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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스망 Nov 10. 2020

왜 죽으면 안 되는 거야(고통에서 발견하는 삶의 의미)

[처음 보는 메커니즘]16. 인간 경험의 길  ③

(이전 글 : 인간 경험의 길 ① 콜럼버스의 꿈)

(이전 글 : 인간 경험의 길 ② 기지 않고 걷는 아기(성숙의 조건))


■ 인생에서 각자가 이고 지고 가야 할 무거운 벽돌들   


현재 천왕성 주기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일생을 대략 80년 정도라고 가정하면, 난 벌써 인생의 전반전 경기를 모두 마쳤다. 전반전 경기를 치르면서 인생에 대한 나의 인상은  '녹록지 않다' '힘겹다' '고되다' '버겁다'와 같은 것들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불혹(不惑)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면, 그래도 어떤 성취를 한 커다란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되어 보니 누가 마흔을 가리켜 미혹함이 없다는 불혹(不惑)이라고 했는지 전혀 동의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나의 모습은 여전히 이리저리 흔들흔들거리는 두려움 많은 어린애 같다.     


매일 아침마다 벽돌을 등에 지고 나르는 인부들이 있는 공사 현장을 지나치게 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가 이고 지고 가야 할 무거운 벽돌들이 수백, 수천 장씩 배당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부터 나의 취향이나 선택과 전혀 상관없이 여러 가지 버거운 책임과 헌신의 더미에 놓이게 되는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 조차 모르는 채로 말이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때때로 우리는 그 더미들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때로는 숨을 쉬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서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실로 비참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 왜 죽으면 안 되는 거야   

나에게도 삶이 '고통' 자체로만 가득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 당시엔 그 고통에 대해 달리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통이란 무엇인지? 왜 고통을 느껴야 하는지?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에 대한 온갖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책을 쥐 잡듯이 뒤적이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채식주의자」라는 책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세계 3대 문학상 중의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해 유명세를 탔고 그 덕분에 나와도 인연이 됐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두 번 다시는 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토리의 대부분은 메마르고 폭력적인 일상 그리고 웃음기라곤 모두 증발해 버리고 남아있는 건 최선을 다한 인내뿐인, 그러한 숨 막히는 일상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지금은 누군가가  채식주의자 그 책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절대 보지 말라고 단칼에 잘라 말한다. 문학적인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나의 무식함으로 인해 잘 가늠이 되지 않지만, 어쨌든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 보다 더 우울한 소설은 보지 못할 것이라고 느낄 정도로, 책을 여는 순간부터 내 존재가 어둠의 바닥 끝까지 질질 끌려가는 기분이 드는 너무나도 어둡고, 암울하고, 우울한 그런 내용이었다.  


이렇게 스토리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이미 정신적으로 어둠의 바닥상태였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책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갔다.


책 속의 주인공 영혜는 항상 이런 생각을 품으며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그리고 묻는다. '왜 죽으면 안 되는 거야?'


몸속의 피까지 말라버릴 것 같은 영혜는 그 몸을 겨우 추스르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사실이었다. 이제까지 그래 왔듯이 언제까지나 살아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어떤 다른 길도 없었다.'


그렇게 주인공 영혜는 삶에서 살아내는 법, 견뎌내는 법을 익혀간다.  


■ 왜 살아야 하는 거야   


주인공 영혜가 '왜 죽으면 안 되는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 것처럼, 나도 나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 있었다.  


'왜 살아야 하는 거야?' 


그때 내가 내린 답은 이것이었다. 


'죽지 못하니깐' 


그때 새삼 깨달았다. 죽음도 내 맘대로 할 수 없구나. 죽을 수 있는 용기도 없는 소심한 나는, 그냥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거구나. 


마치 영혜가 피가 말라 가는 고통 속에서도 이 삶을 살아나가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게 되면서 삶을 견뎌내듯이, 나도 이 순간을 견뎌내는 방법 외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게 됐다.    


'이 모든 것에 의미가 있을 거야' '이 고통이 다 지나가고 나면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테니 견뎌보자'     


■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형체(fomr)의 메커니즘을 체험하기 위한 것   


휴먼 디자인은 내가 고통 속에서 찾고자 했던 삶의 의미를 그동안 우리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형체(form)라 관점에서 설명한다. 즉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몸, 형체(form)의 메커니즘을 체험하고 바라보기 위한 것이며, 우리가 이 형체의 아름다움을 수용하지 전까지는 인생의 아름다움, 진짜 가치 있는 경험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승객(passenger)이 속한 곳이 바로 몸(form)이고, 승객은 몸을 통해서만 이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일상의 삶이 너무 어렵고 버겁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깊은 헌신과 인내를 통해서 이 어려움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 우리의 고통은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어깨에 짊어지고 갈 벽돌의 무게가 얼마나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무게가 세월이 갈수록 늘어날는지 아니면 줄어들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는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우리는 어쩌면 아무런 보상도 없이 평생토록 그 무게를 견딘 대가로 얻은 수많은 흉터를 안고 살아가야 할런지도 모른다. 


과거에 힘들 때마다 메모를 해두며 자주 쳐다봤던 글귀가 있다. 이 글귀의 마지막에 나오는 '선물'이라는 부분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고통은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이끈다. 물속에서 용기를 내서 대담하게 더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면 놀라운 세상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익사할까 봐 무서워한다. 겁내지 말고 이 순간에 충실하면 우주는 당신에게 적절한 선물을 보여줄 것이다.'


과거에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던 이 글귀는 지금 이 순간의 내게 이렇게 다시 되묻는다.  


이 삶을 신뢰하는가? 이 경험을 신뢰하는가? 아무런 기대 없이 이 형체(form)가 가는 길에 기꺼이 네(yes)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일 운이 엄청 좋은 행운아라면, 우리가 몸이 가는 일에 완전히 항복(surrender)하고, 용기를 내서 대담하게 더 깊은 물속으로 들어간다면, 어쩌면 우리의 온몸에 아로새겨진 삶의 흉터 속에서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 그래도 내 삶은 괜찮았구나'


'내 삶은 의미가 있었구나' 


'너를 이번 삶에서 만난 것이 나의 기쁨이었구나'


'나는 이 경험을 통해서 성장했구나'  


(다음 글 : 인간 경험의 길 ④ 원래 삶은 쉽지 않아(인간 발전의 본질))

(다음 글 : 인간 경험의 길 ⑤ 마음의 창틀을 바꾸다(진보의 첫걸음))

(다음 글 : 인간 경험의 길 ⑥ 코로나 한복판에서 맞는 연말연시(멈춤을 통해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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