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인사를 가르친 이유
"하라야, 넌 어쩜 그렇게 인사를 잘하니?"
매일 아침 등교길에서 만나는 동네엄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눈으로 쓰다듬는다. 아이는 머쓱해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겅중겅중 앞장서가다가 뒤이어 만난 등교길 도우미 할머니께도 넙죽 배꼽인사를 드린다. 배꼽에 손을 대고 고개를 숙이며 "굿모닝!"을 외치는 아이를 보는 할머니(도우미 할머니는 "굿모닝!"이라고 인사해드리면 더 좋아하신다)와 나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아이가 처음부터 이렇게 인사를 잘했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 아이는 내게 물어왔다.
"엄마, 저 사람은 인사 안 하는데 왜 나만 인사해야 돼?"
아이는 사회성이 부족했다. 사회성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회'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좋아하니 번번이 문제가 생겼다. 아이는 사람이 둘 이상 모였다하면 생겨나는 '사회'와 '사회규범'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본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니 당연히 사회도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보통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또래집단으로 녹아들며 사회를 배운다. 친구들과의 관계, 친구엄마들과의 관계를 통해 또래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른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또 다른 친구들은 자기 엄마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저 놀이에만 골몰한 것처럼 보여도 그 시기에 필요한 것들을 습득하며 사회화되어간다.
모두가 쉽게 열고 들어가는 사회의 문이 아이에게는 유독 거대한 성문같았다. 다섯살이 넘어가면서 아이는 부쩍 친구를 원했지만 친구들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남다른 체격과 목청, 맥락에 맞지 않는 말, 돌발행동 등 아이에게서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친구들은 아이를 피해다니기 일쑤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또래집단에서만 아이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는 친가와 외가, 양쪽 집안의 첫 손주였다. 아이와 피가 섞인 어른들은 모두 아이에게 관대했다. 아이가 무슨 짓을 해도 잠깐 당황할지언정 이내 허허 웃어버리곤 했다. 그러나 바깥에서 만난 피가 섞이지 않은 어른들은 아이에게 쉽게 웃어주지 않았다. 대놓고 얼굴을 찌뿌리는 어른들도 더러 있었다. 어른들이 웃지 않으니 이번엔 아이가 당황했다. 당황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고 화를 주체 못하고 날뛰는 아이를 본 어른들은 더 엄한 표정을 짓거나 고개를 내젓거나 아이의 엄마를 쏘아보거나 했다.
아이에게 사회는 전쟁터였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에 부응하지 못했고 사회 역시 아이가 기대하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굳게 닫힌 성문 앞에서 아이는 자주 화를 냈고 종종 눈물을 흘렸다. 그즈음부터 나는 사람들을 피해다녔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했다.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문제가 된다면 만나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나야 원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던 사람이라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는 아이였다. 아이는 끊임없이 바깥세상과 사람을 갈구했다. 언제까지나 아이를 내보이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언젠가는 엄마 없이 아이 혼자 바깥세상으로 나가야만 하는 시간이 올 것이기에.
나는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약속같은 건 잡지 않았다. 특정한 누군가와 만나 밀도있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깊은 만남은 피하되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짧게 교류했다. 가장 짧고 손쉬운 만남, 인사.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걸으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웃집 아저씨, 유치원 학부모, 아랫집 아이, 이외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특히 우리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주시는 분들, 경비아저씨, 청소부 아주머니, 안내데스크 직원분, 가게 점원분들께 가장 신경써서 인사를 드렸다. 늘 "안녕하세요"로 시작해서 "고맙습니다"로 끝나는 인삿말을 건넸다.
아이에게 따로 인사를 종용하지는 않았다. 가끔 "엄마가 인사를 할 땐 너도 함께 하는거야"라고 귀뜸을 하긴 했지만 아이가 따라하지 않아도 나무라지 않았다. 인사를 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웃음과 반응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인사도 하면 할수록 능숙해진다. 나의 인삿말은 점점 길어졌다.
"어디 좋은 데 가시나봐요. 오늘따라 화사해 보이세요."
"요즘 왜 이리 안 보이나 궁금하던 참인데! 여행 갔다오셨어요?"
"안녕, 태권도학원 가는구나? 우와 벌써 빨간띠야?"
매일 건네는 인사는 그와 나 사이에 결코 가볍지 않은 유대감을 만들었고 그 위에 건네진 안부인사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많은 사람들과 기분 좋게 대화가 이어졌다.
"안녕하세요."짧은 다섯 글자로 이루어진 한마디 말이 이렇게 많은 관계와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나 또한 놀랐다. 아이도 점점 나를 따라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제대로 숙이지 않을 때도 있었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아이는 인사를 했다. 들릴락말락한 아이의 인사를 기민하게 캐치해서 꼭 화답해주는 어른들도 많았지만 아이가 인사를 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치는 어른들도 많았다.
