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계금융IT기초 -공통용어#4]분개, 분개 룰, 차변과 대변
키위은행 자금부 담당자인 황 대리는 입행한 지 올해로 막 5년 차, 하지만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회계의 스페셜리스트'다. 그는 생전 처음 보는 유형의 금전 거래라 하더라도 회계 장부와 계정과목만 주어진다면 거래의 취결부터 사후 처리까지 모든 자금의 이동을 줄줄이 꿰찰 수 있는 아주 축복받은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었으니, 최근 위태위태하던 연인과의 관계가 엊저녁, 그녀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로 끝을 고해버렸음이 바로 그것. 여기저기 수억 원 대의 자금이 움직이는 복잡한 회계 처리라 한들, 일계 내역만 뽑아낼 수 있다면 한낱 숫자놀이에 불과한 그였다만, 사람 마음이라는 건 뭐 하나 쉽게 보이질 않는다. 열 길 돈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맘 속이야 알 수 있을 턱이 없다.
황 대리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다잡고 사무실에 앉았다. 모니터 너머로 전일자 야간에 발생한 내국환 취결 거래의 회계 내역을 들여다보던 그는 문득 포옥, 한숨을 내쉰다. 결국 사람과의 관계도 사람의 재산인데, 돈처럼 사람 마음도 질서정연하게 분개할 수 있다면 그녀를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모든 유형, 무형의 재산은 장부에 기록할 수 있다.
왼쪽과 오른쪽에 나누어서.
사람과의 관계를 과연 회계 장부에 기입할 수 있느냐를 따지려면, 회계 장부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우선 알 필요가 있다. 회계 장부는, 복잡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더없이 심플하다. 빈 종이에 거대한 T자를 그리면, 장부를 만들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T자를 통해 구분된 왼쪽 영역과 오른쪽 영역에, 각각의 계정과목에 해당하는 금액의 증감을 기입하면 된다.
이때, T를 기준으로 왼쪽 구역을 "차변", 오른쪽 구역을 "대변"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리고 이렇게 작성된 틀을 "분개장"이라고 말한다.
또, 특정한 규칙에 따라 재산의 증감을 차변과 대변에 나누어 기입하는 데, 요 과정을 "분개한다"라고 통칭하며, 그 규칙을 "분개 규칙" 혹은 "분개 룰"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은행 실무자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을 "회계 처리", 혹은 "계정 처리"라는 건 즉, 정해진 분개 룰에 맞춰서 자금의 이동을 장부에 기입한 뒤, 검증을 거쳐서 이를 총계정원장에 반영하는 행위라고 정리할 수 있다.
다시 분개장으로 돌아오자. 자, 그러면 틀은 완성이 되었고, 이제 무엇을 차변에 적고 무엇을 대변에 적는가. 즉, 분개 룰에 대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제부터는 다소 머리 아픈 단어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에, 미리 심호흡을 해 둘 필요도 있다.
새삼 5년 내내 분개장과 싸워 온 황 대리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모든 단어를 다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차변에 적는 케이스와 대변에 적는 케이스가 좀 다르다는 정도만 먼저 이해하는 것이 편하다. 분개를 처음 접하는 내용은, 예를 들어가면서 직접 적어 보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빠를 테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절대 원칙이 있다.
차변과 대변의 금액은 항상 일치해야 한다. (대차평균의 원리)
(물론 예외적인 케이스도 존재하며, 따로 서술하겠다.)
Case 1.
키위은행 고객이 키위은행 창구에서 본인 명의 키위은행 예금 계좌로
현금 1만 원을 입금하고자 한다.
천만다행으로, 모종의 이유 때문에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주 귀여운 케이스에 해당한다. 이 경우, 자금은 현금 1만 원만, 단 한 번 이동하면 된다.
차변
은행 입장에서, 고객에게 받아 낸 현금 1만 원은 자산에 해당한다.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텔러의 돈통을 거쳐서 금고에 쏙 들어가면 되는 작고 귀여운 실물 자산. 따라서 이 경우, 텔러는 현금 시재 1만 원이 증가했으므로 차변에 1만 원의 증가를 기입한다.
대변
마찬가지로 은행 입장에서, 고객의 예금 잔액이 1만 원 증가했으므로 이는 은행이 고객에게 줘야 할 빚이 증가했다는 의미다. 결국, 은행 입장에서는 채무가 발생한 거고, 이 채무는 당연히 부채에 속한다. 즉, 고객 예금이라는 이름의 부채가 1만 원 증가했다.
Case 2.
키위은행 고객 명의의 실명번호(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등)가 변경되어서, 해당 명의 계좌의 고객 실명번호를 변경하고자 한다.
이때, 은행은 이 고객이 괘씸해서 수수료 5천 원을 받고 처리해주기로 한다.
고객은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이
본인 계좌에서 5천 원을 수수료로 빼서 처리해달라고 했다.
