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직한연필 Jun 14. 2024

일기장을 펼치며(공시생 일기)

2016. 1월 일기  중에서

<봄노래>

                                                                     - 박제가


그넷줄 능청 하늘을 차자

바람 안은 두 소매 활등 같구나

높이만 오르려다 치맛자락 벌어져

수놓은 버선목이 그만 드러났네



<수양버들>

                                                                     - 김영일


수양버들

봄바람에

머리 빗는다.


언니 생각난다.



시를 읽으니 참 행복하다.

2016. 1. 26.


시집을 빌려왔다.

오랜만에 시를 읽으니

웃음이 나다가 눈물이 핑 돌다가

이내 숙연해지기도 하니,

시란 참 묘한 매력이 있다.


며칠간 지독하게도 추웠다.

어제는 마당에 널어놓은 수건 몇 장이 탱탱 얼어

고드름 같던 빨래가

오늘은 감쪽같이 다시 녹았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는데, 새들이 나무 사이를 오가며 분주하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새소리에 벌써 봄이 오는가...

가만가만, 창밖을 내다본다.


나무 위에 흰 눈 소복이 덮여

따뜻하겠다.

그 무언가가 눈 속에서

또 다른 눈을 안고 누워 있다.  


2016. 1. 31.


남들은 집으로 돌어갈 때

나는 집에서 나옵니다.

도서관으로 가야 하는데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

이제 그만하자고 스스로에게

위안 아닌 위안을 합니다.

수험 생활이 길어질수록

오답 노트가 채워집니다.

그렇다면......

다시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오답은 나의 보물이다!



오랜만에 먼지 쌓인 일기장을 꺼내 가만히 읽어 본다.

일기를 읽는 동안

애 둘을 키우며,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밤에는 공부를 하며 그야말로 주경야독, 뒤늦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치열하게 살아가던 30대 초반의 나를 바라본다. 

읽다 보니 그때의 내가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한다. 앤은 시련을 딛고 성실하고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했다.

나 역시 앤처럼 꿋꿋하고 당차게 삶을 향해 나아가길 바랐고,

더불어 길버트 같은 남자도 만나고 싶었다.



정말로 행복한 나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날이 아니라
진주알들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인 것 같아요.

                                                                                                                  by 앤



오랜만에 일기를 읽으면서

오래전 꿰지 못했던 진주알들이

하나씩 하나씩 꿰어진다.







작가의 이전글 공무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