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같이 놀아요.

놀이치료 도중 알게 된 아이의 틱

by 날필

약물치료를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고 놀이치료가 진행됐다.


병원에서 추천해준 놀이치료 선생님은 평일 오후 진료를 맡고 있는 B선생님이었다. B선생님은 남자아이들의 유별난 성향을 잘 이해하고 대처가 능숙해서 유독 남자아이들과의 합이 좋았고, 자연스럽게 병원 내 <남아 전담 놀이치료 선생님>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B선생님을 포기하고 주말진료 담당인 L선생님을 선택한 건, 아이아빠가 동행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 토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상담치료와 마찬가지로 놀이치료 역시 아이와의 놀이 후에 부모와의 상담이 이어진다. 한 사람이 진료실에 들어가있는 동안 다른 하나는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했다.


주말의 진료실은 무척이나 붐볐다.




주말 진료를 전담하는 L선생님은 미혼으로 짐작되는 아주 젊은 분이었다. 아이의 차례가 되면 L선생님은 방문 앞에서 겨우 얼굴만 내밀고 아이를 부르시곤 했다. 그것도 '놀이방'이라고 아이는 순순히 선생님의 부름에 이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그 작은 방에서 30분이나 무엇을 하면서 노는걸까. 방문이 닫혀있는데도 가끔 밖으로 새어나오는 소리를 통해 선생님의 당황을 읽을 수 있었다.


아이가 나오면 내가 불려들어갔다. 겨우 어른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을 정도의 공간을 제외하고 장난감이 빼곡히 들어차있는 방. 우리는 장난감들에 둘러싸인 채로 문답을 주고받았다. 선생님은 내게 간단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들은 후에 본인이 파악한 아이의 문제성향들을 나열했다.


그 중 '틱'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아이가 팔꿈치를 튕기듯이 굽혔다 펴는 동작을 쉼없이 반복한다고 했다. 나는 늘상 아이와 손을 잡고 다니면서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서야 종종 아이와 손을 잡고 걸을 때마다 내 팔이 함께 튕겨지곤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게 틱이에요. 틱은 다른 양상으로 계속해서 옮겨가기 때문에 보호자께서 잘 관찰하고 관리해주셔야 해요."

틱을 인식한 순간부터 틱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이의 틱을 감지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더 자주 아이의 손을 붙들었다. 유독 팔에 진동이 심하게 전해지던 어느 날, 참지 못하고 입을 뗐다.


"하라야, 이거 재밌어? 재밌어서 하는거야?"

"아니 엄마. 재밌어서 하는 게 아니고 이걸 안 하면 너무 불편해."


이걸 안 하면 불편하다. 그게 어떤건지 나는 너무 잘 알았다. 이걸 한다고 해서 딱히 편해지는 건 아닌데 이걸 안 하면 내내 불편하고 몸 어딘가가 근질거리고 나중엔 뇌까지 근질거리는 것 같은 그 불편함. 그건 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본인조차도.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손톱 밑의 거스러미를 견디지 못해서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 스무살이 되도록 남들 앞에서 너덜너덜한 손톱을 감추느라 애를 먹었다. 손톱을 물어뜯는 게 딱히 재밌는 건 아닌데 물어뜯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부모님의 걱정어린 시선을 느꼈지만 행동을 멈추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선을 피해가며 더 치열하게 물어뜯었다.


손톱을 물어뜯는 행동 그 자체는 틱이 아니지만 불안과 초조에서 기인한다는 점이 틱과 유사하며, 실제로 손톱 물어뜯기로 시작해 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손톱 물어뜯는 버릇은 '틱'의 전조증상처럼 여겨진다. 당시에 나의 부모님은 이런 나의 행동을 '나쁜 버릇'으로 치부하긴 했지만 누구도 이것을 두고 '틱'이라든가 '증상'이라든가 하는 꺼림직한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이름을 불러준 순간, 아이의 행동은 나에게로 와서 기분 나쁜 '증상'이 되어버렸다.


아이아빠에게 아이의 증상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으니 자신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고, 입 밖으로 꺼내놓으면 아이가 의식하면서 더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게 될까봐 부러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아빠 말이 맞았다. 내가 안다고 한들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에게 내색하지 않기 위해선 나조차 모르는 게 나았다.


몰랐던 때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팔을 튕기는 것이 아이의 불편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해소해준다면, 그깟 게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쉴 새 없이 오줌을 누러 가던 아이를 못 본 척 하던 그때처럼 (관련글 : 빈뇨증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https://brunch.co.kr/@rawfeel/55) 나는 그냥 모르기로 했다.




그 후로 3-4회의 놀이치료를 더 진행하며 알게 된 점은 선생님은 매번 아이가 놀이감을 선택해서 놀게 둔 뒤, 자신은 아이가 노는 것을 관찰하며 관찰기록지를 작성한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야 집에 없는 장난감들에 흥분해 혼자서도 곧잘 놀았겠지만 아이는 원체 저 혼자 노는 타입이 아니었다. 내심 선생님과 함께 놀기를 바랐을 게다. 그러나 선생님은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을 고수했다. 아이 앞에서 관찰의 시간을 가진 후에는 내 앞에서 평가의 시간이 이어졌다.


"놀이패턴이 늘 같아요. 항상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공격하고 잡아먹으면서 끝나요."

"폭력성이 있어요. 이런 아이들은 필히 약물을 쓰셔야 해요."


선생님의 피드백은 내가 아이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 시간을 통해 어떤 즐거움도 위안도 받지 못했다. 아이는 이 곳이 병원이며 자신이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에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방문목적에 맞게 선생님은 아이를 오로지 <교정>의 대상으로만 보았으며, 그런 선생님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거리가 있었다.


우리가 다니던 병원의 놀이치료실은 좁고 열악했지만 나는 시설에 대해선 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편이다. 그건 한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범위의 문제가 아니니까. 하지만 개인과 개인이 맞지 않을 때에는 문제가 된다. 선생님이 문제라는 얘기가 아니다. 아이와 선생님, 두 사람은 맞지 않았다.


다시 한번 우리가 병원에 오는 이유를 상기했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누구보다도 아이가 도움을 받기 원했다.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선 결단을 내려야 했다. 토요일에서 목요일로, 진료일을 옮겼다. 평일 오후에만 만날 수 있다는 <남아 전담> B선생님에게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다음주 목요일, B 선생님과의 첫 진료일. 처음으로 남편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면허를 따고 1년이 되도록 제대로 된 시내 드라이빙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시동을 걸기도 전부터 나는 벌벌 떨었다. 한동안 온기가 닿지 않은 핸들보다 내 손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벨트했어?"

"응!"

아이의 대답과 동시에 비장하게 시동을 걸었다.

심리상담.jpg

<이미지 출처 : tvn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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