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쓸까, 거짓말을 할까(3)

정답은 없다, 결과가 모든 것을 결정지을 뿐

by 날필

약속한 한달이 되기 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담임선생님 번호가 뜨면 본능적으로 긴장상태가 된다. 어떤 말에도 놀라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머님, 혹시 하라가 최근에 ADHD약을 먹고 있나요?"

이게 무슨 소리지? 전화를 받기 전 단단히 붙들었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럴리가요. 갑자기 약을 먹게 되더라도 선생님께 먼저 상의드렸을 거예요."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그렇죠? 어머님이 저한테 아무 말씀 없이 약물치료를 시작하셨을 것 같지는 않은데, 요즘 하라가 너무 달라졌거든요. 좋은 방향으로요. 원래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었지만 요며칠 사이 너무 확 좋아졌어요, 큰소리 나는 일도 줄었구요. 저번주부터 지켜보다가 아무래도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조치를 취하신 게 아닌가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드렸어요."


뜻밖의 소식이었다. 지금껏 아이가 소속되었던 교육기관으로부터 수차례 전화를 받았고, 온갖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어왔지만 이런 것은 처음이었다. 이때까지와는 사뭇 다른 온도의 통화내용에 나는 내내 찬 것을 들이키다가 따뜻한 것이 이에 닿았을 때처럼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내가 입을 벌리고 할 말을 찾는 동안 선생님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어머님, 저도 전문의가 아니나보니 이런 말씀 드리기 조심스럽지만...지금같은 상태가 계속 이어지기만 한다면, 제 생각엔 굳이 약을 안 쓰셔도 될 것 같아요."


1년 전, 아이의 행동이 ADHD증상임을 나에게 처음으로 인지시켜주었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도 '약을 쓰면 다 괜찮아진다'라고 말했었다. 그러니까 아이의 개선을 위해 필수적으로 전제되는 것이 약물치료였다. 우리가 만났던 어떤 전문가도 아이에게서 약을 떼어놓고 아이의 개선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약물치료의 필요성을 가장 강력하게 어필했던 사람은 부모인 우리 다음으로 많은 시간동안 아이를 보호하는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런 담임선생님의 입에서 '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말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와 가장 가깝고 가장 비슷한 곤란을 겪고 있는 교육전문가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에 울컥 목구멍을 치받고 무언가가 올라왔다. 그것은 설움이었을까 설렘이었을까.




무엇이 아이를 달라지게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당시에 힘들었어도 기록을 남겼다면 좋았으련만 아무것도 쓸 수 없었던 그때를 지나고 나니 '나도 좀 살아야겠다'며 기억은 많은 것을 지워버렸다. 이제 와 희미해진 기억들을 헤집어봐도 좋았던 장면보다 아팠던 순간들이 선연하게 되살아나 가끔은 그때로 돌아간 듯 고통스럽다. 그래도 기록자로서 꾸역꾸역 그때를 떠올려본다.


1학년 초, 담임선생님의 요청으로 '아이의 짝궁'이라는 특별임무를 맡았던 같은 반 여자친구(이하 S)가 있었다. S는 또래에 비해 속이 깊고 어른스러운 아이로 어른들 뿐 아니라 또래 아이들도 S의 그런 점을 알아보고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S는 본인은 물론이고 친구 한 명 정도는 거뜬히 챙길 수 있는 아이였다. 그런 S를 눈여겨 본 담임선생님은 S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S를 아이와 함께 앉히는 일에 대해 허락을 구했고 그렇게 4월 한달동안 S는 아이의 짝궁이 되었다.


두고두고 S와 그의 엄마에게 고마워하다가 1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학부모모임에서 S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S의 엄마는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내가 민망할 정도로 아이를 칭찬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S가 "난 하라랑 또 같이 앉고 싶은데 이제 하라가 잘해서 나랑 앉을 필요가 없어."라고 하더라는 얘기를 전해주면서 말이다.


또 다른 여자친구 H의 엄마는 아이들이 유치원생일 때부터 나와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아이의 성향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H가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H의 엄마는 매일 아침 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하라한테는 뭐라뭐라 받아치지마. 너 그러다 한 대 맞는 수가 있으니까."

그랬던 H의 엄마가 1학년 막바지에 내게 전해준 H의 말은 오래도록 나를 뭉클하게 했다.

"엄마, 하라는 장난을 좋아해서 그렇지, 참 마음이 따듯한 아이야."


아이의 심경에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그즈음 아이에게 일어난 변화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1. 성장에 의한 자연스러운 변화

아이는 늘 그랬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갑자기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는 시기가 찾아오곤 했다.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아이는 훌쩍 커 있었다. 영유아기엔 <급성장기>라고 불리는 시기. 1학년의 끝자락, 아이에게 마음의 급성장기가 왔던 것일까. 오롯이 내가 길렀다고 생각했는데 시간 또한 아이를 이만큼 길러놓았다.


2. 본인의 각오

"약을 써서 뇌가 내 말을 들으면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 약이 한 거잖아. 내가 좀 더 해볼래."

본인의 뇌가 본인의 의사를 거스를 때(본인 피셜), 아이는 본인의 입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질 줄 아는 아이.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의 장점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책임을 졌다. 자기를 충동질하는 자신을 다그쳐가며 아이가 해낸 것이다.


3. 엄마로부터의 안정감

당시에 나는 지속적으로 학교를 오가며 아이와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등교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서 손을 흔들어주고 나면 한시간 후에 곧 다시 학교로 향할 시간이 됐다. 중간놀이 시간마다 학교도서관에서 아이를 만나 함께 책을 읽고 오전동안 있었던 일을 공유했다. 그로부터 두세시간이 지나면 다시 하교시간이 됐다. 그러니까 우리는 거의 두시간 간격으로 계속 얼굴을 마주했다. 덕분에 아이는 1학년을 통틀어 정서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내가 중간놀이시간에 학교도서관을 오간 이유: https://brunch.co.kr/@rawfeel/32)


그러니까 오늘의 아이는 '시간'과 '아이'와 '내'가 서로 협력한 결과물이었다.


약도 안 쓰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신념도 양심도 모두 지켰다. 그러나 나의 신념과 양심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수고가 동반되어야 했는지. 나는 뭐 때문에 그렇게 유난을 떨어야 했을까. 아직도 나는 그때의 결정이 잘한 결정인지, 확신이 없다. 많은 선택들이 결과로 말해지곤 하니까. 만약 약을 쓰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던 그 한 달 사이에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났더라면 그때 나의 결정은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경험에 비춰 약을 써라 말아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택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모두에게 통하는 확실한 해답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에 떠밀려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일만큼은 극구 말리고 싶다. 약물치료를 포함한 모든 시술은 온전히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판단이 섰을 때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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