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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y 05. 2024

5월 초 어느 금요일의 서울

나만의 연휴를 보내는 법

5월 1일은 노동절이지만 공무원들은 쉬지 않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체육대회를 하기도 했지만 올해는 국회의원 선거나 축제에 따른 특별휴가를 군수 재량으로 할 수 있는지 군에서 내려온 지침으로는 7급 이하는 1일 날 쉬고 6급 이하는 2,3일에 걸쳐 재량껏 특별휴가를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1일 날 난 근무를 하고 2일은 건강검진으로 공가 3일은 특별휴가 해서 기대하지 않게 2,3,4,5,6일 연 오일을 회사를 안 나가도 된 상황이 된 것이다. 마음으론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 했지만 여행이 시간만 있다고 쉽게 가지는 것도 아니다. 모처럼 딸에게 최근 노트북을 새로 사줘서 기존 노트북은 내가 가지고 오기로 하고 서울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골에서 첫차를 6시 조금 넘은 시간에 탔다. 항상 그러듯 아침은 언제나 춥다. 차 내부는 더욱더 춥지만 뒷자리에 천정의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서 그게 히터인 줄 알았는데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얇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나는 덜덜 떨어야 했다. 휴게소에 도착해서 기사아저씨에게 너무 춥다고 하니 반문하며 " 춥다고요???" 그때 뒷좌석에 있는 아주머니도 "추워요"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발목 부분이 조금 따뜻해지기는 했지만 1시간 반 이상을 추위에 떨고 온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일교차가 커서 아침엔 추운데도 기사아저씨는 무슨 홍삼을 고아 드셨는지 아니면 본인 발밑에만 히터가 있는 건지 춥다고 느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스벅으로 갔다. 최근 인터넷 뉴스에 플랫화이트가 별을 더 주고 하는 기사를 본 데다 오래전 런던을 갔을 때 카페마다 플랫화이트가 있어서 그걸 자주 마셨다. 카페라테와 비슷하지만 우유가 더 들어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벅의 플랫화이트는 쓰기만 했다. 일단 실패였다. 딸은 잠실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딸에게 줄 물건을 든 가방도 너무 무겁고 아침에 너무 가볍게 먹고 와서 에너지가 리기 시작했다. 터미널 지하에 프레첼 스타일의 베이글 가게가 있었는데 눅눅한 베이글 맛이 아닌 프레첼 스타일의 베이글인데 딱 내 입맛에 맞았다. 나중에 서울 가면 꼭 거기부터 들러야겠다고 했었다. 플레인 베이글뿐 아니라 부추크림베이글도 있었다. 몇 개를 포장하고 그 자리에서 당 충전을 해야 해서 나이프로 베이글을 잘라서 먹었다.


먹고 나니 조금 에너지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근처 옷가게에서 기모 맨투맨을 50% 할인하고 있어서 그것을 네이비와 아이보리 두 개를 사고 있으니 그제야 딸이 왔다. 자기도 바지를 사야 한다고 바지와 나시를 골랐다. 딸도 아침에 닭다리에 뭔가 먹어서 배가 부르지만 초밥이나 초밥 같은 거 아니면 먹기 힘들다고 했다. 백화점 지하에서 초밥을 두 개 포장해 와서 밖에 의자에서 먹으니 음료 생각이 났다. 착즙 주스 한 병에 7천 원이라니 하고 놀랐지만 내부 슈퍼가 있음에도 금방 보이는 데서 두병을 사서 마셨다. 내가 뿌리염색해야 한다니 자기도 염색해야 한다고 해서 할 말을 잊었다.


터미널 내에서 당일치기 즐겨야 하는데 뭘 할까 하고 둘어보니 춘식이 팝업스토어가 열리고 있었다. 현장에서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니 30분 후에 입장하라는 공지가 떴다. 다행히 우리는 구경만 했지 춘식이 캐릭터 관련해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다만 저 모형을 만지지 말라고 써있건만 난 순간 와락 저 모형을 끌어안다 공기가 푹 꺼지며 거의 나도 바닥으로 까무러칠뻔 했다. 바닥에 만지지말라고 쓰여있다고 딸이 알려줬다. 누가 볼새라 뒤돌아보니 웬 젊은 여성이 왜저래하는 눈빛으로 날 째려보고 있었다.



나오니 근처 ABC마트가 보였다. 딸이 신고 온 리퍼가 낡아 새로운 크록스와 반바지에 내가 입을 티셔츠까지 구입했다. 어차피 딸을 만나면 이런 소비를 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슬슬 딸과 헤어질 시간이 될 때쯤 딸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어 내가 가지고 있던 충전식 배터리를 빌려주고 갈 때 반납하라고 했더니 그것 가지고 가버렸다. 결국 내 핸드폰 배터리는 거의 방전이 돼 갈 무렵 백화점에 충전기가 있다고 해서 가보니 30분이 되어도 10%밖에 안된 것이다. 편의점에서 9천 원짜리 배터리를 샀지만 그것도 살 때 30%만 충전되어 나온 것이라 집으로 내려가면서 꺼질 것이 분명했다.


