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잡지만큼은 놓칠 수 없었던 중학생
1999년,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그 시절로 말할 것 같으면 1세대 아이돌의 전성기 시절이었다. HOT, 젝키, 신화, 지오디... 각 반마다 아이돌 멤버의 부인이 몇 명씩 있던 시절. 강타부인, 계상부인, 지원부인 등등... 웬만한 중고등학생들은 대부분 아이돌에 미쳐있던 시절이었다. 그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
그때는 모든 것이 아날로그였던 시절이기도 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아이돌 포토카드를 사서 정성스럽게 모아두거나, 매달 나오는 연예잡지를 사서 내가 사랑하는 아이돌만 오려내서 파일에 스크랩하기도 했다. 서점딸인 나는 바로 이 부분에서 어마어마한 특혜를 가지고 있었다. 매달 연예잡지를 종류별로 다 볼 수 있었다는 것!!!!
매달 잡지가 나오는 날이면 나는 서점으로 쪼르르 내려가 잡지칸 앞에 한참을 앉아 오빠들의 사진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음 달 잡지가 들어왔는데 이번 달 잡지가 아직 팔리지 않은 날에는 잡지를 가져갈 수 있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잡지를 들고 집으로 올라가서는 정성스레 내가 좋아하는 오빠들의 사진을 오려서 파일에 차곡차곡 스크랩을 했다. 자르고 남은 잡지는 학교에 가져갔다. 사실 나는 그 당시 모두가 좋아하던 HOT나 젝키, 신화, 지오디 등 아이돌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다. 덕분에 강타부인, 계상부인, 지원부인들은 내가 남긴 잡지를 사이좋게 나눠가질 수 있었다. (나는 Y2K의 팬이었다.)
HOT가 화보집을 출간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그 화보집이 굉장히 화제가 됐었고, HOT 팬이 아니었던 나도 왠지 그 화보집은 갖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주변에 워낙 HOT 팬들이 많다 보니 서로 그 화보집을 갖고 싶어 안달이 나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누구던가. 바로 서점집 딸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그 화보집은 서점에 있었다. 물론 가질 수는 없었다. 팔아야 하니까. 나는 괜히 그걸 갖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없는 걸 나는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어린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빠를 조르고 졸라 결국 화보집을 손에 쥐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아빠가 서점에서 급히 올라왔다. 화보집을 가져오라면서... 상황은 이랬다. 늦은 저녁, 한 여학생이 HOT 화보집을 사러 왔는데, 서점엔 당연히 화보집은 없었다. 여학생이 너무나 간절한 표정이었는지 아빠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우리 딸이 하나 가지고 간 게 있는데 그거라도 사겠냐고... 당연히 그 여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고 했고 아빠는 그렇게 나의 화보집을 다시 홀랑 가져가 팔아버렸다. HOT 팬도 아니면서 그걸 왜 가지고 싶어 했는지, 그걸 팔아버린 아빠를 왜 원망했는지... 나도 참 어린아이였다.
서점딸이라서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연예잡지를 자유롭게 볼 수 있어서였다. 연예잡지의 단골 부록인 연예인 브로마이드는 언제나 내 차지였고, 관심 없는 아이돌의 브로마이드는 친구들에게 선물도 할 수 있었으니 그 시절 나는 친구들의 마음을 쉽게 살 수 있었다. 사춘기 소녀들에게 아이돌은 인생의 전부 아니던가. 어쩌면 사춘기 시절, 내가 모나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원 없이 오빠들을 보고 자랄 수 있었던 환경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시절 나를 키운 수많은 연예잡지들이여... 지금은 다 어디에 있을까? 그립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