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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Apr 28. 2024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자유로울지어다

어떤 것에 구속되거나 속박받는 걸 싫어하던 나는 조직의 관습이 옥죄어올 땐 견디기 힘들었다. 형식적이고 겉치레적이고 또 그 알량한 지위에 대한 부심으로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는 꼴도 보기 었다. 그런탓인지 누군가 주변사람들이 날 표현할 때 면전에서 자유로움 및 공무원이 안 어울리고 약간 자유로운 예술가적 타입이라고 할 때 내심 나의 이미지메이킹이 성공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밥벌이로 이곳에 있지만 끊임없이 거부했던 것들이 외부이미지로 드러났구나 하는 삶의 순리 같은 것을 느꼈다.


개인적인 삶에서는 나름 미니멀라이프를 한다고 수년간 물건을 없애고 또 사기를 반복했다. 진정한 미니멀라이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게 얼마나 많은가. 핸드폰을 사면 케이스도 필요하고 보호필름도 필요하고 만년필을 사면 잉크도 필요하고 하나의 잉크만 필요한 게 아니듯 그 필요한 물건의 개수는 너무도 무궁무진하다.


이불 한채, 책 한 권 뭐 이렇게 최소한의 것으로 깊은 산속에서 사는 수도승이나 헨리 데이빗 소로우처럼 오두막에서 최소한의 것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 가능해 보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근처 캠핑을 가더라도 , 몇 박을 호텔에서 하더라도 특히 여성이라면 필요한 것이 한두 개인가. 독서를 해야 한다면 읽을 책 한 권도 있어야 하고 다이어리도 챙겨가야 하고 만년필도 챙겨가야 하고 정말 수도승이나 소로우처럼 사는 건 정말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소로우도 도시로 돌아왔다.


미니멀라이프 카페를 보면 하루에 몇 가지 버리기 챌린지를 비롯해 깔끔해진 집을 보면 과연 벽장이나 수납장을 열었을 때도 아무것도 없을까 생각했다. 나 역시 한때 엄청난 것을 정말 단순한 흥미로, 혹해서 얼리어답터라는 착각으로 많은 것을 구입했지만 남은 건 물건에 대한 사라진 애정, 혐오, 귀찮음 , 그리고 버리기로 이어지고 , 일정 시간이 지나면 후회가 들면서 또 그 물건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나고 했다. 그리하여 앞으로 어떤 물건이 정말 버겁게 느껴지고 공간을 정리해야겠다면 박스에 넣어서 창고에 보관하다가 또 그 물건이 생각나면 꺼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뭔가 물건이 지겨워진게 아니라 삶이 지겨웠던건 아니었을까. 


정말 그게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먹을 것이라 하더라도 사지말자 하는 생각을 안 한 게 아니다. 너무 뼈저리게 생각을 하지 않아서였는지 몰라도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리고 며칠 후 택배가 배송된다고 문자가 오면 내가 무엇을 샀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또 후회로 이어진다. 현대인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을까.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봐야 하는데 그것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3개월에 한 권씩 쓰는 다이어리가 쌓여가는데 그것도 조금 걱정이 된다. 단순한 필사 그리고 하루의 기록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년필로 쓰는 손맛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이어리가 필요하고 그게 또 물건이 쌓이는 결과를 불러오고 시간이 갈수록 쌓이는 다이어리를 보며, 나만 그러진 않을 텐데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면서 주변에 가지고 다니는 물건, 쌓이는 물건, 주변을 차지한 그 물건들은 다 어디로 갈까. 지금 만년필 잉크도 사지 않은지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신상잉크 없는 색 잉크를 볼 때마다 또 하나 사야 하나 하다가 장바구니 담다 빼기를 반복하고 있다.


결국 인생엔 정답이 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 미니멀이 좋으면 미니멀하고 온갖 추억의 물건들에 쌓여 평온을 얻으면 그게 좋은 거고 나중에 그게 답답하면 정리하면 된다. 너무 강박적이게 이것이 낫다는 생각 쪽으로 기울지 않으면 된다. 유연하게 사는 게 자유로움이자 평화로움이다.

