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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Oct 28. 2020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기차를 타는 것이다. 예약한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수없이 달렸고, 다행히 운이 좋게 대부분의 경우 아슬아슬하게라도 기차를 타고 강의에 시간 맞춰 갈 수 있었다.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때로는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고속도로에 두렵지만 차를 몰고 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나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으니까.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강의 요청이 왔을 때, 용감하게 강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거의 매 학기 새로운 과목의 강의 요청이 있었고, 새로운 과목이더라도 겁먹지 않고 받아들였다. 박사학위를 받고 10년이 지나는 동안 내가 맡았던 강의는 조직론, 인사행정, 재무행정, 정책학, 행정학개론, 지방재정, 공공경제학, 거버넌스, 공공관리론, 갈등관리의 이해, 갈등관리와 협상, 정책비교론, 공공선택론, 전자정부론, 한국정부론, 행정실무론, 정책분석론 등이다. 어떤 과목은 한 학기 동안 강의하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했지만, 한 학기만으로 끝나기도 했다. 모 교수님은 나에게 “강의를 10년 정도 했으면, 이제 강의 준비가 따로 필요 없지 않으냐”라고 하신다. 하지만, 거의 매 학기마다 다른 과목을 맡아온 나로서는 매 학기 매시간 강의 준비가 필요했다.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홀가분한 일이기도 하다. 강의만 담당하면 되고, 다른 학교 행정에 관여할 일이 없으니 참 마음 편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시간 강사로 산다는 것은 학교에서 이방인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학교에 처음 강의를 갔을 때, 잠깐 쉬는 시간을 갖고 난 다음, 강의실을 찾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그 학교의 건물이 좀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학교에서는 기자재를 활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노트북과 스크린의 연결이 부실해서 선을 밟기라도 하면 화면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 무시받고 사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교내에 있는 은행에 간 적이 있는데, 학생 둘이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시간강사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충분히 느끼게끔 하는 그런 대화였다.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큰 축복이기도 하다. 강의를 개설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고민하는 교수님들 덕분에 시간강사는 강의 당일에 가서 강의만 하고 오면 되는 것이다.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때로는 더 빨리 벚꽃이 피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때로는 말로만 듣던 또는 알지도 못했던 멋진 곳을 방문하는 계기를 갖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강의를 간 덕분에 그 지역의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하게 되기도 했다.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교수님 소리를 듣는 일이기도 하다. 간혹 정확하게 강사님이라고 부르는 학생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수님이라고 불러 준다.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때로 시간으로 불리는 일이기도 하다. 오래전 한 학교에서 서류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나의 직위가 ‘시간’으로 적혀 있었다. 나는 그냥 시간이었다.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때로 가슴에 총을 맞는 것이다. 어느 해 강의가 끝나고 나서 강의 평가를 열어 보았는데, 두 명 정도의 학생이 쓴 평가 내용을 보고 가슴에 총을 맞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때로 뿌듯함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학생은 내 강의가 자신이 대학 4년 동안 들은 강의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어떤 학생은, 나의 강의에 대해 ‘대단한 강의력’이라고 인정해 주었다.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결국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다. 충분히 멋진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의 모든 학생들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 잘 지내기를 기도한다.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결국 내가 선생으로 산다는 것이다. 시간강사로 강단에 설 수 있어서 행복했다. 지나간 시간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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