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아이에게 동네친구란(1)

by 날필

ADHD아동의 문제성향은 집 밖에서 두드러진다. 집 안에서의 우리는 대체로 평화롭다. 내가 아이를 알고, 아이가 나를 알기에 상대의 반응은 예측가능한 범위 내에 있으며 간혹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튀더라도 서로간의 단단한 신뢰를 기반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의지와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허나 집 밖에는 낯선 사람과 돌발상황들이 곳곳에 지뢰처럼 놓여있다. 아이와 함께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상황들은 모두 집 밖에서 일어났다.


집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단 하나의 사건만으로, 찰나의 모습만으로 단번에 우리의 인상을 결정짓고 쉽게 오해하게 마련이다. 물론 오해가 아닌 경우도 많다. 아이는 충동적인 언행과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좋아지는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지만 그 속도가 너무 더뎌 엄마인 나만 겨우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의 몸집이 커져갈수록 아이가 좋아지는 속도보다 주변이 싸늘하게 식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럼에도 아이는 학교에 들어갔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더 이상 우리의 바운더리 안에만 머물 수는 없었다. 빠른 개선을 위해서는 결국 경험을 데이터베이스로 삼아 다른 비슷한 상황에 적용하고,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침으로써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해서 ADHD 아이들의 사회화를 위해서는 '실전경험'이 중요한데 아무나 붙잡고 실전경험의 상대가 되어주기를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형제자매도 도움이 되겠지만 형제와 친구는 엄연히 다르다. 형제란 세상에서 나를 가장 함부로 대하는 태생적 라이벌이다. 날것 그대로를 꺼내보이면서도 서로를 미워할 수 없는 관계가 형제라면, 친구는 서로를 좋아하지만 선을 지켜야만 유지되는 관계다. 아이들은 친구와 어울리면서 '선'을 알아간다. 친구와의 실전경험을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친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기에 매일 볼 수 있는 동네친구의 존재는 매우 소중하다.




얼마전. 아이가 친구에게서 편지를 받아왔다.

20200620_213129.jpg 글씨체마저 단정한 우리동네 젠틀보이, C
00이에게

00아 안녕? 나 C야.
저번에 놀이터에서 같이 놀았지. 그때 정말 고마웠어.
코로나 끝나면 우리 같이 많이 놀자.
그럼 안녕. 잘 지내.

2020년 6월19일 C가


이 편지의 발신인, C로 말할 것 같으면 다섯살 때부터 인연을 맺은 유치원 동기로 작년까지만 해도 둘은 상성이 맞지 않았다. C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맞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넌더리가 났을 것이다. 잘 놀다가도 우리 아이만 끼었다 하면 큰 소리가 나고 눈물바람으로 자리가 끝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C는 누구라도 한번 보면 호감을 느낄 정도로 행동이 단정하고 말씨가 예쁜 아이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C를 좋아했다. 다정하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우리 동네 젠틀보이,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는 C의 캐릭터를 아이는 '재미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C 역시 마찬가지로 아이가 주변에 나타나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아이를 경계했다. 아이와 다투다가 머리로 들이받힌 적도 있으니 왜 안 그랬겠는가. 엄마들끼리 잘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었으면 두 아이의 연은 진작 끊겼을 게다.


마침 C와의 일화를 적나라하게 기록한 4년 전 포스팅이 있어 일부를 첨부한다.




(전략)

별안간 짱이가 장난감찻길을 무너뜨렸고 놀란 친구가 짱이에게 소리를 쳤고 그대로 짱이는 친구 C를 향해 돌진. 순간 내 마음에서도 뭔가가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듯 했다.


아. 안되는구나. 이 아이는 안되는구나. 앞으로도 계속 자기 행동으로 인해 미움받겠구나. 그동안 너무 노력했는데. 짱이와 나, 짱이아빠는 물론이고 어린 쭈니까지 한팀이 되어 그렇게 연습하고 애썼는데. 다 소용없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들이 그 짧은 순간에 확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나는 아이보다 먼저 감정을 추스러야 한다.


"짱아 사람은 사람을 때리면 안되는거야"

"응"

"짱아, 짱이도 화가 날 수 있어. 짱이도 화를 낼 수 있어.

그렇지만 사람은 절대로 때리면 안돼. 때린 건 짱이가 정말 잘못한거야."

"응"


C에게 사과하라고 보냈더니 C의 정수리를 보며 미안하단다.

마음이 풀리지 않은 C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니 다시 달려드는 짱이.

여기서 2차 카오스가 올 뻔 했지만 다시 정신을 붙잡았다.

