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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Oct 28. 2020

잔소리는 폭력의 씨앗

남편은 잔소리가 많은 편이다. 남편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내가 남편에게 어떤 말을 했을 때, “아, 그랬구나” 하는 말인데, 남편은 그런 말을 하기보다는 왜 그렇게 했나, 왜 그것밖에 못했나 하고 잔소리를 한다. 남편에게 평생 동안 들어온 잔소리는, 식사 후에 바로 설거지를 하라는 잔소리이다. 나는 그렇게 할 때도 있고 그렇게 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는, 남편이 인상을 쓰면서 나에게 비난을 한다. 상추를 먹다가 끝부분을 버리면 그것을 왜 버리느냐고 잔소리를 했다. 남편은 의식주 전반의 생활과 관련해 나름의 규칙을 정해놓고 끊임없이 나에게 지키라고 강요했고, 지키지 않으면 거친 말로 나에게 실망감을 표시했다.

잔소리를 하는 사람의 생각은 자신은 부모와 같은 존재로서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고, 상대는 미숙한 어린이로 통제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가부장제 하에서 남편은 잔소리를 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즉, 상대를 미숙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남편이 어느 날 노래방 기능이 있는 마이크를 선물로 받아 왔다.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남편에 의해서 끊임없이 비난당하는데. 그래서 열 살 어린애처럼 쪼그라들어 있는데. 남편과 함께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남편이 나를 향해, ‘넌 많은 면에서 부족해’라고 끊임없이 나의 부족함을 일깨워 주는데 내가 무슨 흥이 나서, 내가 기쁨에 겨워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의 저자인 김정운은 감탄은 인간의 특성이고 인간은 감탄하고 감탄받기 위해 산다고 했다. 남편에게 감탄받은 적이 있는지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잔소리를 한다는 것은 절대 감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로 하여금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는 상대가 기쁨에 겨워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는 상대를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남편의 잔소리를 평생 동안 싫어해 왔는데, 최근에 정희진의 ‘아주 친밀한 폭력’을 읽고, 잔소리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내가 왜 그렇게 남편의 잔소리를 싫어하는지 나 스스로 이해가 됐다. 폭력 남성을 인터뷰한 정희진(2016, 246)에 따르면, 남편은 자의적으로 ‘아내의 도리’를 정하고 아내가 도리를 다하는지 다하지 않는지 지켜보고 다하지 않을 때 폭력을 행사한다. 남편은 끊임없이 아내에게 잔소리를 통해서 아내의 의무와 도리를 알려주고, 자의적으로 아내의 행동을 평가하고, 한껏 실망감을 표현한다. 결국 잔소리는 폭력의 씨앗인 셈이다.

많은 가정에서 왜 그토록 많은 절망과 고통이 있는가. 물론 많은 요인이 관련되어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상대를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잔소리가 아닌가 한다. 평생 동안 통제자 또는 감시자의 곁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남편에게 묻고 싶다. “잔소리할래, 감탄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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