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끄러운 글쓰기

뒤늦은 고백

by 라블리


부모님은 책을 좋아했다. 책으로 먹고사는 고단한 일을 업으로 삼았지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책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일상에서도 책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책의 주인공에 대하여 마치 진짜 곁에 있는 사람인 양 마주 앉아 하염없이 이야기했고, 책에 대한 대화는 두 사람 사이에서 매우 자연스러웠다.



책을 읽는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레 책을 좋아하고 읽게 된다고들 한다. 그 시절 부모님께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아마 코웃음을 칠 것이다. 도대체 언제 이 아이들이 책을 읽는단 말입니까!!! 책을 좋아하는, 좋아하다 못해 사랑해서 서점까지 운영하고 있는 부모 아래서 자라는 자식들인데, 서점에 와서 코를 박고 보는 책은 연예잡지가 전부냐면서!



특히 아빠는 나에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아빠는 문학작품을 좋아했고, 내게도 수차례 책을 권했다. 이걸 읽어봐라, 저걸 읽어봐라. 아빠의 권유는 늘 내 눈과 귀를 스쳐 지나갔다. 흰 종이에 검은 글자만 수두룩 빽빽한 책을 읽는 일이 영 따분하게 느껴졌다. 책은 재미있지 않았고, 아빠는 한숨만 쉬었다.



중3 여름방학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독후감 숙제가 있었는데, 그게 필수였는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 독후감을 제출했다. 나는 그 숙제를 할 생각이 없는 아이였다. 독후감을 쓴 것은 다름 아닌 아빠였다. 내 기억으로는 아빠에게 대신 써달라고 한 적이 없다. 절대. 안 하면 안 했지 내 숙제를 부모님께 부탁할 그런 발랑 까진 아이는 아니었단 말이다...... 그런데 개학을 앞둔 어느 날, 아빠는 독후감을 내밀었고 이걸 제출하라 했다. 내가 썼든 안 썼든 안내는 것보다야 내는 게 낫겠지. 별생각 없이 숙제를 제출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국어선생님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시면서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내가 쓴 독후감이 시대회에서 차상을 받게 되었다고. 시상식에 다녀와야 한다고. 그때의 그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 환하게 웃는 국어선생님 앞에서 거짓으로 좋아하는 척을 해야 했던 나. 그때의 부끄러움은 도무지 잊히지 않는다.


KakaoTalk_20260118_074626620_01.jpg



'이광수의 무정을 읽고'... 난 이광수의 무정을 읽지 않았다. 읽지도 않은 책과 쓰지도 않은 글로 상을 받다니. 이후로 국어선생님은 각종 백일장 대회에 나를 불렀다. 나는 고심하는 척, 멋진 문장을 쓰는 척 백일장에 나가 그렇게 척만 하다 돌아오곤 했다. 아빠의 문장으로 받은 상, 나는 그 상을 볼 때마다 숨고 싶었다.



내 가슴 한편에는 그때 그 시상식장에서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중학생이 여전히 살고 있다. 나는 꿈꾼다. 앞으로 더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써야지. 그리고 내가 쓴 글로 꼭 '진짜'상을 받아야지. 진짜 나의 글로 수상의 영광을 누리는 날, 시상식에서 고개 숙이고 있던 중학생의 나에게 다가가 말하고 싶다. 이제 고개를 들고 활짝 웃어도 된다고.



keyword
이전 07화서점의 봄날은 영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