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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Oct 28. 2020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결혼했어야 했다

‘경로 의존성’은 기존 제도가 새로운 제도가 취할 모습을 제약한다는 점을 나타내는 개념이다(정정길 외, 2010, 740). 일정 시점에서의 선택은 그 이후 시점의 선택에 제약을 가한다는 것이다(남궁근, 2008, 194). 이런 경로 의존성은 가정에서의 부부 역할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결혼 초기에 부부의 역할 분담 관계가 지속적으로 부부의 역할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어느 순간에 워킹맘이라는 똑같은 상황에 놓이더라도, 출발 당시에 어떤 모습이었느냐에 따라, 워킹맘은 다양해진다. 워킹맘의 처지는 매우 다양하겠지만, 거칠게 두 가지로 유형화를 한다면, ‘일부터 시작하고 육아를 하게 된 워킹맘’과 ‘육아부터 하고 일을 하게 된 워킹맘’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 당시에 나는 대학원생이었고, 소득이 전혀 없었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석사과정을 졸업하였고, 행정고시 2차 시험을 봤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그 해 말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시험을 봐서 합격하였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박사과정 재학 중에 두 아이를 더 낳고 겨우 5년 만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경제활동을 하지 못했다.

내가 결혼 당시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서일까. 남편은 가사노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석사과정 중 결혼하고, 내가 서울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동안 남편은 경산 신혼집에서 일 년 남짓한 기간 동안 혼자서 살림을 했다. 그 기간 동안 혼자서 했던 살림 외에는 전혀 가사노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바깥에서의 매너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에게 수시로 짜증을 부렸으며, 내 말을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남편의 이런 행동들은 내가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과 강사로서 일을 하고 소득을 얻게 된 때에도 변하지 않았다. 남편은 전혀 가사노동을 하지 않았고 나에게 모욕감을 주는 거친 말투를 여전히 사용했다. 결혼 초기에 형성된 남편과 나의 가사노동 분담 관계는 그 이후에 내가 소득활동을 하게 된 이후에도 쉽게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에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소득활동을 했다면, 그래서 남편과 내가 동등하게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관계를 형성했다면, 이후에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남편이 좀 더 많은 가사노동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즉, 순서가 중요한 것이다. 또는 처음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다. 결혼생활의 출발 당시에 여성이 직장을 가지는 것, 그래서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것, 그리고 혼자서 경제활동을 하고 저축을 하는 등의 생활을 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그때 남편과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해 두는 것이 남은 결혼생활 내내 남편과 형성하게 될 관계의 기초를 이루게 되는 것 같다. ‘일부터 시작하고 육아를 하게 된 워킹맘’을 경험하지 못한 나로서는 그런 추측을 해 보게 된다.

‘가장 늦게 결혼하는 여자가 이긴다’라는 책에서는 여성이 인생의 과제부터 해결하라고 조언한다. 인생의 과제를 잔뜩 안은 채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다.      



<참고문헌>

남궁근 (2008). 정책학. 법문사.

정정길·최종원·이시원·정준금·정광호 (2010). 정책학원론. 대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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