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블리 Sep 20. 2022

만만치 않은 시골 주택 이사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




집주인분이 계좌번호를 안 주시네요?!

 

가계약을 하기 위해 부동산에 들러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을 입금하려는데 중개인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당황한 얼굴로 중개인을 바라봤다.     


“집을 내놓자마자 바로 계약이 될 줄 모르셨대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셨다고, 조금 있다 계좌번호 보내주신대요.”     


이 말을 듣고 나니 이 집이 더 마음에 들었다. 집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태껏 많은 집을 보았지만 이 집은 분명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집이었다. 어린아이들을 위해 부부는 직접 집을 짓고 집안 곳곳을 매만지며 살아왔다. 마당에 놓인 그네, 벽지에 남겨진 아이들의 키를 표시한 자국들, 유리창에 붙어 있는 그림... 가족들이 이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이 갔다. 켜켜이 쌓여있는 행복한 추억들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계좌번호를 주고 싶지 않은 집주인의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집 구하기는 끝났으니 이제 남은 미션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전세 만기는 7월인데 우리는 2월에 이사를 하기로 했다. 만기일 전에 나가려면 우리가 세입자를 구해야 하고, 복비도 다 부담해야 한다. 일이 복잡해질 거라 예상했지만 다행히 집주인은 이 집을 매매로 내놓았다. 집만 팔린다면 우리가 신경 쓸 일은 단 하나도 없다. 매물로 내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보러 온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부랴부랴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떨리는 마음으로 집을 보여줬다.     


‘제발 팔려라’     


신혼집을 보러 온 예비신부는 우리 집을 꼼꼼히 살펴봤다. 꽤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들이 돌아가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아까 보고 가신 분 가계약하셨다고. 집이 팔리지 않을까 봐 속을 끓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방에 해결되다니. 온 우주가 나를 돕는 것 같았다. 시골에 가서 살라는 하늘의 뜻인가?    



      





우리는 본격적인 이사 준비를 위해 한번 더 이사 갈 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가구 배치를 위해 실측이 필요했고, 집주인에게 인수인계(?) 받아야 할 것들도 많았다. 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무척 많다. 집주인분은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찬찬히 알려주었다. 마당의 잔디를 깎기 위한 예초기 사용법, 보일러 사용법, 쓰레기 버리는 법, 마을생활규칙... 역시 아파트와 차원이 다른 주택살이. 그래도 우리는 마냥 신이 났다. 집주인분들은 웬만한 물건들은 다 두고 간다고 했다. 마당을 관리하는 도구들, 바비큐 그릴, 야외수영장... 덕분에 우리는 주택살이에 필요한 물품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이 날 실측해온 치수들을 정리한 뒤 가구 배치를 해보았다. 1층은 부엌과 거실, 작은방 하나. 2층은 방 2개와 작은 드레스룸이 있고 다락방이 있다. 가구 배치를 하려니 난감해졌다. 우리 집에 있는 큰 가구들은 대부분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들인데, 이 집의 구조상 2층으로 과연 올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사다리차를 쓸 수 있으면 다행인데 이마저도 창이 작아 불가능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폭을 상세하게 실측해 이사업체에 전달하니 올라갈 수 있다는 답이 왔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사 당일. 막상 살던 집을 떠나려니 마음이 이상했다. 벽에 남아 있는 아이의 낙서, 가구가 치워질 때마다 나타나는 작은 장난감들... 곳곳에 배인 아이의 웃음소리가 내 마음을 붙잡았다. 우리도 이곳에서 참 많은 행복을 쌓았는데. 뒤이어 이곳에 들어 올 신혼부부가 또 다른 행복으로 집을 채워가겠지? 집이란 그저 공간이 아닌 삶을 담아내는 곳이다. 우리가 이 작은 아파트에서 담아낸 삶의 기억은 오랫동안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집에 도착하니 내 가슴은 또 두근거렸다. 하지만 즐거운 두근거림도 잠시뿐... 내 멘탈은 바사삭 부서지기 시작했다.     


“사모님, 이거 못 올라가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가구 배치도 이미 다 해놨는데... 2층에 올라가지 못할 가구는 ‘장’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님은 침대를 붙잡고 얘기했다. 침대가 못 올라가는 건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에는 없는 일인데? 침대도 장도 줄줄이 못 올라간다면 우린 1층에 이것들을 다 어디에 둔단 말인가? 내 뇌는 일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그때 한 분이 심기일전하며 외쳤다.     


“침대 분리해서 다시 해봅시다!”     


2층 계단으로 힘겹게 올라가는 침대를 보며 나는 온갖 신이란 신에게 모두 기도를 했다. 침대만이라도 제발 올라가게 해 달라고... 나의 기도가 통한 것인지, 아저씨들의 기술이 탁월한 덕분인지 (아마 후자일 것이다) 침대는 2층 계단을 간신히 통과해 올라갔다. 그 순간 다리가 풀렸다. 아 정말 다행이다.    


  

이 밖에도 나의 계획과 달리 그 자리에 놓지 못하는 가구는 더 있었다. (생각지 못한 콘센트 구멍이 있다던지, 원래 자리에 다른 가구가 들어가는 바람에 갈 길을 잃는다던지) 계획대로 이루어져야 마음이 편한 J형 인간인 나는 모든 계획이 틀어지자 고통스러웠다. 아저씨들은 그럼 이건 어디다 놓느냐고 무섭게 눈으로 이야기했고 나는 계획에 없는 계획을 다시 세우느라 머리가 터질 듯했다. 어쨌든 무사히(?) 이사는 끝났고 나는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올라가지 못한 장이 1층 한편에 떡하니 놓여있는 걸 바라보며 웃음이 나왔다. 철저한 계획도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인생은 늘 예상치 못한 문제를 안겨준다. 앞으로 우리는 이곳에서 어떤 예기치 못한 일들을 만나게 될까.



                                                                           




시골살이, 잘할 수 있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