뭔가 이유가 복잡하지만, 이 경우도 Case 1과 동일하게, 자금은 5천 원만, 단 한 번 이동하면 된다.
차변
은행 입장에서, 고객 예금 계좌에서 5천 원을 출금한다는 의미는 고객에게 갚아야 할 돈 5천 원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즉, 채무(부채)가 5천 원 감소한 셈이므로 차변에 기입한다.
대변
은행 입장에서, 수수료는 가장 짭짤한 수입원이면서 가장 대표적인 수익 계정에 속한다. 즉, 수익이 5천 원 증가한 셈이므로 대변에 기입한다.
고객이 본인 계좌를 덜렁 들고 와서 뭔가를 처리하는 행위는 위와 같이 아주 간단하게 분개할 수 있는 케이스에 속한다. 하지만, 계정과목이 여러 개 개입하기 시작하면 슬슬 문제가 간단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Case 3.
키위은행 모 고객이 전세방을 옮긴다면서 구 집주인과 같이 은행을 찾았다.
원래 살던 대출 보증금 1억 5천짜리 전세방은
집주인의 키위은행 계좌에 출금해서 상환하고,
새로운 전세방 보증금 2억짜리 집은 새롭게 전세대출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전세 보증금 담보 대출은 보증금의 80%까지만 대출이 가능한지라,
1억 6천이 한도라는 말에, 남은 3천만 원은 신용 대출을 받고
남은 1천만 원은 본인 계좌에서 출금하여
새 집주인의 계좌에 입금하기로 했다.
근데 맙소사, 새 집주인은 키위은행 고객이 아니고 멜론은행 고객이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타행 송금 수수료나 분할 상환 납부이자 따위의 귀찮은 금액 계산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 복잡해 보이지만, 꽤 자주 발생하는 케이스의 거래 유형이다.
차변
은행 입장에서, 구 전세방의 집주인에게 지급해야 할 예금 1억 5천만 원(채무)이 있었는데, 보증금 상환이라는 명목으로 출금하게 되면서 구 집주인에게 지고 있던 1억 5천만 원어치 부채는 감소한다. 따라서 차변에 예금출금에 해당하는 1억 5천만 원을 적는다.
그리고 새로운 전세방을 계약하면서, 1억 6천만 원은 전세보증금 대출로 실행하고, 3천만 원은 신용대출로 실행하게 된다. 이는, 세입자에게 도합 1억 9천만 원의 받을 돈(채권)이 증가했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은행 입장에서, 고객에게 빌려준 돈(대출금)은 대표적인 채권이며, 채권은 자산 계정에 속한다. 따라서 1억 6천만 원 + 3천만 원의 채권 증가를 차변에 기입한다.
마지막으로, 새 전세방의 총 보증금 2억 원 중에서 1천만 원을 세입자의 본인 계좌에서 출납하므로 세입자에게 갚아야 할 1천만 원의 부채가 감소한다. 이 역시 차변에 기입한다.
대변
은행 입장에서, 고객에게 빌려준 돈(대출금)은 대표적인 채권이며, 채권은 자산 계정에 속한다. 구 전세방의 집주인에게서 받을 돈 1억 5천만 원(채권)이 있었는데, 이를 실제로 상환받게 되면서 1억 5천만 원에 해당하는 채권은 감소하였으므로 대변에 기입한다.
은행과 은행 간 자금이 움직일 때는 채권과 채무로 움직인다. 돈을 주는 은행은 채무가 발생하고, 돈을 받는 은행은 채권이 발생한다. 키위은행은 멜론은행의 새 집주인 계좌에 돈을 입금해야 하므로, 채무가 발생하는 은행에 속한다. 따라서 멜론은행에게 주어야 할 돈 2억 원의 부채가 발생하였으므로, 대변에 기입한다.
위와 같이 분개장을 기입한 뒤, 차변과 대변의 합이 3억 5천만 원, 동일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면 얼추 맞겠구나, 생각하면 된다.
황 대리가 지난 5년 간 해 왔던 일들이 바로 이런 식으로 작성된 분개장을 보고 자금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일이었다.
자금의 유형을 자산과 부채, 자본과 수익, 비용으로 구분하고
용도와 성격에 맞는 계정 과목을 찾아낸 뒤,
각각의 증감에 따라 차변과 대변에 기입한다.
차변의 금액과 대변의 금액을 비교하고 검증하여
총계정원장에 반영하고 잔액을 기록한다.
그렇다면, 황 대리에게 있어서 자금의 흐름보다 중요한 사람 간의 관계는 어디에 적히고 있었을까?
사람이 자산이라면, 사랑은 차변에 적나요?
아쉽게도 은행을 관통하는 자금의 흐름은 대차평균의 원리를 준수하지만, 사람 간의 관계는 그렇기 힘든 법이다. 채권이 발생하면 채무가 따라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 하지만 투입된 사랑이 항상 반대편에 기입되지는 않는다는 걸 간과한 것이, 그가 겪는 아픔의 원인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