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로망 실현
“이번 주는 복숭아 축제에 가볼까?”
우리의 데이트는 독특했다. 주말에 무슨 영화를 볼지 검색하기보다는 어떤 지역에서 무슨 축제가 열리는지 찾아봤다. 대부분 축제의 풍경은 비슷했다. 각설이 타령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고 비슷한 먹거리를 팔았으며 거나하게 취한 아재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것들이 좋았다. 시골 장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 축제장을 벗어나면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 풍경, 어딜 보아도 막힌 것 없이 탁 트인 시골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했다.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같은 꿈을 꾸었다. 시골에서 아이들과 소박하고 예쁘게 사는 꿈. 결혼 이후에는 베이비페어보다 귀농박람회를 더 자주 다녔다. 여러 부스를 오가며 마치 정말 귀농이라도 할 것처럼 진지하게 상담을 받기도 했다. 여행을 떠나면 풀빌라가 아닌 농가 민박에 묵었다. 시골살이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싶었다. 그곳에 사는 이들의 찐 경험과 조언을 들으며 우리의 시골살이 꿈은 해가 갈수록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꿈은 언제까지나 꿈일 뿐이었다. 덜컥 결정을 내리기에 우리에겐 용기가 부족했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당장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었고, 아프신 부모님을 나몰라라 하고 멀리 떠날 수도 없었다. 현실과 로망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귀농박람회를 다니고 시골 민박으로 여행을 다니며 언젠가는 이루어 질지도 모르는 시골살이의 꿈을 품고 별일 없는 일상을 살아갔다.
언제까지 꿈으로만 품고 있을 건데?!
첫째가 5살이 되고 이듬해 전세 만기를 앞둔 시점이 되자 이사를 고민하게 되었다. 곧 태어날 둘째를 생각하면 지금보다 넓은 집으로 가야 했다. 아파트값은 날이 갈수록 고공행진, 우리가 가고 싶은 평형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작은 아파트에서의 생활이 답답했다. 넓은 곳으로 가기엔 돈이 부족했다. 이런저런 고민만 깊어지던 때에, 우연히 어떤 블로그 글을 보게 되었다. 작은 시골 학교에 아이를 보내며 너무나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시골 학교는 워낙 아이들 수가 적기 때문에 코로나가 아주 심할 때가 아니고는 늘 등교를 하고 즐겁게 수업을 했다고 한다. 도시의 초등학교보다 방과 후 커리큘럼도 훨씬 다양하고 수업의 질도 매우 우수하다는 내용의 글을 읽으며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이제 얼마 후면 첫째가 초등학교에 가야 한다. 도시에서는 분명 방과 후 학원 뺑뺑이를 돌며 살아야 할 운명일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그런 생활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남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아이는 아이답게 실컷 뛰어놀며 자연 속에서 자라게 해주고 싶은 건 우리 부부의 확고한 교육관이었다. 그래서 아이의 어린이집도 일부러 그런 곳을 골라 보내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우리의 로망 실현 그리고 아이의 행복을 위해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시골이 멀리 있다는 편견은 버려!
우리는 그동안 시골 하면 지방만 생각했다. 전라도, 강원도, 경상도 어디로 가면 좋을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내가 우연히 읽었던 블로그 글의 주인공은 용인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왜 우리는 멀리 가려고만 생각했을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시골은 있었다.
우리는 출퇴근 가능한 1시간~1시간 반 거리의 경기도권 시골을 알아보기로 했다. 특히 평이 좋은 초등학교가 위치한 곳 주변으로 매물을 찾았다. 경기도 화성, 광주, 용인 정도가 허용 가능한 범위였다. 매일같이 네이버 부동산과 지도를 열고 매물이 나오면 거리뷰로 주변을 탐색했다. 괜찮다 싶은 곳은 무작정 가봤다. 직접 가서 보고 느끼며 우리가 과연 살만한 곳인지 판단했다. 둘째를 뱃속에 품고 출산을 이틀 앞둔 날까지도 발품을 팔았지만 마음에 쏙 들어오는 집을 찾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우리는 전원주택 전세 매물만 찾아다녔기에 집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과연 우리의 로망을 담은 집을 찾아낼 순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