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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Oct 19. 2024

스위스에 다시 올 이유

스위스에 막 도착했을 때 근거리 출장을 온듯한 너무도 편안한 느낌이었다. 비 오는 취리히도 북적거리는 루체른도 고즈넉한 그린덴발트도 너무도 편안한 느낌이었다. 한국에서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커피를 마셨지만 이곳에서는 커피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풍광인데 커피 생각도 나지 않고 커피도 모든 스위스 커피가 맛있는 게 아니었다. 또 집에 만년필로 어반스케치 한다고 미니 스케치북 두꺼운 걸 안 가져온 게 다행이다. 여기서 그림 그릴 시간도 없는데 얼마나 무거웠을지.


멘리헨 트래킹은 정말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동행이 있어서 가능했다. 국에서 산을 타는 걸 즐기지도 않고 하이킹 자체도 좋아하지도 않고 집 바로 뒷산을 올라가는 곳에 5월 그렇게 벚꽃이 멋지게 피어도 오를 생각을 않던 나였다. 강풍이 세게 불어 위태위태한 좁은 산 허리를 굽이굽이 도는데 바람이 불어 휙 날아가면 정말 저 아래 구릉아래로 데굴데굴 굴러서 어디까지 날아갈지도 모르는 곳인데 안전펜스 하나도 없다. 우리나가 같으면 몇 번 사고가 났을 것이고 펜스 설치해 달라고 난리일 텐데 말이다. 위험표시 하나도 없다. 바로 멀리 설산이 우뚝 자리하고 사방은 나무한그루 없는 구릉지역이다. 오로지 앞을 바라보며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내 속에 있던 뭔가 정화가 된 느낌이었다. 묵은 찌꺼기가 날아가고 새로운 공기가 몸속에 장착이 되듯 장엄한 자연을 보면서 끝없이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고 내가 한 인생의 멋진 경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또 스위스를 오게 될 것만 같다. 트래킹을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혼자도 좋고 누군가 같이해도 좋을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남편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문제다. 매년 스위스를 간다고 허용할 남편이 몇이나 있을까.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은 온전히 나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이 하면 대화하느라 자칫 경관을 놓칠 수도 있는데 혼자 멍하니 기차 안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동행이 있으면 사진을 찍어주고 같이 어디로 갈 것인지 의견을 나눌 수 있기에 좋긴 하다. 스위스는 여자 혼자 다녀도 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노심초사하며 여행을 수없이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게 참 부질없게 느껴졌다. 어쨌든 이번 여행을 계기로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을 터득했고 혼자여도 외롭거나 무섭지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비록 우당탕탕 여행이고 실수연발이지만 내게는 의미가 있다. 낯선 동행이랑 함께 했을 때 그 사람이 나랑 성향이 맞지 않고 나를 여행전문가로 봤지만 오히려 상대에게 매달리는 느낌이 들 땐 서로가 불편한 여행이 될 수 있다. 당황하고 실수하더라도 혼자가 나을 수 있다.




 마음속에 또 다른 희망과 기대가 가득 차 오르기 시작했다. 이루어지지 이루어지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퇴직하기 전에 무조건 일 년에 한 번은 트래킹을 하기 위해 스위스를 오고 싶다. 그뿐 아니라 온천 그리고 가보니 않은 체르마트까지 어쩌면 스위스도 한 번도 안온 사람은 있어도 딱 한 번만 온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위스에서는 많은 한국인 젊은 커플들을 볼 수 있다. 나 때는 패키지로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갔다. 그런 탓에 그 후론 이탈리아에 별다른 관심이 가지 않았다. 요즘은 여행사 통하지 않고 인터넷이 발달해서 그런지 젊은 커플들이 자유롭게 스위스를 통해서 신행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때론 가족, 때론 모녀가, 때론 부부가 그런데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한국인 여자는 못 본 것 같다. 혼자인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불편한 게 오히려 한국인 가족끼리 온 사람 중 부인이나, 모녀가 함께 온 사람 중의 엄마이거나 어쩌면 나 혼자 생각일 수 있지만 같은 한국인끼리 한번 찌릿하고 쳐다보기도 하고 한국말이 들려도 서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기차내에 화장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모르고 당기는 걸 본 인도인 남자가 나중에 그 남자가 나간 걸 본 자리에 앉아 있어서 나에게 화장실 이제 들어가도 된다고 친절히 알려주기도 했다.