우등버스를 타고 내려가려고 버스 어플을 보니 일반 버스를 남기고 모든 우등 버스가 다 매진인 것이다. 제2의 민족 대이동처럼 이렇게 긴 연휴에 자리가 있을 리가 없다는 게 그제야 생각이 났다. 부랴부랴 일반이라도 어딘가 해서 예매를 하고 블라우 터의 땅콩라테를 주문했다. 이거 웬걸 아주 작은 컵에 담긴 라테의 맛은 진짜 먹기 힘들었다. 또다시 오늘의 커피는 실패했다. 맛있는 커피를 먹기 위한 여정은 그날 3번째 시도였다. 두 번째는 근처 커피만을 위해 탄생한 듯한 시그니쳐 무슨 카페였는데 역시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돈이 아까워서 꾸역 구역 마셨다.


이제 버스만 타면 된다. 일반버스는 우등에 비해 소음도 심하고 승차감이 좋지도 않고 좌석 역시 불편하다. 가격차이는 5,900원 데 그거 주고 우등 타는 게 훨씬 낫다. 내가 선택한 좌석은 맨 끝이다. 창문 쪽 좌석을 선택했는데 들어가자마자 양복을 입고 검정안경을 쓴 할아버지가 앉아있는 것이다. 벌써 목이 바짝 타들어갔다. 가까이 접근하며 "할아버지 거기 제자리인데요.." 하자 할아버지가 "여기? 몇 번 이유..?" "저 41번인데요..."하고 보니 할아버지 좌석은 39번이다. 그러자 옆에 대학생쯤 보이는 남학생이 41번은 여기라고 자기 옆좌석 그러니까 버스 맨 뒤 중에서도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나의 놀라는 표정과 남학생의 썩소가 교차했다. 분명 창문 쪽을 예약했는데 이게 웬 조화인가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보다 그 할아버지가 더 빠릇하시다. 그 안경 쓴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좌석에 내 짐을 올려놓으려 하자 할아버지가 "여기 한 명 더 온다"라고 한다. 그러자 다른 대머리 할아버지 한분이 힘든 몸을 이끌고 가운데에 앉는다. 이렇게 몇 시간을 가야 하다니 하며 난감하던 차 바로 몇 좌석 앞에 있던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자기 옆좌석 남았다고 몇 번이나 오라고 손짓한다. 그 버스 중 유일하게 한자리가 남은 좌석이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바로 옆에 앉은 어두운 양복을 입고 검정 뿔테 안경 쓴 70대쯤 보이는 할아버지가 어딘가에 전화를 한다. " 응 내려가는 버스가 없어서 여기 들러서 가는데 터미널에 몇 시까지 차가 있는지 알아봐" 하는데 수화기 너머로 부인인듯한 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가나 싶었더니 또 다른데 전화해서 같은 말을 하신다. 이번엔 딸인가 했다. 그렇게 오른쪽엔 비어 있었고 왼쪽은 남자 대학생이 있었다. 남자대학생은 2시간 가까이 가방을 어깨에 멘 채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정말 나 같으면 멀미를 해도 몇 번을 할 자세인데 젊으니 그렇게 갈수 있는것 같았다. 버스는 만원이고 에어컨을 크으면 춥고 끄면 덥고 도로에는 차로 가득 차있어 평소보다 더딘 운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난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고개를 남학생쪽으로 기우는 게 편했다.


커피 마셔서 못 잘 것 같았지만 억지로 눈을 붙이니 슬슬 잠이 왔다. 한참을 고개를 헤드빙하면서 자다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잠이 퍼뜩 깼다. 좌석이 없어서 이 버스를 타고 내려간다는 말을 또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도대체 몇 명한테 하는지 지금 전화받은 사람들 전체가 차를 끌고 터미널로 마중오나하는 생각도 했다. 할아버지는 가다가 앞쪽에 앉은 아저씨한테 지금 버스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묻자 그 나이 든 아저씨도 카카오맵으로 어디쯤인지 알려주었다. "참 신기하네.. 그걸 핸드폰에 깔아야 하고만요"하고 할아버지는 중얼거렸다.


마침내 두 시간 넘게 가다가 휴게소에 멈춰 섰다. 기사가 휴식시간을 주었지만 도저히 차에서 일어날 기운이 없어서 앉아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기사가 인원체크를 하는데 바로 내 옆자리 할아버지 어디 갔냐고 하는 것이다. 바로 좀 전에 그 양복 입은 할아버지가 앞쪽 중간에 앉는걸 내가 아까 본 기억이 났다. 확실하진 않지만 바로 저 앞에 앉았다고 했다. 그럼 옆 대학생은 어디 갔냐고 하니 왼쪽 창문 쪽에 앉은 젊은 여성이 짐 챙겨서 내렸다고 한다. 그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기사는 출발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아까 내가 본 그 할아버지가 맞다면 다행인 것이고 아니라면 그 할아버지가 돌아와 버스는 출발하고 난리가 난 상황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가 앞에 탄 것을 본 사람은 내가 유일한 목격자이고 분명 그 양복에 그 검은 머리에 검정안경이 맞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할아버지는 그렇게 자리를 옮기면 기사가 인원체크할 때 어떻게 하라고 옮겼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긴긴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고 집에 도착하니 이미 어둑어둑한 시간이었다. 오래간만에 딸만나 플렉스하고 좋은 시간이었지만 플렉스에 따른 지출은 막대했다. 황금연휴 5일 중 이틀이 그렇게 지나갔다. 낼은 앞집에 거주하는 같이 필라테스를 다니는 flower씨와 호젓한 산사를 방문하기로 했다. 이렇게 연휴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에 매일 뭔가 계획이 잡혀 있는 게 좋긴 하다.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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