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2)

우리는 서로에게 나쁜 사람으로 남았다

by 날필

여느 때처럼 학교 정문에서 나는 아이의 하교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D의 엄마도 나와있었겠지만 그날은 D의 엄마로부터 소개받아 나도 알고 지내는 D의 친구엄마가 대신 D와 자신의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나란히 서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저 멀리 오르막길 끝에서 아이들이 줄지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앞줄에 아이가, 저만치에 D가 있었다. 신이 나서 내게로 달려온 아이는 뒤돌아 D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D는 아이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속도를 높여 내리막길을 달려오더니 별안간 아이의 얼굴을 자신의 신발주머니로 후려쳤다.


나와 아이, D를 마중나온 D의 친구엄마까지 모두가 일시에 굳었다. 정신을 차린 아이가 제 신발주머니로 똑같이 D를 후려치고 나서야 어른들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만해 그만해."

두 어른은 서로 각자의 아이를 몸으로 가리고 섰다.

"하라야 그만해. D야, 왜 하라 얼굴을 신발주머니로 때린거야?"
화를 꾹 억누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하라한테 먼저 물어보세요. 둘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맞은 아이에게 뭘 물어보라는 걸까?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D가 너를 때릴 정도로 화가 나 있는지 물어보기라도 하란 건가? 우리 아이가 필시 먼저 D를 화나게 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D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건가? D에게 맞은 게 내 아이가 아니라 다른 아이었어도 저런 식으로 말을 했을까?


그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이 다 지나갔다. 그러나 D의 엄마도 아닌 D친구엄마의 말을 곱씹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더 흥분한 아이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날뛰었다.

"D가 날 쳤어! 난 가만히 있었는데!! D는 없어져버려야 돼!!
울부짖으며 발버둥치는 아이의 팔과 다리를 진정시키기란 너무나 버거웠다. 고작 여덟살짜리가 발산하는 분노의 힘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여담이지만, 그 날 이후로 난 항상 점심을 잘 챙겨먹고 하교길에 나선다.)힘겹게 아이를 진정시켜가며 데리고 내려가는 동안 아이는 모두의 시선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진땀이 났다. 그런 와중에 D의 할머니는 우리를 막고 서서 말했던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친구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나는 대꾸할 여유도 의지도 잃은 채 묵묵히 아이를 데리고 그들의 시야에서 한시라도 빨리 사라지기 위해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하라야. 괜찮아. 엄마가 다 봤잖아. 엄마도 알아. D가 널 먼저 쳤고 그건 분명 잘못된 행동이야."

"D도 똑같이 맞아야 돼!!"
"하라야, 아까 너도 되받아쳤잖아. 이미 넌 D가 한 행동을 그대로 D에게 갚아줬잖아. 그래놓고선 계속 죽여버리겠다든가, 사라져버리라든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되는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D의 잘못보다 너의 잘못을 크게 보게 되는거야."

"왜!! 먼저 때린 건 D인데!! 먼저 때린 사람이 나쁜 거라고 엄마가 항상 그랬잖아!!"

"그러니까. 하라야. 그러니까 좀 진정해. 먼저 때린 건 D인데 네가 나쁜 사람으로 비춰질까봐 엄마는 너무 걱정돼. 집에 가서 엄마랑 얘기하자."


겨우 아이를 설득해가며 집으로 가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D의 엄마였다.

"D어머니, 제가 지금 너무 정신이 없어서요, 나중에 한숨 돌리고 연락을 드릴게요."
"어디세요? 제가 지금 갈게요. D가 사과를 해야할 것 같은데요, 저희가 갈게요."

"아니에요. 저희 아이도 되받아쳤고...저희도 마냥 사과받을 입장이 아니에요. 마음 가라앉히고 나중에 얘기해요."

"제가 갈게요. 집 앞 놀이터에서 만나요."

막무가내였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당장 아이의 마음을 달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기에 조금 짜증이 나려했다.


여전히 흥분상태인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올라가 물을 먹이고 얼굴을 닦였다.

"이제 좀 괜찮아?"

"아니."

"D가 사과하고 싶대. 놀이터에서 기다린대. 갈래?"

"응."


아이를 데리고 내려가니 D와 D의 엄마가 놀이터 벤치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시각이라 놀이터에 아무도 없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D의 엄마는 D에게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일러준 뒤에 D의 등을 가볍게 떠밀었다.


"하라야. 미안해."

"그래.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


원래 나의 방식대로라면 아이에게도 사과를 시켰어야 옳다. 나도 똑같이 널 치고 '죽여버리겠다'고 말해서 미안하다고. 그건 마땅히 아이가 사과해야 할 일이니까. 그 순간 왜 그리 그 말을 하기가 싫던지. 매번 D에게서 사과받아야 마땅한 순간에 사과받지 못하고 넘어간 기억들이 떠오르며 나는 입을 앙다물었다. D의 엄마 역시 기대하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잠시 뒷말을 더 기다리는 눈치였지만 나는 끝내 그 말을 아이에게 종용하지 않았다.


곧, D의 엄마는 아이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올린 채, 아이의 눈을 보며 말했다.

"하라야, 정말 미안해. 아까 D가 머릿속으로 게임생각을 하면서 내려오고 있었대. 그런데 밑에서 손을 흔드는 하라가 게임캐릭터처럼 보여서 물리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신발주머니를 휘둘렀대. D가 아직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해서 아줌마가 대신 사과하는 거야. 정말 미안해. 많이 아팠지."


여기까지 D를 데리고 사과하러 오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을지. 물론 궁극적으로는 자기 아이를 지키기 위함이겠지만, 그것을 위해 다른 아이의 마음을 다독이고 용서를 구하는 D엄마의 모습에 나는 감동했다. 그동안 아이 일로 매번 사과를 하기 바빴지 사과를 받아본 적은, 더군다나 이렇게 정성어린 사과를 받아본 적은 없었기에 감동은 배가 되었다.


"많이 놀라셨을텐데 이렇게 사과하러 와 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아이가 마음이 많이 풀린 것 같아요."

"아니에요. 아까는 저도 상황을 모르고 해서...나중에 전해들으니 사과를 해야겠더라구요."

"아무리 그래도 저희 애도 그렇게까지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할 건 아니었는데요, 어머님도 고생 많으셨네요."

어른들은 서둘러 의례적인 말들을 건네고 서로 멀어질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사실 뭐 저는 남자아이들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님이 이해를 해주시면 감사한 거구요, 아니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거구요."

그녀는 그 날, 마지막 말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일을 더 이상 문제삼을 생각이 없었고, 아이를 키우며 수많은 사건사고를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날의 일을 '있어서는 안 될 극악무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D의 엄마가 이 타이밍에 그 말을 꺼낼 줄이야. 여기까지 와 준 그녀의 정성에 잠시 누그러졌던 마음이 다시 복잡해졌다.


뒤돌아 가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D는 D의 엄마일 뿐, 나와 아이의 완전한 이해자가 될 수 없다. 나 역시 내 아이의 엄마일 뿐, D와 그 엄마를 다 알 수는 없다. 쌓아올린 노력의 방식이 다르고 시간의 결이 다르기에.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아이를 지킬 뿐이다.


잘 가요. D엄마.

우리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가 너무 힘드네요.

각자의 아이만으로도 너무 번잡해서 서로의 감정을 살필 여유가 없어서겠죠.

그래도 참 애썼어요. 당신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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