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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아저씨의 돈가방 습득 사건

by 얼음마녀

이곳으로 전입오기 전 , 첫 근무지에서는 참 재밌는 사건, 사고가 많았다. 그때만큼 많이 웃어본 적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기상천외한 웃긴 일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소문들이나 스토리에 탐닉하다 보면 가끔 중독이 된다. 인근면에 근무하는 직원을 만나면 묻는 인사가 ' 요즘은 무슨 재밌는 일이 없나' 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직원들은 왜 하나같이 코미디언들처럼 웃긴 캐릭터로 생활해왔는지 모르겠지만 시대가 시대 이닌만큼 그랬을 수 있겠다. 한때는 이 작은 면사무소에서 일어나는 일을 시트콤 소재로 쓴다면 상당히 재밌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공무원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상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공무원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 테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동기 아저씨인 P 였다. 나도 공무원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은근 그 말이 좋았다. 공무원이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는 왠지 고리타분해 보이는 데다가 그저 그런 시키는 일만 하는 보수적인 분위기를 주기 때문이다. 사실 조직이나 개인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 거기서 거기면서 그 얇은 간극 차이를 뭔가 특유의 우월성으로 편 가르고 차별화하려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공작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딱딱하고 보수적인 조직에서 나이에 누군가가 대신 그런 코믹스러운 일을 저질러 준다는 게 하나의 해소이자 탈출구가 되기도 했다. 동기이지만 나이가 우리와 7살 이상 차이 나서 우린 그냥 이름 뒤에 00 아저씨라고 자연스럽게 불렀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웃긴 호칭이다. 그 아저씨도 상당히 공무원 조직과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P와 관련된 웃긴 일화가 있는데 그 일이 사건화 되었고 마무리가 된 나중에 알게 되었다. P는 시골 부잣집 장남으로 나처럼 운 좋게 공무원이 된 케이스로 서울 연수원에서 같이 교육을 받았다. 연수원에서 교육받을 때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응큼하게 팔을 내 의자 뒤에 걸치고 있어서 내가 화를 낸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엔 뭘 해도 예민하고 그런 나이었으니깐.


집안이 시골에서 농사를 크게 짓는 집이라 살면서도 크나큰 애로 없이 살아와서 그런지 힘든 일은 극도로 귀찮아하는 성격이었다. 복잡한 업무가 군에서 내려오면 그 여직원들이 사무실에서 나올 때까지 군청 정문에서 기다리다가 인근 면 여직원들에게 밥을 사주고 그들이 업무를 대신해주기도 했다. 그 일이 고도의 지능을 가진 전문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텐데 말이다. 자신의 일을 대신해 줄 여직원을 기다릴 시간에 일을 해도 충분할 텐데 말이다.


그 아저씨와 관련된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많지만 언젠가 그 동기 아저씨가 감사계 조사를 받은 적 있었다. 비 오는 숙직 날 술을 먹고 티브이를 숙직실 밖에 내놔서 티브이가 비를 맞아 고장이 나 버렸다고 한다. 그것으로 감사계 조사를 받은 후에 업무 홀더 묶음을 2층 회의실에서 뿌린 기행도 있었다고 한다. 한참 후에야 그 이야기를 듣고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근무하면서 아저씨가 감사계 조사를 받고 확인서를 받은 것도 상당했을 것이다. 그래도 성격상 감사부서에서 받은 확인서는 그냥 종이일 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면민 체육대회가 있어서 이장, 직원들에게 체육회에서 체육복을 하나씩 나눠주면 달려있는 모자는 아무짝에나 쓸모없는 거라고 떼서 버리기도 했다. 여름 한철 내내 하와이 피서 온듯한 무늬가 그려진 남방 하나로 여름 한철을 아니 수년간 여름을 그 옷 보냈는지 지금도 그 아저씨를 떠올리면 그 피서 남방을 입은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던 중 아저씨가 또 큰 사건 하나를 쳤다고 한다. 자녀가 조금 성장하자 인근 도시로 이사를 갔고 버스로 출퇴근하면서 고속버스 안에서 그 당시 007 가방을 줍게 되었는데 그 안에는 돈이 가득 들어있었다고 한다. 대형 종합병원 사무장 가방이었고 아마 공금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 아저씨와 친한 친구는 그 돈을 경찰서에 신고는 안 하고 어디 술집에서 그 사무장에게 전화해서 와서 술 한잔 사라는 듯이 전화를 했는데 그게 잘못되어 결국 감사계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지금 시대 같으면 뉴스에 나올만한 일인데 그땐 그 모든 게 코믹스토리였다. 그 이야기를 어렴풋히 듣자마자 우리는 박장대소를 했다.


나중에 들려온 이야기로는 그 아저씨는 코로나 직전 면사무소를 그만두고 인근 도시에 카페를 차렸다고 했다. 물론 게으른 성품의 아저씨가 부지런히 카페를 할리 없고 부부가 같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페를 열자마자 코로나가 터졌다고 한다. 그 후 소식은 알 수 없다. 지금도 카페를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사는지 모르지만 아마 지금까지 근무했으면 수많은 기행을 더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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