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어떤 일이 있으셨어요?

선생님의 첫 질문에 멍해졌다

by 날필

평일 오후. 병원은 한산했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한산함이었다.


대기실에 앉아있던 우리를 향해 걸어온 B선생님은 아이와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넸다.

"하라야 안녕? 오늘 선생님하고 한번 재밌게 놀아볼까?"

대기실에서 진료실까지 불과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 앞 차례 아이를 배웅하는 동시에 아이를 마중나온 것이었다. 아이는 한번 나를 돌아보고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선생님을 따라 진료실로 향했다.


들어간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아이가 내지르는 괴성이 방문을 뚫고 병원 전체에 울려퍼졌다. 순간 습관처럼 긴장이 됐다. 그런데...이상했다. 늘 당연하게 뒤따르던 선생님의 당황이 그날은 읽히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마찬가지였다. 긴장을 풀어도 되는걸까. 꽉 잡고 있던 가방을 슬며시 놓았다. 30분을 채우고 아이와 함께 나온 선생님은 놀이치료실 대신 상담실로 나를 이끌었다. 어수선한 놀이치료실 바닥이 아닌 정돈된 상담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인데 마음이 훨씬 차분해졌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으셨어요?"

예상치 못했던 선생님의 첫 마디에 나는 당황했다. 앞서 아이의 놀이치료를 진행했던 L선생님은 내게 그런 것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날의 아이를 관찰하고 보고하는 것이 전부였다. B선생님이 내게 듣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얼른 알 수 없어 망설여졌다. 주어진 상담시간은 20분 남짓. 방향을 잘못잡아 횡설수설하느라 선생님의 시간을 뺏으면 어쩌지? 좀처럼 입을 떼지 못하는 내게 선생님이 재차 물어왔다.


"보통 이렇게 병원을 찾기까지 오래 고민하셨던 경우가 많잖아요. 지금까지 하라를 키우면서 있었던 일들이라든지, 아니면 최근에 갑자기 병원을 찾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아이가 여덟살이 되기까지 내가 해왔던 고민들, 또는 최근에 있었던 일들, 그 외 아이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라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생각 끝에 병원을 찾게 된 최근의 사고(https://brunch.co.kr/@rawfeel/21)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야기 도중 감정이 북받쳐 몇 번 말을 멈췄다. 나도 몰랐던 속내가 쏟아져 나왔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엄마로서의 죄책감과 한 인간으로서의 굴욕감, (지인들에게는 차마 털어놓을 수 없었던) 그 외 적나라한 감정들까지. 선생님은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었다.


주목받는 아이의 엄마로서 그간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기 힘들었다. 항상 한도초과로 본인의 감정을 내보이는 아이 옆에서, 나는 그림자처럼 눈에 띄지 않게 그를 보좌할 뿐이었다. 생판 남에게 아이의 치부가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내 밑바닥의 감정까지 삭삭 긁어내 보이며 털어놓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짧지 않은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기진맥진했다. 갑자기 후회가 밀려들었다. 실수한 건 아닐까. 아이의 치료를 위해 왔는데 내가 받은 상처를 늘어놓다니. 그것도 피해아이의 엄마를 원망하는 듯한 뉘앙스로. 뻔뻔한 엄마라고,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아이까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나는 어느새 다시 동네에서처럼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의 예상을 뒤집었다.


"어머님으로서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 같아요. 학교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그 일이 자꾸 언급됨으로써 아이가 다른 학부모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저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그러니 그 일로 더는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왈칵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선생님의 말은 객관적으로는 맞는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의 내게는 정말 간절한 말이었다.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나의 저자세로 인해 아이가 실제로 감당했어야 할 몫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내내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그런 내게 '너는 틀리지 않았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최선의 선택이었다'라는 선생님의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놀이치료실 안에서 선생님은 아이에게 동화되었다. 아이의 놀이세계 안으로 함께 들어가 완벽한 놀이파트너가 되어주었다. 아이가 놀이치료실로 들어가고 나면 나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 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 30분 내내 안절부절 못하며 놀이치료실 문을 두드릴까 말까 고민했던 예전과는 달랐다. 놀이 후에는 그날의 놀이와 대화를 복기하여 들려주었다.


아이의 놀이패턴은 주로 몸을 쓰고, 약육강식의 생태계를 반영하는 놀이가 많은데 그 안에는 다 아이 나름의 법칙과 이유가 있다, 그것에 대해 물었을 때 아주 나이브하게 본인의 철학을 얘기하는데 그런 생각들을 청해듣는 게 참 재미있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는 건 주로 공룡흉내를 낼 때인데 그럴 때 어른이 함께 공룡흉내를 내며 소리를 질러주면 무척 좋아한다, 선생님의 얘기에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껏 가족끼리만 알고 있던 아이의 진면목을 다른 사람이 발견해주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나에게 활기를 주었다.


진료실 안의 선생님이 아이의 행동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아이에 동화되자 진료실 밖의 사람들도 더이상 진료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이전엔 아이의 고성이 선생님마저 통제할 수 없는 문제상황처럼 여겨졌다면 이제는 아주 자연스러운 놀이치료의 일환처럼 보였다.


한바탕 후련하게 놀고 나온 아이는 내가 상담을 마칠 때까지 대기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외할아버지와 통화를 하며 의젓하게 기다려주었다. 그동안 나는 상담실에서 아이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당시에는 아이를 챙기느라 지나쳤던 나의 감정들을 꺼내보았다. 상처받았음을 인정하고 나서야 나는 서서히 회복되어갔다. 상처가 회복되니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서도 측은함이 거두어졌다.


이미지 출처 : pxhe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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