붙잡는다고 붙잡았으나 이성 한 가닥이 풀려 화났을 때의 목소리와 표정이 그대로 나왔다.


"짱아 집에 가자.

엄마는 이제 친구집 오기 전에 두번 세번 더 생각할거야.

오늘 짱이가 참지 못했기 때문에 우린 그만 노는거야.

집에 가서 다시 얘기할거야. 집에 가."


난리가 났다. 쉴 새 없이 눈물로 호소한다.


가만히 들어보니


엄마 잘못했어요.

더 놀고 싶어요 제발요.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면 안돼요? 제발요.


계속 엄마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 아. 얘가 뭔가 잘못 알고 있구나.

내가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아서 아이가 불안해하는구나.

"짱아. 짱아 엄마 얘기 들어봐"

"엄마는 언제든지 짱이를 용서해. 엄마는 짱이 마음도 알아. 엄마는 짱이를 이해해."

"그치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아. 짱이가 행동하는대로 짱이를 보는거야.

짱이가 친구를 때리면 짱이는 친구한테 때리는 사람이 되는거야."


"엄마는 언제든지 짱이를 용서해"

라는 말 이후부터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고 아이의 반응이 조금씩 수그러드는 게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신발을 벗고 앉아 다시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1. 싸움의 시작은 짱이

2. C가 놀던 장난감을 짱이가 망가뜨렸다

3. C가 화를 내서 짱이도 속상했을 수 있다

4. 짱이도 화가 나면 화를 낼 수 있다

5. C는 화를 냈지 짱이를 때리지는 않았다

6. 화가 난다고 다른 사람을 때리는 건 절대 안 된다

(후략)




그로부터 5일이 경과한 또 다른 날의 포스팅. 역시 C와 함께 놀았던 날의 일기다.


(전략)

용서하는 것도 용서받는 것도 어려운 날이었다.

분노와 눈물의 하원을 마치고 유치원 놀이터에서의 규칙을 정했다.


1. 공룡놀이 하지 않기(바닥을 기어다니는 모든 놀이 포함)

2. 길 막으며 방해하지 않기

3. 미운말 하지 않기

4. 꽥 소리지르지 않기

5. 친구 밀거나 때리지 않기


즉, 지금까지는 이래왔다는 것이다.


사람답게 바닥에 발을 딛고 걸으면서,

차례차례 순서를 지키면서,

화가 나도 충동적인 언행은 자제하면서,

함께 논다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가.


지금까지 지켜봐왔던 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아직 다섯살이라 그렇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제 여섯살까지 보름밖에 남지 않아서일까,

오늘은 그 모습을 지켜보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진심으로 괴로웠다.


물론 나는 잘 안다.

내 속으로 낳아 기른 내 자식, 아직은 내 품 안의 자식, 나만은 그 속을 이해한다.


짜증과 버럭이 일상인 엄마를 만나

자신도 아직 어릴 때 더 어린 동생을 맞고

원치 않는 상황 속에 놓여진 날들이 많았다.


(중략)

늘어난 눈치와 갈 곳 없는 분노가

오늘, 지금, 엄한 데서 터져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나만은

너를 이해한다,

언제까지고 끌어안아 달래주고 싶지만.


어떤 엄마 밑에 사연 없는 아이가 있을까.

모든 아이는 나는 순간부터

엄마에겐 눈물이고 웃음이고

가슴저미는 사랑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저민다.


짱이는 내게 귀하고 중한 아이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귀중한 아이는 아니다.

모든 아이는 다 귀하다.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 아이 친구도 행복하고,

내 아이의 선생님도 행복하고,

내 아이 친구의 부모도 행복해야 한다는데.


진정 그렇다.


"짱이도 억울한 게 있을거야.

짱이가 속상하면 엄마도 속상해."

말이 끝나자마자 눈시울을 붉히는

여리고 거친 아들아.


여리거든 거칠기나 말고

거칠거든 여리기나 말지.

타고난 심성을 어쩌겠니.

엄마도 책임이 있으니

거친 행동은 다듬어가고

여린 마음은 단련해보자.

나는 네가 어울려 행복했으면 좋겠다.


힘껏 사랑하고

양껏 사랑받길 바란다.

나에게서만 아니라 너를 아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동네친구 C는 이 모든 상황들에 함께 있었다.

아이의 문제성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다섯살 때부터 아이를 보아왔고, 어울려 놀 때마다 아이로 인한 피해를 받아왔고, 그로 인해 불과 작년까지도 아이를 경계해왔던 C.

무엇이 C의 마음을 움직여 기꺼이 아이에게 편지를 쓰게 했을까?


** ADHD아이에게 동네친구란(2)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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