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네 덕분에 지나올 수 있었던 시간
어쩌면 태생적으로 모자관계라는 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엄마인 <여자>가 아들인 <남자>를 이해해보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 적절한 지점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관계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채우려 해도 모자란 관계. 그 모자관계로 만난 우리는 성별부터 성향까지 모든 것이 너무 달랐다. 당연히 그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자란 그런 것이니까.
문제는 내 아이가 주변의 모든 아이,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유별난 녀석이었다는 데에 있다. 아들엄마치고 자기자식이 별나다고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 내 아들은 본인의 엄마는 물론이고 다른 엄마들로부터도 인정받은 순도 백프로의 트러블메이커.
아이는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다. 원래 아기란 그렇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킨다. 발발거리고 돌아다니는 작은 고망쥐들 사이에서 아이는 늘 돋보였다. 고망쥐라기보다는 커다란 래밍에 가까웠다. 모든 아이들이 흔히 일으키는 문제들 따윈 이미 15개월쯤에 섭렵했을 뿐더러 아무도,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말썽을 너무나 태연한 얼굴로 평온한 공기 속에 저질러놓았다.
아이가 두돌쯤 되었을 땐 더 이상 저지레같은 귀여운 말로 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행패. 행패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손발이 컸고, 항상 또래아이들보다 압도적으로 컸던 아이는 말썽에서도 스케일이 남달랐다.
이 아이가 사람들 사이에 어울리기 시작하고 학교에 들어가기까지, 만 일곱살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을 지나와야 했는지.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터졌다기보다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하나씩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었다. 항상 불안했다. 늘 마음을 졸였다. 한번도 아이를 마음놓고 어디에 내놓은 적이 없었다. 마음을 놓았다간 즉시 사단이 났다.
일상이 급속도로 우울해졌다. 이 모든 우울함과 괴로움이 아이로부터 온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니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평온한 일상의 최대적이 내 속으로 낳은 내 아들이라니. 그렇기에 온전히 미워할 수도 없는 내 자식. 나 같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사랑(그것을 모성애라고 지칭하기엔 엄마답게 사랑을 쏟아본 적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와 동시에 내게 주어진 사랑이었다)과 너무나 인간적이고 이기적인 미움 사이에서 아이를 놓지도 못하고 안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화와 짜증만 늘어갔다. 우울증이 올 것 같았다.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자살에 대한 생각들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올랐다.
어느 날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언제부터 우울증이 왔던가를 되돌아보니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게 아니라 서서히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이렇게 되어있었다는 말. 몸을 일으키는 것도, 씻는 것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는 말. 그 말을 듣고 알았다. 지금 나에게는 우울증이 올 수 없다는 걸. 내가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 모두가 아이 덕분이라는 걸.
한없이 우울하게 가라앉다가도 아이 때문에 집 밖으로 나서고, 몸을 일으켜 저녁을 짓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했던 엄마로서의 하루하루들. 그 하루하루가 사실은 아이가 아닌 나를 지탱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 때문에 우울증이 올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이 덕분에 우울증이 올 수가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모자란 엄마를 모자란 아들이 힘껏 끌어주고 있었다는 걸 아이가 너무 많이 커서야 알았다. 지금도 아기지만 더 아기였을 때. 걷기 시작했을 때, 말썽의 무게보다 아이의 존재에 마음을 쏟았더라면 우리가 그렇게 괴롭지 않았을텐데.
한낱 중생에게 깨달음과 행복이 늘 동시에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여전히 부족하고 나는 그보다 더 모자란 엄마다. 아이와 나는 여전히 쉽지 않은 시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길을 더 이상 끝없는 터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간중간 터널이 나오겠지만 짧은 터널을 지나면 또 밝은 햇살과 시원한 공기와 다정한 흙길이 우리를 맞아주는 길고 긴 소풍길.
터널에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 두렵다. 지나온 그 어둠에 다시 잠식되어 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앞을 보고 손을 잡고 빛을 향해 나아가면 두려움보다 큰 설레임이 나도 모르는 새 내 마음에 들어차 있다. 우리는 모자라다. 그래서 서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