그날따라 유난히 모르고 지나치는 어른들이 더 많았던가 보다.
"엄마, 저 사람은 인사 안 하는데 왜 나만 인사해야 돼?"
아이가 억울한 표정으로 내게 항변했다.
"아마 네가 인사를 했다는 걸 모르셨던 것 같아. 인사를 할 때 고개도 크게 숙이고, 목소리도 크게 내면 다른 사람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아닌데. 나 목소리도 크게 내고 고개도 숙였는데."
목소리도 크지 않았고 고개도 제대로 숙이지 않았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인사'가 '관계'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지, 인사의 바른 자세와 방법을 가르치고자 함이 아니니까. 자세가 바르니, 방법이 틀렸니 하며 아이와 입씨름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랬구나. 네가 속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하라야, 인사는 꼭 받는 사람을 위해서만 하는 게 아니야."
"그럼?"
"인사라는 건 오늘 하루동안 그 사람이 안녕하길 빌어주는 마음이야. '안녕'이라는 말은 나쁜 일 없이 편안한 하루를 보낸다는 뜻이거든. 그러니까 인사는 매일매일 건넬 수 있는 선물같은 거야."
선물이라는 말에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군가 네 인사를 모르고 지나치면 잠깐 속상할 수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아주 속상한 일만은 아니야. 그 사람이 선물을 받지 않고 가면 네가 건넨 선물은 그대로 네 것이 되는 거거든. 그 사람을 위해서 빌어준 마음이 하라한테 되돌아오는 거야."
아이는 아리송한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마음에서는 받아들여진 것인지, 그때부터 아이는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인사를 했다. 인사를 건네는 몸짓과 목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커져가더니 나중에는 아이의 인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갈래야 지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애가 왜 나에게 인사를 하나, 내가 아는 사람인가' 멈칫거리며 지나치던 사람들도 곧 우리에게 수줍게 화답해왔다.
그렇게 길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늘 주머니를 뒤져 아이에게 커피껌을 건네시던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인사를 드릴 때마다 꼭 커피껌 세개씩을 주시며 손으로 아이의 동생과 나를 가리키곤 했다. 셋이 나눠먹으라는 손짓이었다. 약간 거동이 불편하셨던 할아버지는 그럼에도 항상 혼자 천천히 시간을 들여가며 산책을 다니셨다. 그 산책길에 잠깐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곁들였을 할아버지의 주전부리를 받는 것이 늘 미안했지만 할아버지는 한사코 아이의 손에 커피껌을 쥐어주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기셨다.
어느 날은 막 수퍼에서 나오시던 할아버지께 아이가 인사를 드리자 방금 사서 뜯지도 않은 커피껌을 통째로 건네셨다. 놀란 내가 손사레를 치며 거절하자 괜찮다며 다시 커피껌을 사러 수퍼로 들어가시던 할아버지. 그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한참동안 할아버지를 못 뵈었다. 여러 계절이 지나가도록 통 뵐 수가 없어 늘 궁금했는데 할아버지와 같은 동에 살던 이웃으로부터 할아버지의 부고를 전해듣게 되었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아이와 나는 그 분을 "커피껌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커피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아이는 "참 좋은 할아버지였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동시에 나도 마음이 저릿해옴을 느꼈다. 함께 알던 사람을 함께 잃어버린 상실의 유대감으로 우리는 한동안 동네 구석구석에서 할아버지를 떠올렸고, 그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인사를 건네지 않았더라면, 관계를 맺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아픔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관계를 맺어봤기에 관계가 끊어지는 아픔도 경험해보았고, 지금의 관계를 소중히 여길 줄도 알게 되었다.
'인사 잘 하는 아이'가 되고부터 부쩍 사람들은 아이에게 부드러워졌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누구도 그렇게 인사를 하라고 시킨 적이 없는데 매번 배꼽에 손을 대고 꾸벅 인사를 하는 아이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의 인사를 받고 함박웃음을 짓는 것을 보면 내가 느끼는 흐뭇함이 꼭 내 자식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아이의 서툰 인사에 능숙하게 혹은 서툴게나마 화답해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렇게 입은 은혜를 갚는 기분으로 나는 다른 이들이 건네오는 인사, 특히 아이들의 인사를 허투루 지나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기문좋게 선물을 주고받고 나면 정말 오늘 하루가 '안녕'할 것만 같은 설렘으로 가득 찬다.
인사,
관계의 시작.
매일 건네는 선물.
사람들 마음에 걸려있는 빗장을 여는 가장 손쉬운 방법.
표지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