낮은 걸 보니 적용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한 층 넓이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각 세대에게 좀 더 많은 면적을 할당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 건물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점은 열연강판으로 보이는 금속재료와 와이드 벽돌을 조합하여 단단하면서도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풀어낸 입면이었다. 사실 콘크리트 재질의 와이드 벽돌은 최근 유행을 타서 택지지구의 상가주택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른 의도 없이 단순히 유행에 따라 적용한 와이드 벽돌은 깊이가 없어 가볍게 느껴진다. 마장동 협소주택은 처음부터 세장한 건물 비례를 상쇄하기 위해서 가로로 긴 벽돌을 적용하고 세로 매지도 적용하지 않는 등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색상은 무채색의 진중한 색을 적용하였고 여기에 더해 검은색 도장으로 마감된 금속 계단, 후레싱, 상부 캐노피 등과 어우러져 주변 경관의 중심을 잡아주는 힘이 느껴진다.
또한 신중하게 적용된 개구부들과 금속계단, 캐노피 등의 디테일들이 차분하게 통일된 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실 나도 설계를 하는 사람이지만 때론 창을 어떻게 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창은 적절하게 내기 어려운 것이고, 실제 시공 후에 실내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마장동 협소주택의 창들은 상대적으로 건물 전체 면적에 비해 적은 편이고, 그만큼 신중하게 계획되고 뚫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열연강판으로 만들어진 계단은 이 건물의 인상을 만들어내는 주역이다. 얇은 철판을 챌판 없이 계단옆판(스트링거) 접합시켜 경쾌함과 개방감을 준다. 큰 개구부와 엮여져 내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면서 현관 전의 전이공간을 한번 더 거쳐서 주거공간으로 들어가게 매우 하여 좁은 공간이지만 풍부한 인상을 만들고 있다. 캐노피는 건물 상부에서 무게감을 부여하면서 단순히 위로 뚫릴 수 있는 옥상 공간에 적절한 공간감을 만든다. 좁은 공간에 좁은 집이라고 하면 개구부와 요철을 최소화한 단순 메스로 처리하여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가장 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는 어떻게 하면 좀 더 풍부한 공간을 만들까, 어떻게 하면 입면이 다채로우면서도 정리된 인상을 줄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어지러운 주변 환경 속에서 등대와도 같은 완성도를 지닌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다.
최근 마치 유행처럼 협소주택이 만들어지고 있고,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고 있다. 물론 좋은 퀄리티의 작업들도 있지만, 유행에만 편승하여 쉽게 설계되고 시공된 듯한 협소주택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H2L건축사사무소의 마장동 협소주택은 젊은 건축가의 열정과 단단한 내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훌륭한 협소주택 사례 중 하나다. H2L의 최근작들도 원숙함이 더해진 좋은 작품들이었다. 그들의 차기작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