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까맣게 타던 날들
책을 팔아서 먹고사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요즘엔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90년대 나의 어린 시절엔 가능한 일이었다. 부모님은 서점을 하며 두 딸을 충분히 먹여 살렸고, 가정 형편은 꽤 넉넉한 편이었다. (어린 나의 기준에서 보았을 땐 그랬다) 매출의 8할은 참고서 판매였다. 서점 옆에는 중, 고등학교가 있었고 매 학기 초마다 서점은 발 디딜 틈 없이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오직 학교 옆 서점에서만 살 수 있었기에 매 학기마다 몇백 명의 손님들은 고정 수입원이 될 수 있었다.
지금처럼 할인판매가 당연하던 시절도 아니었다. 무조건 정가 판매에, 현금 장사였다. 매년 말 그대로 돈을 쓸어 담았다. 행복한 날들이었다. 그런 날들이 영원할 줄만 알았다.
어느 날, 학교 바로 옆. 정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다른 서점이 들어왔다. 부모님은 기가 차서 말을 잃었다. 오직 우리 서점에서만 문제집을 살 수 있었던 학생들은 서점이 하나 더 생기자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학교와 훨씬 더 가까우니까.... 그 서점은 오직 참고서만 파는 서점이었다. 누가 봐도 작정하고 들어온 사람이었다. 참고서 매출이 뚝 떨어졌다. 혼자서 팔던 것을 둘이 나눠 파니 그럴 수밖에.
부모님의 속은 매일같이 타들어갔다. 그런데 타들어 가는 속에 그 서점은 또 불을 지폈다. 이제는 할인 판매까지 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당연히 그 서점으로 몰렸다. 우리 서점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할인 판매를 시작했다. 5%,10%,15%,20%..... 책 한 권 팔아 서점이 가져가는 수익은 15%에서 많아야 20%. 그 서점은 그 선을 넘기 시작했다. 25% 까지 할인을 해서 팔자 아빠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그 서점을 향해 달려갔다. 한마디로 깽판을 치러 간 것이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늘 봄날이었던 서점에 찬 바람이 불었다. 제 살 깎아먹기 장사를 하며 우리에겐 상처만 남았다. 몇 년간 우릴 괴롭히던 그 서점은 우릴 처참히 망가뜨리고 사라졌다. 그 사이 세상도 변했다. 인터넷이 발달했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는 일이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예전만큼 학생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학생수도 매년 줄었다. 부모님은 새카매진 가슴을 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루하루 근심만 늘어났다.
그 얄미운 서점과 싸우던 몇 년이 우리 엄마, 아빠에게는 지옥이었다. 아빠에게는 꿈이었던 서점, 꿈을 이룬 생계의 터전이었던 서점이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얼마나 그 시간이 고통이었을까. 시리고 시린 그 시간을 견디고 나면 우리에게 다시 봄이 찾아올까? 하지만 서점엔 다시 그런 봄 같은 시절은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