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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y 11. 2024

황금 같은 토요일의 면민의 날

출장뷔페를 접하는 기괴한 이야기

시골면사무소에 근무하다 보면 접하게 되는 특이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면민의 날이다. 그 날짜가 면마다 다르지만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는 이걸 안 하고 지나가는 면이 없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황금 같은 토요일을 반납하고 근무를 해야 하기에 면민의 날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면민들에게는 하루 축제의 날이다. 일단 행사가 시작되어 봐야 알겠지만 일기예보상 면민의 날이 끝나고 나서야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


하루 면민들은 일 년간 벼르고 별러 먹고 마시고 신발 멀리 던기기 같은 게임을 하며 회포를 풀기에 시골에선 나름 큰 행사다. 행사가 끝나면 수건이나 화장지도 주민들에게 나눠준다. 이때 서로 화장지와 수건을 받으려고 서로 밀치고 새치기하고 난장판이 되기에 이 타임에 직원들의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경품 뽑기라 꽤 긴 시간 동안 행사장에 사람들로 붐빈다. 최하 선풍기부터 미니리어카, 농약분무기까지 다양해서 뭐 하나라도 당첨되면 아주 난리가 아니다. 경품이 끝나면 사회자가 마무리되었다고 말하기도 전에 완전 파장분위기가 된다. 면민들의 최종목적은 그것이기 때문이다.


면민의 날을 하기 전 회의를 통해 전 직원 업무분장을 했다. 누구는 주차 및 교통정리, 기념식 음료준비, 수상자 도우미, 의전등 정말 모든 직원들이 행사 곳곳에 배치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계획 자체는 아주 치밀하다. 막상 행사가 시작되면 오합지졸 그 자체이지만. 계획서에 있는 식사도우미 업무분장에 의문이 생겼다. 직원회의를 하면서 이 말 저 말이 오가는 상황에서 어떤 여직원이 말한다. "작년 같은 경우에 면장님이 원하시는 건, 각 담당마을 텐트에 가서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펴보고 거기서 도와주라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에게는 직접 음식을 갖다 주자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부면장이 "굳이 직원들이 거기 가서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다른 여직원들도 " 작년에 면장님이 vip가 오면 그들이 식판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거 보기 불편하니 직원들이 음식을 세팅을 해달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본인이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게 간편하게 만들어진 게 뷔페문화인데 그런 것조차도 vip라고 가만 앉아서 음식을 갖다 바치길 바라는 의식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내가 한마디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면장님의 의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작년 군민체육대회 때도 식판에 뷔페 음식을 직원들이 직접 담아서 단체장이라는 이름을 단 자들에게 음식을 갖다주라고 지시한 게 면장이었다. 솔직히 속으로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자기가 먹을 음식도 가만 앉아서 받아먹으려는 의식은 도대체 어디서 생긴 건가 '하며 사실 직원들끼리 험담을 한건 사실이다. 그 수많은 뷔페 음식 중 누가 뭘 선호하고 기피하는지도 모르고 직원들이 마구잡이로 식판에 음식을 갖다 준다는 게 얼마나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가. 출장뷔페인데도 그렇게 가만 앉아서 갖다 바치는 음식을 먹는다는 게 아예 나중에는 떠먹여 달라고 할판이다. 시골에 근무하다 보면 아직도 이런 일이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사실 끽소리 못하고 그런 분위기에 묻어가며 생활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살다 보면 우리의 의식도 희미해지도 그냥 이렇게 살게 된다. 그래서 변화가 없는 것이다. 


나에겐 토요일 오전 황금 같은 시간에 영어회화반이 잡혀있다. 딸랑 그것도 12회 하는데 이래저래 빠지면 영어회화고 뭐고 별 의미 없어진다. 나 같은 경우는 상당히 Punctual 한 스타일이라 영어회화반을 면민의 날로 빠진다는 게 상당히 껄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묘수는 8시까지 전 직원들 나오라고 하니 나왔다가 9시에 맞춰서 영어회화반에 참석하고 11시 50분에 끝나면 다시 면민의 날 행사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하라고 해서 사무실 오자마자 난 행사장인 고등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가서 vip들이 앉을자리를 물티슈로 열심히 닦았다. 최대한 면장눈에 잘 띄어야 했다. 그리고 영어가 시작하기 몇 분 전 영어회화반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참 수업을 하고 있을 때 팀원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팀장님 지금 강풍에 텐트가 다 날아가서 제가 그 밑에 기둥에 있다가 머리를 다쳤어요. 지금 병원 가는 길이에요"그 전화를 또 강의실 내에서 받느라 원어민 강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강사의 영어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듣는 둥 마는 둥 두 시간 반의 수업이 끝나자 부랴부랴 행사장으로 돌아와 계획했던 데로 성공적으로 미션을 완료했다. 그 후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팀원은 머리는 괜찮지만 그 충격에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행사장으로 돌아오니 기괴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천막은 날아가고 철골뼈대만 남긴 그 밑에서 사람들은 작렬하는 태양아래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뷔페음식은 먹을 것도 없었다. 파인애플은 탈색을 했는지 거의 색이 없었고 뭘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았다. 부녀회장이 지나가며 한마디 한다. "먹을 거라곤 콩나물 무침밖에 없어".

진짜 그랬다. 맨밥에 콩나물만 먹었다.


양치하러 사무실 돌아와 배고파 뻥튀기와 식빵 두 조각을 먹었다. 사무실과 가까운 행사장에서는 한참 노랫소리가 들린다. 노랫소리가 잠잠해지면 슬슬 마무리 청소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야 한다. 갑자기 하늘은 어두워지고 바람소리는 윙윙거리며 점점 세지고 거칠어지고 있다. 바람소리가 무섭기까지 하다.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고 그 소리에 그곳에서 부르는 노랫소리와 섞여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단톡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니 면장은 부인과 단상에 올라 한껏 취기가 오른 목소리로 초대가수라도 된 양 온갖 액션을 취하며 사랑스러운 누이를 불러대고 있었다. 차마 다 볼 수 없었다, 사무실에서 나와 다시 행사장으로 갔더니 이미 화장지를 타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얼굴에 비가 한 방울 떨어졌다. 행사가 마무리되고 청소를 해야 하는데 주최 측인 면민회 사람들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직원들이 먹다 남은 물병 술병 및 온갖 쓰레기들과 바닥에 떨어진 땅콩조각들까지 쪼그리고 앉아 치우고 나서야 우리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년 면민의 날은 제발 평일에 했으면 좋겠고 맛있는 뷔페를 먹었으면 좋겠다.


나가는 면민듵이 1인 1팩씩 가져갈 화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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