오후 7시 비행기라 오전에는 이젤발트를 갈지 브리엔츠를 갈지 한 생각을 한 게 위험한 생각이었다. 시간을 보니 유람선이 자주 있지 않아서 아무래도 불안했다. 린덴발트에서 9시 47분 차를 타니 인터라켄에 10시 반정도 도착했고 바로 공항 가는 기차를 탔는데 자꾸 방송에서 베른에서 모든 승객들이 어쩌고 게이트 8로 가라고 한 방송을 베른 도착하기 전에 나왔다. 앞에 외국인여성이 폰으로 베른서 내려서 12 시걸 따라고 알려준다. 갑자기 한국인 세 모녀가 나타나서 그들에게 당황하며 물어본 걸 보고 알려준 것이다. 그들은 이미 나보다 30분 먼저 타고 왔는데 튠에서 한번 내려서 다시 이걸 탔다고 한다. 일단 모든 승객이 베른에서 내렸다. 정말 모두 공항 가는 승객인가 보다. 전부 캐리어를 끌고 경사진 지하도로 내려가는데 동시에 캐리어 바퀴 굉음이 울리자 무슨 전쟁영화를 찍는 것 같기도 했다. 정말 멋모르고 이젤발트나 브리엔츠 갔으면 귀국 못할뻔했다.  그들도 취리히 중앙역에서 사람들이 내리자 인도인 할머니가 내리려고 하니 따라 내리려고 하자 내가 지금 내리는 거 아니라고 알려줬다. 공항서 내려서 그 세 모녀를 쫄쫄 따라갔다.  영어를 잘해서 외국여행 때 써먹을 수 있으면 좋을듯하다. 한국여성이 멘리헨에서 영국여성과 대화하는 걸 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갑작스런 열차캔슬..수시로 봐야한다



여행은 눈치다. 내가 이게 아닌가 하고 앉아있다가 갑자기 캐리어를 들고 내리니 인도인 여자들도 우르르 내린다.


공항 우리나라와 틀리게 여러 개 게이트를 통과한다. 갑자기 내가 통과하자 삐 소리가 난다. 한국서도 안 난 건데 벨트 있내고 묻는다. 벨트가 아니라 갤럭시 워치 시계줄에 구멍에 고정하는 걸이다. 그걸 빼자 갑자기 알아먹을 수 없는 말을 한다. 영어 하냐고 해서 대충 오케이 했는데 검정봉으로 손바닥을 긁는다. 가만 생각해 보니 마약검사 같다. 바로 화면에서 검사하고는 보내준다. 죄도 없지만 그런 순간이 조마하다.

면세구역으로 넘어오자 카렌다쉬 만년필 연두색과 노란색만 30% 할인을 하고 있었다. 네이비는 58프랑이다. 살까 말까 하다가 안에 잉크를 주입하는 게 아니라 리필로 한다고 알려준다. 내심 점원의 불친절함을 느끼던 터라 그 핑계로 안산 다고 했더니 뒤에서 뭐라 뭐라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곳이 면세점인가 개인상점인가. 유독 그곳만 다른 곳에 비해 비싸고 불친절했는데 그곳에서만 지그텀블러가 보여서 구입해버리고 말았다.


탑승구역으로 오니 한국 여행객들이 스킨을 막 바른다. 한국으로 11시간을 가야 하니 여자들이 화장실서 세수를 하는 것이다. 나도 따라서 세수를 했는데 아뿔싸, 모든 스킨로션은 수화물로 부친 것이다. 겨우 옆 한국여성에게 빌려서 스킨로션을 바르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오른쪽 비상구 앞인데 오른쪽은 오만 인상을 쓴 중년남자인데 담요도 내 의자에 있어서 누구 거냐고 물어도 아니란 식으로 냉랭하다가 바로 자기 것이 없으니 쓱 가져갔다. 오른쪽엔 등치가 엄청 큰 젊은 남성이 앉아서 웃으며 " 혹시 자리 바꿔드릴까요?" 했더니 인상 쓴 남자를 보더니 단번에 "아니요"라고 한다. 스위스 갈 때는 14시간 올 때는 정말 순풍인지 11시간 만에 잠 몇 번 자니 바로 한국이다.


이제 드디어 여행이 끝났다. 모든 게 만족스럽고 아직 스위스 안 가본 데를 남겨둬야 또 가니깐 너무 완벽하게 한 번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루체른을 다시 안 오려했는데 리기산을 못 갔다. 나중에 다시 스위스 온다면 루체른의 리기산을 갔다가, 체르마트 까지 다녀오고 30번 멜리 헨 코스 말고 또 다른 코스를 찾아서 가볼 계획이다. 그리고 시외버스에 올라탔다. 이제 집으로 가면 끝이다.


결국 문제가 발생했다.

한 시간 넘게 가고 있는데 갑자기 백팩에 있는 빵을 먹어볼까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백팩이 안 보인다. 차 탈 때 캐리어 버스짐칸에 넣으면서 벤치에 놓고 온 줄 알았다. 기사도 그렇고 승객들도 걱정을 해주고 인천공항 분실물 센터에 전화를 해보라고 한다. 하지만 전화해도 분실물 들어온 게 없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지하에 있는 한식미담길에서 너무도 매운 짬뽕을 먹다가 도저히 못 먹어서 물을 타도 메웠다. 건너편 자리에 내 배낭을 둔 기억이 난다. 어쩌면 거기서 안 가져왔을 수 있다. 여러 번 전화해도 안 받았다. 다시 해봤더니 카운터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와인오프너를 안 가져와서 가방에 달아둔 태극기모양의 미니 오프너를 편의점에서 사서 달아둔 게 식별표시가 되었다. 면세구역으로 넘어오면서 와인 한 병을 샀는데 술이 있어서 택배로 보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쩐지 완벽한 여행이 될 뻔했다. 백팩만 두고 오지 않았으면 너무도 만족스러웠는데 순간 차에서 식은땀이 줄줄 났다. 나이 들수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밥을 먹더라도 몸에서 절대 내려놓지 않아야 했다. 다시 일요일 인천공항에 백팩 찾으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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