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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Apr 27. 2024

금요일 연차는 신의 한 수

우연히 발견한 행복

올해 들어와 나의 의사에 반해 계속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심신이 지쳐가고 있었다.


문득 4월에는 단 하루의 연차를 쓰지 않았다는 생각에 갑자기 금요일 하루 연가를 내고 싶었다. 즉흥적인 것인데 공교롭게도 남편도 그날 하루 연가라고 한다. 우린 서로 즐기고 있는 것이 틀린 바 딱히 남편과 하루 평일 휴가를 얻는다고 해서 어디를 간다거나 밥을 먹으러 가는 것에 대한 별 기대가 없다. 하루 날 잡아 근처 분위기 있는 한정식을 안 가본 것도 아니고 신혼도 아니라 둘이 함께 꼭 휴일을 보낸다는 것도 아니고 그날 각자 자기 해야 할 일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은 탁구를 치고 밀린 잠을 잘 것이고 시간 남으면 사우나를 갈 것이다. 나는 독서를 하고 필사를 하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헬스를 가거나 맛있는 빵집을 방문할 것이다.


그런저런 생각으로 금요일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잘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이게 과연 우리 집에서 나온 소리인지 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가스누출 알람이 울리는 것이다. 남편은 잠에 취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가스회사에서 8시가 넘은 시간에 사람이 왔지만 가스유출은 없었다.


관리실에 전화하라고 해서 경비아저씨와 관리소장이 왔지만 둘 다 어디가 잘못된 건지 밝히지 못하고 고개만 갸우뚱하며 가버렸다. 그러는 사이 남편은 잠을 다 깼다고 어디에 하는 투정인지 모르지만 구시렁대다가 비 정기적으로 울리는 알람에 결국 본인이 연결된 선을 끊었다. 그러기 처음부터 선을 끊었으면 좋았을 법했다. 전원만 껐다켰다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간헐적인 소음이 인간의 갑작스러운 스트레스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그날 읽은 책을 보고 나중에 알았다. 아침 일찍부터 울리는 소음에 남편의 투정에 갑자기 갱년기 때문인지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투정 부리는 남편을 향해 냅다 소리쳤다.


가스유출 알람이 울린 게 내 탓이냐고 하면서 진즉 알아서 고치면 되지 웬 투정이냐고 버럭하고 바로 집을 나왔다. 이미 잠은 설쳤고 집을 나올 시간은 10시 즈음이었다. 멀리 갈 수는 없고 집 근처 산밑에 자리한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 했다. 그전에 맛있다고 칭찬하던 청년 바리스타는 왠지 테이크아웃잔에 담아서 내가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데 와서 아무 말 없이 쑥 커피를 내민다. 어째 커피를 내미는 게 전문적이지 않고 쑥 내민다는 것에 기분이 살짝 안 좋아졌다. 


바로 커피를 들고 근처 작은 잔디에 흔들 벤치로 가서 햇살과 간간이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서평단으로 며칠 전 집으로 배달온 책인데 게을러서 언제 읽나 했는데 지금이 기회였다. 마침 제목도 스트레스에 관한 것이다. 커피 마시며 환한 햇살아래 책을 읽고 있노라니 이만한 가성비 있는 힐링이 따로 없었다. 다만 옆으로 쑁쑁 지나가는 차가 거슬렸지만 마음이 다시 평화를 얻었다. 갑자기 아침에 남편에게 버럭 한 것이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점심을 포장해 와서 남편과 먹으려고 식당에 전화하니 포장이 안된다고 한다. 언젠가 가야지 했던 빵집을 검색해 보니 45분이 걸리는 것이다. 갈까 말까 하던 차에 같이 필라테스를 하는 지인이 전화가 왔다. 같이 빵집 갈래요 하니 오케이한다.



마침 지인도 하루 연가였다. 여자 둘이 45분 걸린 작은 빵집에서 빵도 사고 커피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아침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차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잠시 잊고 있었던 게 내가 집에서 출발할 때도 그 냄새를 느꼈지만 그냥 나는 냄새이겠지 하고 무시했는데 계속 나는 것이다. 결국 지인을 집 앞에 내려주고 바로 카센터로 갔다. 그랬더니 차 오일 라인이 낡아서 오일이 새고 있었다고 한다. 하마터면 불날 뻔했다고 겁을 준다. 차 고치고 간다고 남편에게 문자를 했다. 오늘 만약 연가를 내지 않았으면 차에 오일이 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올해 초에 신차를 주문했는데 신차 나오기 전까지 정말 여러모로 잔고장으로 돈이 많이 들어간다. 빨리 차가 나와야 하는데 소식이 없다.

 

낼부터 주말이 시작인데 비가 온다고 한다. 비가 오면 밖에 나가기도 싫고 몸이 움츠려 드는데 오늘 하루 연가를 내서 대 자연이 주는 햇살과 바람을 실컷 온몸으로 누렸으니 정말 기분이 좋다. 우연히 연가를 냈는데 그게 많은 일을 처리하고 자연도 즐긴 알찬 하루였다. 이런 것들이 우연히 발견한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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