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치료'가 균형을 갖출 때

학교 밖 두번째 은사님

by 날필

한달이 경과했을 즈음 선생님은 아이의 놀이패턴에 살짝 변화를 줄 것을 권했다.


"하라같은 경우는 그동안 가정에서 몸으로 굉장히 잘 놀아주셨다는 게 느껴져요. 남자아이들은 아빠와 교감하며 몸으로 노는 게 참 중요한데 하라는 이런 신체적 교감이 충분한 상태예요. 이제 몸으로 노는 역동적인 놀이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규칙이 있고 그것을 준수하는 정적인 놀이도 가족이 함께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 길로 당장 부루마불과 젠가, 할리갈리를 샀다. 사면서도 긴가민가했다. 불과 반년 전까지 아이는 힘조절이 잘 되지 않아 신중을 기해야 하는 보드게임에 취약했고, 그렇게 내리 몇 판을 지다보면 화를 내며 흥을 깨버리기 일쑤였다. 학교에서 보드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자기는 힘이 너무 세다며 끼워주지 않았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었다. 고작 6개월 사이에 뭐 그리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라고?


숙제하는 기분으로 아이와 부루마불을 시작했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가 세 시간을 너끈히 앉아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아이는 나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아이의 능력(인내심, 계산력, 이해력)이 이만큼 자라 있는 줄 모르고 여태 몸으로 부대끼며 놀아주면 장땡인 줄로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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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선생님이 권한 것은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행동에 대해 놀라는 반응을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아이의 특성과 맥락을 아는 가족과 지인들이 보기에는 이해가능한 행동이라고 해도 이것이 가정이나 병원이 아닌 밖에서 발현되었을 때 일반적으로는 용인되지 않는 행동이라면 '놀란 반응'을 보임으로써 '잘못된 행동'임을 인지시켜야 한다.


그때까지 나는 "집에서 가족이랑 지낼 땐 아무 문제가 없는데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릴 때가 문제예요."라는 말을 종종 했다. 이 말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핵심이었다. 아이를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용인되는 행동이 밖에 나가 낯선 사람들과 어울릴 땐 그렇지 않다는 것.


그동안은 밖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웬만한 행동에 대해 크게 지적하지 않고 예사로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 아이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왜 못 하게 하지?' 혼란스러움 뒤에는 곧 분노가 따라왔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나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 말은 나도 절대 안 들을거야!' 이런 식으로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집에서 엄마가 '잘못된 행동'을 지적함으로써 잘못이 잘못임을 알게 해야만 밖에서 같은 지적을 받았을 경우에도 아이가 쉽게 수긍하고 인정할 수 있다. 집이니까, 가족이니까, 원래 그러니까, 우리끼리 덮어주고 넘어가는 건 결과적으로 아이를 위하는 일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아이를 ADHD환자유형 중 하나가 아닌 그냥 '하라'로 대해주었다. 남자아이 특유의 엉뚱함과 야생성을 ADHD행동특성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개선해야 할 점은 그때그때 짚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이제껏 간과해왔던 것들을 돌아보고 고쳐나갈 수 있었다.




B선생님과의 마지막 진료일, 선생님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들은 정도의 차이가 조금 있을지언정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아요. 오히려 큰 차이를 보이는 건 부모님들의 양육태도예요. 상담실에 들어오셔서 아이 때문에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 자신이 아이에게 얼마나 시달려왔는지, 그런 하소연으로만 20분을 가득 채우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 분들은 당연히 아이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죠. 하지만 어머님이 바라보는 하라는 표현이 서툴지만 말이 통하고, 순수하고, 마음이 따뜻하고, 양보와 배려를 할 줄 아는, 무수히 많은 장점을 가진 아이예요. 항상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 또 아이의 좋은 점을 발견해줄 수 있는 능력, 그건 부모로서 최고의 달란트예요. 그런 긍정적인 기운들이 하라에게 전해져서 하라는 반드시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아이와의 일상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아이는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던 B선생님의 말을 떠올린다.


겨울이 막 시작될 즈음 B선생님과의 인연은 마무리되었다.

겨우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다가 오랜만에 아이의 손을 잡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반복적으로 팔을 튕기던 아이의 틱이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B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이는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아마 또 다른 좋은 선생님을 만나 마찬가지로 성장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강한 존재니까. 그럼 나는 어땠을까? B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극복해냈을 것이다. 나 또한 한 아이의 엄마로 적지 않은 내공을 쌓아왔으니까.


꼭 B선생님이 아니었어도 우리는 오늘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B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음에, 그 시절 우리의 인연이 닿았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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