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살던 동네에서 첫째를 낳고 키울 때 나는 또래아이엄마들과 어울린 적이 없었다. 놀이터에 나가서도 아이 뒤를 졸졸 쫓아다니기 바빴지 누구와 말을 섞고 수다를 떨 정신도 숫기도 없었다. 어쩌다 아이가 나 없이 잘 놀기라도 하면 오히려 뭘 해야 할지 몰라 내가 아이 옷자락을 붙들고 아이를 따라다녔다. 동네엄마들이랑 실속없이 어울려서 떠들다보면 수다 끝에 맘 상하고 피곤하기만 하지, 혼자가 편해. 마치 자의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계속해서 최면을 걸다보니 진짜로 내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믿게 됐다.
첫째가 다섯살, 둘째가 세살 되던 해에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왔고 첫째와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엄마들을 사귀게 되었다. 같은 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들끼리는 아무래도 통하는 게 많다. 해당 유치원의 교육이념에 공감하는 엄마들이 모였기 때문인지 대화의 첫 물꼬부터 '결'이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내가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줄 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전 동네에서의 내가 사실은 되게 외로웠구나, 뒤늦게 안쓰러워졌을 정도로 나는 새로운 동네에서 만난 언니들과의 만남을 열렬히 좋아했다.
가장 나이가 어린 나를 언니들은 마냥 귀여워해주었고 언니들을 만나면 잔뜩 쪼그라들어있던 마음이 펴지는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매일같이 어울리다 보니 매일같이 크고 작은 문제상황들이 발생했고 그 상황의 중심엔 대부분 내 아이가 있었다. 잠깐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라치면 누군가 울고 있었고 그 울음의 시작을 쫓다보면 친구들의 시선은 아이에게로 향했다. 잘 놀다가도 아이가 끼면 이내 큰소리가 났고, 그러다보니 친구들은 아이를 경계했다. 그게 또 약이 올라서 아이는 더 어깃장을 놓고 그럴수록 친구들은 아이를 경계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아이를 달래보기도 하고, 혼내보기도 하고, 상대아이와 엄마에게도 용서를 구했지만 밤에 자려고 누우면 낮의 일이 떠올랐다. 이러다 아이가 동네친구들 사이에서 꺼리는 존재가 되어버리면 어쩌지. 마음이 괴로웠다.
아이와 친구들의 관계와는 별개로 언니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몇 번이고 괜찮다고,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잘 하고 있다고, 나를 다독여주었다. 언니들이 좋은 사람일 때, 우리가 아직 서로에게 좋은 사람일 때, 잠깐 쉼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를 길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자꾸만 반복되는 상황을 끊어줄 필요가 있었다.
양해를 구했다. 당분간 아이와 나는 여럿이 함께 노는 자리는 빠지겠다고, 절대 마음이 상해서가 아니라 아직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언니들은 내 말을 곡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었다. 언제라도 오고 싶으면 오라고 매번 자리가 있을 때마다 알려주기까지 했다. 나는 초대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면서도 좀처럼 응하지 않았다.
아이가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느낄 때마다, 기대를 갖고서 한번씩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만들어주곤 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 대체로 유쾌하지 않게 끝나는 날이 많았다. 아직은 이른가보다. 엄마인 내가 낙심해버릴 때 오히려 언니들이 아이의 변화된 모습을 알아봐주고 격려해주었다.
여섯살. 일곱살. 여덟살. 우리에겐 매년 사건사고가 있었다. 매 고비마다 우리를 지지해주고 함께 울어준 사람들은 아이가 가장 불안하던 시기의 모습을 봤던 동네언니들이었다. 아주 망아지적의 아이가 어땠는지 아는 사람들. 그 아이가 노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봐 온 사람들. 아이의 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고 있을 때 마카롱을 사들고 나를 찾아와 준 사람도, 놀이공원 티켓을 건네며 하루 즐겁게 놀고 와서 잊어버리라고 말해준 사람도, 모두 동네언니들이었다.
언니들이 아니었어도 시간은 흘렀을거고, 나는 견뎠을테고, 아이는 아홉살이 되었겠지만 과연 지금같이 단단하고 따뜻한 아홉살로 자랐을지, 나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
2020년 상반기 우리 동네 2학년 남자애들의 최대관심사는 딱지 아니면 곤충이다. 딱지판에서는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2학년 코흘리개부터 6학년 형아들, 심지어 고등학생들까지 끼어서 딱지를 쳐대니 이건 뭐 무법천지가 따로 없다. 꼭 한두놈은 싸우고 그 중 한놈은 딱지를 빼앗겼다며 울면서 간다. 다행히도 내 아들은 곤충을 택했다. 사마귀를 잡겠답시고 목장갑을 끼고 동네놀이터에 나온 아이를 C는 유심히 보았고 그날부터 둘은 목이 빠져라 서로를 기다리는 곤충잡기 메이트가 되었다.
다섯살부터 여덟살까지 쭉 서로를 따분해하던 혹은 경계하던 아이들이 아홉살이 되어 곤충으로 대동단결하는 걸 보면. 남자애들이라 그런 것인지. 애들은 원래 저런 것인지.
아니,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는 달라졌다. 달라진 아이를 달리 봐줄 수 있을만큼 C도 많이 자랐다.
필체는 거칠지만 내 메이트에겐 따뜻한 아이의 답장
C에게,
안녕, 편지가 좀 늦게 왔지? 오늘 저녁에 밥 먹고 그네 놀이터로 와 봐. 그리고 나무진이 있는 나무를 살펴보자. 거기에 곤충들이 많이 모여 있을거야. 맘에 드는 곤충을 잡아보자. 굿바이~
2020년 6월 20일 토요일 000이
아이를 이만큼이나 달라지게 하는 일은 우리 가족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때론 가족이라서 서로 위로가 되지 못하는 때도 많았다. 세상에 우리를 위하는 사람들은 우리 뿐인 것 같았으니까.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ADHD아이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ADHD아이들은 모두가 알고 있기에 굳이 말하지 않는, 암묵적인 룰을 잘 모르기 때문에 눈총을 받기 일쑤다. 마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는 더 큰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마을구성원들이 아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때 아이에게는 경험이 허락되는 것이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 좋은 시기에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었다. 우리는 혼자 크지 않았다. 우리를 받아들여준 동네친구들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언젠가는 우리가 받은만큼, 그 이상의 팔을 벌려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