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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Nov 17. 2020

햄스터 키우자 하다 쏙 들어간 이야기

* Daughters의 privacy를 위해 First daughter는 A, Second daughter는 B로 칭했다.


A는 초등학교 때부터 항상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되냐고 조르곤 했다. 물론 A에게 귀여운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정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에 살면서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 특히 온 가족이 집을 비울 시간에 반려동물 혼자 놔둔다는 것 , 날리는 털, 먹이 등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아파트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라고 매번 안된다고 했다. 아파트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족 특성상 어림도 없다. 물을 자주 안 줘도 되는 오래 사는 식물들도 수차례 고사시킨 적이 있기 때문에 남편은 내가 식물을 키울 자격이 안된다고 했다. 또 나보다 부지런하지 않은 딸들에게 집에서 동물 키우는 걸 맡긴다는 건 택도 없는 일이다. 아마 그 뒷 치닥거리는 온전히 내 몫일 것이다. 직장에서 돌아와 집안일하기도 벅찬데 동물들 수발까지 하다가 스트레스받는 내 모습을 상상하자 몹시 끔찍해졌다.   


주변에서 하는 말로는 개나 고양이에서 나온 털도 장난 아니고 그 뒷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가 외출하고 혼자 남은 아파트에서 반려동물이 혼자 얼마나 외로울 것이며 저녁에 물먹으로 거실에 나왔다가 반려동물을 밟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는 별별 생각을 했다.


모든 일이 쉽게 얻어지는 것 없고 하나를 득하면 그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의무도 행해야 한다. 예방접종도 해줘야 하고 반려동물 키우는 일은 단순히 귀여워해서만은 아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A가 키우자고 할 때마다 ' 너 자고 있을 때 얼굴 위에 올라가서 넘버 1이라도 싸면 어떻게 할래' 했지만 그런 문제까지는 생각하지 않는거 같다.


아이들은 과거 달팽이, 장수풍뎅이, 거북이, 물고기 키운 전력이 있다. 결국은 다 죽었지만 말이다. 최근 그러니깐 작년 A가 중3이었을 때 친구와 무슨 바람이 났는지 갑자기 인터넷에서 식용 달팽이를 분양받아 키우기 시작했다. 개나 고양이보다는 낫겠다 싶었기에 내버려 두었더니 달팽이는 상추를 엄청나게 먹었다. A는 한동안 달팽이 영양제도 사고, 학교 급식에서 상추가 나오면 교복 소매에 몇 개 숨겨오기도 했다. 몇 달 후 그 식용 달팽이는 엄청난 알을 까고 어른 주먹만큼 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달팽이가 엄청난 알을 낳은 후 달팽이에 대한 A의 애착이 시들어지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에게도 알을 나눠주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침대 밑 플라스틱 박스에 살고 있는 달팽이에게 상추도 주지 않고 무관심한 것이다. 달팽이 또한 움직이지 않았다. 딸에게 물어보니 겨울이라 동면을 취한다고 한다. 따뜻한 방 침대 밑에 두었는데 무슨 동면인가 하다가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집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방치되어 있는 걸 참지 못한 나의 촉수는 달팽이 집에 집중되었다. 그렇게 달팽이도 나의 정리대상이 되었다.


달팽이를 그냥 쓰레기통에 넣거나 질식시켜 죽일 만큼 나는 잔인한 사람이 아니다. A의 동의를 얻어 달팽이 통을 들고 어둠이 온 마을을 감싼 시간 아파트 뒤 천변으로 나갔다. 밤공기는 차가워졌지만 달팽이가 얼어 죽을 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달팽이를 천변 풀숲에 두면 알아서 어디론가 가던가 그 주변 풀을 뜯어먹을 수 있기에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뚜껑을 열어 거꾸로 바닥에 부었다. 그곳은 경사가 진 언덕 쪽이었다. 달팽이를 풀숲에 사뿐히 놓으려 했지만 경사진 곳이라 갑자기 달팽이가 언덕 아래로 또르르 굴러가버렸다. 순간 놀라 주변을 둘러봤지만 어둠 속에서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숨을 헉헉 거리며 얼른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딸이 저지른 일 뒤처리까지 이렇게 하다니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만원 넘게 주고산 달팽이 집은 얼른 재활용품 버리는 곳에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밤에 버린 식용달팽이건은 슬슬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A와 함께 마트를 가게 되었다. A는 유리관 안에 있는 햄스터를 보면서 '아이 귀여워 ' 하며 '우리 햄스터 키울까' 자기가 햄스터 키우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우리'라는 표현을 쓰며은근 나까지 교묘하게 끌어들이는 것이다. '난 상관없으니 B에게 물어봐'라고 했다.(순진한 나는 또 넘어가 사줄뻔했다). 생각난 김에 초등 저학년 때까지 아이들 일상을 기록해둔 나의 블로그에서 '햄스터'로 검색해보니 초등 1학년 때도 A가 햄스터 사달라고 한 글을 발견하고 아이랑 같이 보고 '추억 소름이야'하며 웃기도 했다. 다음날 A가 B한테 햄스터 키우면 어때하고 말했다고 한다.


나: '그래서  'B가 뭐라고 했어?'

A: '나 보고 사이코패스래....'


B는 A가 그렇게 수많은 무고한 달팽이들을 죽이고 무슨 양심으로 다시 햄스터를 키우냐고 버럭 했다는 것이다. 결국 B의 한마디에 그렇게 햄스터 키우자는 A의 말은 한순간에 사그라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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