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경희 Oct 28. 2020

남편의 방어기제

나쁜 방어기제에 대처하는 법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의 여자 주인공 커스틴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결혼 후 남편과 주말부부가 되면서, 주중에는 전화 통화를 했다. 그런데 커스틴은 전화 통화를 할 때, 남편 라비에게 매우 쌀쌀하게 대했다. 아내의 그런 행동에 대해 남편은 매우 섭섭해했다. 이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방어기제의 한 유형인 ‘전이’로 설명한다. 커스틴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슬픔을 현재의 다정한 남편 라비에게로 전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남편의 언어폭력에 가까운 거친 말들로 인해 수많은 날들 상처 받았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것은 남편의 나쁜 방어기제인 것이다. 자기는 전혀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말을 하고, 철저하게 상대방에게 책임을 돌린다. 방어기제 중에서 ′투사′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들이 모든 권력을 통제하거나 소유하려는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여성들을 비난할 때 투사가 작동한다.”(하웨이 외, 2002, 136).

하웨이 등(2002, 132)의 ‘남성의 폭력성에 관하여’에 따르면, 남성들이 그들의 성역할 정체성이 위협받을 때 전통적인 방어기제 및 자기 보호적 방어전략을 사용한다. 전통적인 방어기제인 억압, 투사, 대치 등을 활용하며, 성역할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 방어전략으로는 권력과 통제, 제한된 정서성 등을 활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방어기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행사의 요인이 된다고 한다.  

방어기제는 일종의 가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진짜 모습을 가리는 가면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들고, 불행하고, 슬픈, 미안한 그리고 불안한 모습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고, 더군다나 그것을 외부에 개방하기가 쉽지 않다. 힘들어, 불안해, 미안해라고 말하는 대신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참거나, 다른 대상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합리화를 하거나,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물론 승화와 같은 좋은 방어기제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나쁜 방어기제를 쓰고, 관계를 망치게 되는 결과를 맞는다. 그리고 방어기제를 계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잊게 되고 나를 잃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남편이 ′투사′ 방어기제를 활용하는데 비해서, 내가 주로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억압′이었던 것 같다. 아예 참거나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속이 상할 때, 그냥 ′속이 상해′라고 말하면 될 걸, 그렇게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화를 낸다. 그때 흔히 그 비난의 대상은 배우자가 된다. 일생동안 우리가 견뎌내야 하는 부당한 그리고 불필요한 비난은 아마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나는 곧잘 그런 내 남편의 방어기제를 견뎌내 왔지만, 어떤 날엔 이제 그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제 나도 지쳤다고. 그만 하고 싶다고. 다 내려놓고 싶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남편도 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언제쯤 남편을 포함해서 우리는 상대에게 화를 내고 책임을 전가하는 대신, 자신이 힘든다고, 슬프다고, 속상하다고, 미안하다고 순순이 말하게 될까.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서는, 무례한 사람에 대한 대처법으로, “문제가 되는 발언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 되물어서 상황을 객관화하는 것, 상대가 사용한 부적절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 들려주는 것, 무성의하게 반응하는 것, 유머러스하게 대답하는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정문정, 2018, 219-221).

상대가 나쁜 방어기제를 쓰는 경우에 우리는 상대에게 그 사실을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다. ‘지금 투사하고 있네.’라고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리고 때로는 직설적으로,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언어폭력인데’ 하고 지적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의 진짜의 취약한 모습을 감추고,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화를 내는 경우, 겉으로 드러나는 상대의 화내는 모습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화내는 모습이라는 가면 또는 방패로 가리고 있는 슬픔과 아픔을 바라보아 줄 필요가 있겠다. ‘내가 무얼 잘못했다고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하고 갈등으로 돌입하는 대신에, ‘너 참 힘들구나, 불안하구나, 두렵구나’라고 읽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에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겠지.     


      

<참고문헌>

드 보통, 알랭 (2016).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김한영 역. 원저 The Course of Love by Alain de Botton, 2016). 은행나무.

정문정 (2018).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가나출판사.

하웨이, 미셸 & 오닐, 제임스 M. (2002). 남성의 폭력성에 관하여(김태련·김정휘 역. 원저 What Causes Men’s Violence Against Women? by Michele Harway & James M. O’Neli. 1999).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이전 17화 잔소리는 폭력의 씨앗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