 

지인이 얼마 전 회사에서 어떤 강의를 듣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에는...... 적혀있다.

이상하게도 8번빼고는 딱히 해당이 없었다.


위 질문이 이미 지나와버린 과거처럼 너무 초연하게 느껴져 놀랐다. 과거에는 이런 물음에 턱 하고 숨이 막혀오면서 나와 비슷한 증상이라고 여기며 답답해했을 텐데 이게 이미 오래전 스쳐 지나간 이젠 별것 아닌 감정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이가 주는 혜택일 수도 있다.


언젠가 저녁에는 필라테스를 끝내고 나보다 나이는 몇 살 어린 치열하게 워킹과 가정일을 병행해 온 여성 둘과 공원에 있는 전기 로테이션 자전거를 타고 흔들 나무 의자에 앉아 우리는 지나간 과거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공기놀이를 비롯한 놀이들에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 어린 시절 추억의 한토막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미 자식들은 성장해서 다들 다른 곳에 살고 있으며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50대들의 삶은 비슷했다.


뭔가 기억을 하는 것에 대해 ,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어떤 단어나 명칭, 사람이름에 대해 잘 생각이 나지 않고 어디가 아프고 꾸준히 우리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 이것 또한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운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과거에는 이런 비슷한 것들이 그냥 아무것도 아닌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지만 이런 만남, 행동, 단어 오가는 말 하나하나도 너무 소중하다. 삶에서 발견한 우연한 행복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올해는 어느 해보다 더 철쭉이 더욱 아름답고, 벚꽃이 이렇게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것인지 몰랐다. 어느 해보다도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행복하고 대 자연의 아름다움이 이렇게 인간에게 큰 위안을 주는지, 길에 핀 작은 꽃 하나하나가 너무 감사하고 아름답다. 햇볕을 쐬라고 책상 위의 카네이션을 햇살을 쬐라고 밖에 두었다. 딸한테도 문자가 왔다. "엄마 딸이라 너무 행복해, " 설마 용돈을 올려달라는 말을 하려는 거 아닐까, 무슨 목적이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다가도..."그래 너무 기분이 좋고 엄마도 행복해"라고 보냈다. 이러는 도중 갑자기 인터넷 보다가 이쁜 티가 있어서 순간 옥션에서 하나를 주문했다. 이럴 수가 분명 나는 이제 쓸모없는 소비를 줄여야겠다고 해놓고 바로 또 핸드폰으로 뭔가 주문했다. 그래 이게 삶이다.


핸드폰이 없던 어린 시절,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소비가 크지 않았던 시절은 그런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 충동적인 소비를 중단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지 않다. 꾸준히 미디어로부터 알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또 뭐 하나 검색이라도 하면 연관해서 계속 나에게 추천해 주기에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는 그 술수에 훅 하고 빠져들고 만다. 느낌을 좋아하기에 느낌이 있는 물건, 옷을 보면 당장 검색하고 사고 싶어 진다. 잡지를 비롯한 느낌이 있는 것들을 접하지 않아야 하나.


사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런 저런 느낌들과 마주하면서 방황하고 갈등했는가.

5년 후면 퇴직하는데 이젠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복잡한 회사 속에서 겪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게 더 이상 의미 없다는 게 느껴지는 게 나이가 들었다는 것인지 진짜 퇴직 시점을 앞두고 모든 걸 내려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회사생활이 수십 년 남아있을 때 앞으로 긴긴 여정을 어두운 동굴 속을 가는 것처럼 정처 없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며 외로운 사투를 벌여온 시간들이 이젠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며 남은 시간을 예측가능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도 홀가분하고 자유를 찾은 기분이다. 그건 정말 퇴직까지 남아 있는 시간이 5년이고 그 시간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유로운 생각이 그 모든 것을 극복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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