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책 살 돈이 없어

왜냐면 안 사도 되거든...

by 라블리



서점 딸로서 가장 큰 수혜는 무얼까? 실컷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은 내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었다. 난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본격 공부를 시작하게 된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나는 문제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행복한 학생이라는 것을.



중학교 입학 전 배치고사라는 게 있었다. 같은 반 안에 아이들의 학업 수준을 골고루 배치해야 하기 때문에 시험을 통해 학생의 학업 수준을 테스트해 보는 일종의 줄 세우기를 위한 시험이었다. 초등학생까지만 해도 그다지 공부에 관한 잔소리를 듣지 않았는데, 배치고사를 앞두고 집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빠는 서점에 있는 모든 배치고사 문제집을 가져왔고, 일일 스케줄까지 직접 짜서 책상 앞에 붙여두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아빠가 시키는 대로 문제집이란 문제집은 족족 풀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머리가 쥐 나도록 공부를 했다. 그 결과 나는 놀랍게도 전교 5등으로 중학교에 입성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 내내 나는 책을 사기 위해 용돈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과목마다 필요한 문제집을 다 사려면 사실 꽤나 많은 책값이 들었다. 나는 문제집이 필요할 때면 서점으로 쪼르르 내려와 문제집을 쏙 빼서 “아빠 나 이거 가져간다!”라고 말하면 계산 끝. 흡족한 아빠의 미소는 덤이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서점딸로서는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새라야, 너는 문제집 산다고 용돈 받을 일이 없겠네?!”

“응. 난 살 필요가 없으니까. 필요할 때마다 그냥 서점에서 가져오면 돼.”

이때까지만 해도 난 친구들이 날 부러워하는 줄 알았다.

“와 그럼 넌 용돈 빼돌리지도 못하겠구나.”

“잉?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한테 문제집 사야한다고 용돈을 받아. 원래 책값보다 좀 더 비싸게 부르는 거지. 문제집을 사야 한다고 하면 엄마가 의심 없이 용돈을 주거든. 그래서 문제집 사고 남는 돈을 빼돌릴 수 있어.”



친구들은 음흉한 미소를 띠며 용돈을 빼돌리지 못하는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서점 딸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발상이었다. 순간 친구들을 부럽다고 느낀 철없던 시절의 나. 지나고 보니 우스운 이야기다. 엄마 아빠는 바보가 아니며, 그 시커먼 속내를 다 알고 있었을 텐데. 비록 나는 친구들처럼 용돈을 떼어먹는 스릴을 느낄 순 없었지만, 문제집 떼어먹기는 선수였다. 진짜 열심히 공부하겠다며 가져온 문제집 중에서 끝까지 푼 게 몇 개나 되더라… 이제와 내가 떼어먹은 문제집 개수를 생각해 보니, 나도 만만치 않게 해 먹은 것이 많은 딸내미였음을 자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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