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평생을 함께하게 될 운명의 서막
6살 어느 날, 나는 서점 딸이 되었다. 아빠는 공무원이었다. 지금이야 공무원 자리 얻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지만, 그땐 하는 수 없이 선택한 직업이었다. 멀쩡히 잘 다니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서점을 하고 싶단 아빠 말에 엄마는 참으로 기가 찼다. 심지어 가지 않겠다며 6살 어린애처럼 현관 앞에 앉아 심통을 부렸다고 하니, 그 시절 엄마의 분통 터짐은 말해 무엇하리.
하지만 간절히 원하면 끝내 닿게 되듯, 아빠에게 희소식이 들려왔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서점을 운영 중인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어 서점을 인수할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 이건 하늘이 준 기회였다. 아빠는 그렇게 꿈에 그리던 서점을 갖게 되었다.
버스정류장 앞 2층 건물. 서점 이름은 태양서점. 아빠가 지은 이름은 아니고 원래 서점 이름을 그대로 썼다. 나는 서점에서 사는 내내 서점 이름이 영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좀 더 예쁜 이름으로 짓지, 태양이 뭐야. “태양서점” 큰 간판 아래에 가운데 출입문을 두고 양 옆으로는 큰 전면유리가 있었다. 그곳엔 책 진열대가 있고, 거기엔 매달 발행되는 온갖 잡지들이 좌르륵 진열되어 있었다. 버스정류장 바로 앞이라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진열된 책들을 구경했다. 달마다 아빠는 햇빛에 바랜 지난호 잡지들을 꺼내고 새 잡지들을 다시 진열했다. 그것도 모자라 전면 유리에는 주렁주렁 온갖 홍보용 포스터들도 붙였다. 아마도 아날로그 시절에 할 수 있는 최선의 홍보 방식이었을 것이다.
홍보용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출입문 바로 양 옆은 잡지 코너, 앞 책장은 중학교 문제집류가 왼쪽엔 카운터가 있었다. 카운터 뒷면 왼쪽벽 책장에는 만화책이 카운터 옆 책장엔 고등학교 수험서가 있었다. 서점 가장 안쪽은 일반 서적류가 있었는데 가운데 가장 큰 책장 진열대에는 베스트셀러, 신간 위주로 진열이 되어있었다. 책방 벽면 한쪽은 소설, 에세이, 과학, 철학, 시집 등등이 분야별로 정리되어 있었고 나머지 한쪽은 어린이 도서로 채워졌다. 아무튼 작은 서점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책 종류가 갖춰진 곳이었다. 서점은 중고등학교 옆에 위치한 곳이라서 참고서 판매가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곳이었다. 아마도 아빠는 고즈넉한 서점 운영을 꿈꿨을 테지만, 매년 매 학기마다 참고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줄은 몰랐을 거다. 물론 그 덕분에 우리가 먹고살았지만.
서점 뒤편으로는 작은 쪽문이 나있었다. 우리는 그 쪽문을 통해 서점 뒷문을 통과해 2층 우리 집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2층은 집이었고 1층 서점은 나와 동생의 놀이터였다. 우리는 수시로 그 작은 쪽문을 다람쥐처럼 돌아다녔다. 머리를 숙이지 않아도 드나들 수 있던 쪽문이 허리를 깊게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 갈동안 그곳에서 책과 함께 살았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어쩌다 서점 딸로 20여 년을 자랐다. 책과 평생을 함께하게 될 운명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