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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블리 Sep 24. 2022

설레는 마음은 봄과 함께

시골에서 맞는 첫 봄




‘아, 집에 가고 싶다’     




이삿짐을 정리하며 1층과 2층을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인데...?! 17평 작은 아파트에서 2배 넓어진 2층짜리 전원주택. 넓어진 만큼 공간을 여유 있게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도대체 그 작은 집에서 어떻게 이 많은 짐들이 쏟아져 나온 걸까? 마구잡이로 욱여넣었던 짐들이 갈 곳을 잃은 채 집안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나는 또다시 짐들을 이곳저곳에 욱여넣으며 벌써부터 다음 이사를 걱정했다.      



이사 당일 급하게 수정한 가구들의 위치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판단력이 흐려져 일단 되는대로 자리에 두었는데 며칠을 지내다 보니 아무래도 이 자리는 아니다 싶은 것들이 생겼다. 2층 안방 옆에는 아주 작은 공간이 있다. 실측을 해보니 그 자리에는 우리 집 장이 쏙 들어가는 자리였다. 나는 그 자리에 장을 두고 작은 드레스룸처럼 쓸 계획이었다. 하지만 2층에 장이 올라가지 못하는 바람에 그곳에 무얼 두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아지트처럼 아늑한 공간... 이곳을 아이들의 아지트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장난감장을 이곳에 두기로 했다. 나는 아이가 이곳에서 꼼지락꼼지락 노는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들떠있었다. 그런데 나의 상상과는 다르게 아이는 이 공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장난감을 챙겨 1층으로 가지고 내려와 놀거나 아예 그곳을 가지 않았다. 아직까지 엄마 곁에서 노는 게 더 좋은 나이라서 그런 걸까?      



이렇게 공간을 죽일 수는 없는 일. 아이의 물건은 모두 1층으로 옮기고 1층에 있던 내 책상과 책장을 2층으로 올리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끙끙거리며 두 가구의 위치를 옮겼다. 옮기고나니 이전보다 훨씬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러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아도 되고, 나는 더없이 아늑하고 완벽한 나만의 서재를 갖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공간을 선물 받은 기분. 아무래도 이 집은 나와 잘 맞는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대형마트까지는 차로 30~40분 거리. 하지만 읍내에 하나로마트가 있으니 장은 거기서 보면 된다. 한동안 하나로마트에 장을 보러 다니면 꼭 펜션에 놀러 와 근처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기분이었다. 내가 여기 사는 게 아니라 여행 온 것 같은 느낌.      



어쩌다 계획에도 없던 시골 주택에 살게 된 친구가 있다. 뼛속까지 도시녀인 그 친구에게 시골 주택에 사는 일은 꿈조차 꾸지 않은 일이었다. 친구에게 물었다. 거기서 사는 기분이 어떻냐고.      


“펜션에 놀러 왔는데 집에 못 가고 있는 것 같아.”     


누구에게나 시골살이가 로망은 아님을 알았다. 난 이곳이 펜션이 아니라 우리 집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가슴이 묘하게 저릿해지면서 행복이 차오른다.      



아파트에 살 땐 참 편했다. 당장 뭐가 필요하면 호다닥 나가 바로 앞 슈퍼에서 사 올 수 있었다. 저녁 밥하기 귀찮을 땐 시켜먹으면 그만이었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도 금방 다녀올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 장을 보면 다음 날 새벽 문 앞에 도착해있었다. 시골에 오니 이 모든 것들은 도시에 살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시골에 산다는 건 불편함을 얻는 일이다. 오직 로망만으로 살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천천히 깨닫고 있다.          









“자, 여기에 떡 싣고 엄마 책 넣고... 다 됐지? 이제 출발!”     



이사 후 며칠이 지나 우리는 동네 이웃들에게 이사떡을 돌렸다. 더불어 나의 책도 선물로 준비했다. 10여 가구가 오순도순 모여 있는 우리 마을. 떨리는 마음으로 벨을 누르고 환하게 웃으며 우리 가족을 반겨주는 이웃을 만났다.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지만 이토록 반겨주는 이들이 있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을 단톡방에는 감사의 인사가 오고 갔다.           


“떡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작가님이셨군요. 책 선물 감사합니다.”

“그 집 살던 엄마도 책을 썼어요. 참 신기하네요.”          


나 역시 놀랍고 신기했다. 그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이 집안 어디에선가 그분도 글을 쓰고 있었겠구나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틈만 나면 아이와 함께 동네를 산책했다. 아이는 토끼처럼 폴짝거리며 이리저리 잘도 다녔다. 마치 원래 여기 살았던 아이처럼. 산책하며 바라보는 마을의 풍경이 매일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메마른 가지에서 초록이 슬며시 보이기도 하고, 빈자리인 줄 알았는데 뭔가 꿈틀거리며 올라오기도 했다. 겨울의 끝자락에 이곳에 온 우리는 설렘과 함께 봄을 맞이했다. 우리가 이곳에서 맞이할 첫 봄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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