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동네헬스장 6개월 재등록을 했다. 6개월 등록하면 한 달 35천원 정도이고 1년을 등록하면 한 달 3만원 정도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몸무게 현상유지를 못할거 같았다. 매일 가서 하는 거라곤 러닝머신과 자전거인데 것도 조금 붐비는 시간대 가면 꼴랑 3개 있는 러닝머신 자리가 꽉 차있다. 그럼 자전거 해볼까 하다 꼴랑 두 개 있는 자전거에 누군가 앉아있으면 옆자리 앉기가 어색하다. 평일은 항상 그 루틴대로 자동으로 움직이지만 주말에는 한없이 게을러진다.
주말에도 특히 지독하게 추운 날은 꼼짝하기가 싫다.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다 평소 루틴대로 저녁을 먹고 운동을 갈까 생각했다. 저녁엔 뭐 먹지 하다 냉장고 재료를 보니 시금치,계란,소고기가 있으니 김밥이 딱이었다. 단 한가지 단무지만 없었다. 냉장고에는 오래전 피자주문하고 피클 세 팩이 있다.
" 이 피클을 김밥 단무지 대용으로 쓸 수 있을까?" 남편에게 물어보니 대답이 없다. 그냥 단무지 사기로 했다. 단무지가 없는 김밥이란 전에도 해봤는데 이맛도 저맛도 아닌것 같았다.
주말은 냉장고 속 재료를 활용하기에 좋다. 지금 당장 뭔가를 먹어야 했다. 오래전에 사둔 카스텔라 가루가 있어 서둘러 계란흰자 거품을 냈다. 노른자에는 설탕과 우유 부어 휘휘 저었다. 두개를 섞어 밥통에 만능찜기능으로 50분 돌렸더니 카스텔라와 비슷하지만 맛은 왠지 몸에 좋을 것 같은게 완성되었다.
카스텔라 두 조각 먹고 도착한 헬스장은 밤 8시가 넘어서인지 러닝머신은 텅 비어있다. 이걸 끝내면 9시인데 이때 김밥을 만들어 먹는 것도 사실 다이어트에 도움 되지 않는다. 김밥을 대체할 간단한 뭘 먹고 왔어야 했다. 카스텔라 두 조각 먹고 잠시 어지러웠던게 생각났다.
러닝머신 한 20분 하다 보니 갑자기 온몸의 기운이 빠지고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마치 당 떨어진 것 마냥 어지러웠다. 자전거로 옮겨갔다. 그래도 증상은 여전히 며칠 굶어서 기운 없이 몸이 떨리고 있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운동이고 뭐고 냅다 헬스장에서 부랴부랴 나왔다.
헉헉거리며 쓰러질 정도로 집도착 했다. 미친 듯이 쌀을 씻고 밥통 취사버튼을 누르고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 먹었다. 사과를 먹은 후 계란을 꺼내 지단을 붙이고 그 프라이팬에 어제 사온 얇은 소고기를 구웠다. 운동 가기 전 데쳐놓은 시금치와 아까 마트서 사 온 단무지를 준비했다. " 증기배출이 시작됩니다" 말이 끝나기 직전에 계란지단 한 개를 허겁지겁 먹었다.
갓 지어진 구수한 냄새가 나는 밥에 죽염과 참기름으로 간을 했다. 김 위에 시금치와 단무지, 계란, 소고기를 넣어 말고 자르지도 않고 바로 먹었다. 당근이 없지만 괜찮다. 한 줄로는 아쉬운 듯 해서 또 한 줄을 말아 먹었다. 이것부터 잘못되었다. 두 번째 김밥은 안 먹었어야 했다. 이젠 배를 압박해 오는 포만감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운동하겠다며 다녀와서 먹는 습관이나 적당한 그 선을 꼭 넘겨버리는 항상 이런 어리석음의 반복이다. 굶어서 뺀다는 건 젊을 때 일이고 나이 들면 매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한다. 꼭 밥이 아니더라도 식사대용으로라도 식사 때를 거르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나이 들면 밥심으로 산다는 옛말 하나 틀린 거 없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거 이제 나도 이렇게 서서히 나이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