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우리 부자 되는 거 아니야?

나를 부자로 키워낸 서점

by 라블리



학교 옆 서점의 최대 성수기는 3월이다. 부모님은 매년 3월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고등학교는 교과서 외에 과목마다 참고서가 별도로 지정되었는데 학년마다 과목마다 참고서가 있어야 하니 그 종류와 양이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지금과 달리 예전엔 학생수도 많았고, 온라인 서점도 없던 시절. 무조건 학교 옆 서점에 가야지만 필요한 참고서를 살 수 있었다. 신학기가 되면 참고서 리스트가 나왔고, 엄마 아빠는 거의 매일같이 도매상으로 책을 가지러 갔다. 작은 승용차에 책을 꽉꽉 채우고도 모자라 몇 번을 더 왔다 갔다 해야 했다. 3월에 서점은 온갖 종류의 참고서로 산을 이루었다.



등교시간이면 서점 안은 같은 옷을 입은 시꺼먼 남학생들로 가득 찼다. 몇 학년인지 문과인지 이과인지만 말하면 엄마아빠는 마치 기계처럼 착착착 참고서를 꺼내어 건넸다. 3월의 아침 등교 시간, 서점은 마치 전쟁통 같았다. 몇 백명의 고등학생을 엄마, 아빠 둘이서 감당해 냈다. 산처럼 쌓여 있던 책이 점점 줄어들고 대신 카운터 아래 우산통에는 현금이 수북하게 쌓여갔다.



지금처럼 흔한 카드, 페이 결제는 언감생심 오직 현금만이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3월엔 현금을 말 그대로 쓸어 담았다. 커다란 우산받이 통 몇 개씩 현금이 가득했다. 등교시간 전쟁이 끝나고 난 뒤 현금이 가득 들어있는 우산통을 2층 우리 집으로 가지고 올라오면, 나와 동생은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고, 우리를 돌봐주던 할머니는 신이 나서 돈을 세었다. 돈은 세어도 세어도 계속 나왔다. 와…. 우리 집 이러다 진짜 부자 되겠다!! 어린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아 같이 신나고 놀라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조금 더 자라고 난 뒤 신학기 전쟁터에는 나도 투입되었다. 서점 뒤편에 서서 감시를 하는 역할이었다. 엄마아빠는 카운터에서 책을 파느라 정신이 없어서 시꺼먼 남학생들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몇몇 학생들은 정신없는 틈을 타 책을 훔쳐가기도 했다. 나는 전쟁터 뒤편에서 까치발을 들고 매의 눈으로 감시를 했다. 전혀 위협스럽게 생기지 않은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그 난리통을 뒤에서 지켜보며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던 지극히 내향적이고 철없는 딸이었다.



전장의 최전선에서 분투하던 그날의 엄마, 아빠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 치열한 날들 덕분에 나는 먹고 싶은 것도 다 먹고, 입고 싶은 것도 다 입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하며 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 철없던 시절, 당연한 줄 알고 누리던 모든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음을 이제야 안다. 지금의 나와 같았던 젊은 날의 엄마아빠, 열심히 싸워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뒤늦은 고백을 해본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도 마음 부자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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