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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y 24. 2021

신의 계획하에 인간의 계획이란

이 모든 게 신의 거대하고 치밀한 계획인가

나는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했다. 매년, 매월, 매주 해야 할 일과 했던 일을 만년필을 이용해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나름 깨알 같은 개인적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기록하는 재미를 위한 계획 같은 것이다. 사소한 계획 하나하나까지 기록하는 것이 건망증과의 싸움에서도 도움이 되었다.


나름 그런 방식을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구체적인 계기는 20대부터였는데 바라던 것들을 그냥 생각만 하는 경우와 노트에 기록하는 것들과 비교했을 때 노트에 기록하는 것이 훨씬 더 실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일기를 쓰지 않았을 땐 하루에 있던 스트레스가 계속 마음속에 남아서 괴롭히는 거 같은데 일기를 쓰면 그날의 스트레스가 내 속에서 온전히 빠져나가 고스란히 일기에 기록되고 그 일에 대해 다시 한번 분석하여 추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비슷했다. 어떤 물건을 사야겠다고 단순히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과 수첩에 적어두었을 때 적어둔 물건은 기한 내에 꼭 구입을 했던 것과도 같다.


그때부터  '꿈노트' 비슷하게 매년 내가 해야 할 것들을 기록하자 나중에 그것들이 차근차근 현실로 이루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어쩌면 그것도 막상 이루어지니 거꾸로 짜 맞춰 내가 생각하기 편한 방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쓰기만하면 다 이루어질거라 생각했던 때였다.


아무튼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느끼는 건 묘하게도 무슨 일엔 항상 전조가 있었고 그 전조의 의미를 깨달아야 미리 다가올 일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조를 분석하기 위해서도 기록은 필수였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까지 그걸 알려주는 여러 번의 전조들에 대해 차분히 살펴보지 않으면 나중에 안 좋은 결과가 일어났을 때 후회하는 일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전조를 알아차리기란 무척 어렵다. 결국 내가 전조를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나름 어떤 계획을 세워둔다면 그 계획데로 바람대로 대부분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몸이 아프고야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우는 계획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잘것없고, 거대한 신의 계획 하에 자잘하게 움직이는 조그만 조각이었다는 것을. 그 계획이라는 것도 단순히 개인적인 영어공부도 있고 다이어트도 있겠지만 이런 계획들이 너무도 미비하고 하잘것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예로는 자녀를 내가 바라는 데로 만들기 위해 온갖 애를 썼지만 그 역시 계획데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동안 실행해 온 것과 실패했던 것들 역시 크나큰 신의 계획 중의 하나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신의 계획 아래 인간인 나의 계획은 너무도 무모한 것이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우리네 삶의 긴 여정 속엔 온갖 크고 작은 언덕이 나오고 그 언덕을 오르면 또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계획이라는 것이 그와 부합된 결과로 연결되던 20대와 확연히 다른 50대 이때는 계획대로 만 되지 않는다.



나는 또 질문했다. 방송을 그만두고 노년의 긴 세월 동안 무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유성 선배는 대뜸 그냥 살란다. " 여행 다녀, 신이 인간을 하찮게 비웃는 빌미가 바로 사람의 계획이라잖아. 계획 세우지 말고 그냥 살아. " 선배 덕문에 마음이 한결 바벼워졌다. 나보다 몇 걸음 앞서가는 선배가 계시다는 게 참으로 고맙다.
양희은 <그러라 그래> 37p.


결국 양희은의 책에서 전유성 선배가 한 그 말이 딱 내 마음에 와닿았다. 그동안 신은 얼마나 내 계획을 비웃고 있었을까. ' 그냥 하루하루 재밌고 행복하고 즐기고 긍정적으로 살아. 그게 최선이야 ' 라고 나는지금의 나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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