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주택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욕실 창문을 열어 두면 그다지 곰팡이가 안 생기는 것 같다. 나는 그 열린 욕실 창문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내가 작으나마 하고 있는 일들이 내게는 그런 열린 욕실 창문 같아서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하지 않은 일들이겠지만, 나는 나름대로는 연구와 강의에서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매번 힘들다고 징징댔고, 실제 힘든 연구였고 힘든 강의들이었다. 그런데 그 덕분에 난 그럭저럭 보람을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 역할들이 주어진데 대해 나는 한없이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욕실 창문을 볼 때마다 내게 열려 있었던 이런저런 기회들에 감사하고 감격해하게 되는 것이다. 전업주부로 출발해서 아이 셋을 출산하고 나만의 커리어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 자신 힘겨웠고, 가족들이 많이 희생했고, 아이들에게는 나쁜 엄마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고,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재미, 보람, 생동감, 열정, 행복, 성취감 등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일을 시작했던 것은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연구팀에서 일을 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얻게 된 소득은 가정 경제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생계형으로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나는 생계형 워킹맘이 되었다.
장서연·김영근(2019)의 「생계형 워킹맘의 일-가족 다중역할 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에 따르면, 생계형 워킹맘은 일-가족 다중역할 경험을 통해서 ‘변화된 나를 발견한다’고 한다. 워킹맘은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되지만, 높아진 소득으로 아이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는 데에 대해 만족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워킹맘은 일-가족 다중역할을 수행하면서 스스로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하게 된다고 한다. 성취감을 통해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게 되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장서연·김영근, 2019).
최근에 일 년 동안은 대구를 떠나 서울에 있는 모 대학교의 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작년에 막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남편이 정년퇴임을 하였기 때문에, 나는 대구를 떠나서 서울에서 일할 수 있었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 가족이 대구에서 내게 전화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간혹 막내가 세탁을 해야 할 경우, 나에게 얼룩을 제거하는 방법을 묻는 정도였다. 그 이외의 일로 나를 찾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은 대구에서 대학 강사로 일하고 있다. 이제 일을 할 때, 나는 아이 돌봄에 대한 걱정 없이 일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아이 양육과 일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숨 가쁘게 살았던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던 아이 양육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부담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이제 욕실 창문 정도의 작은 창문이 아니라, 거실의 커다란 창문이 활짝 열린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